[Opinion]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언내추럴' [TV/드라마]

클리셰에 질린 당신이 보면 좋을 드라마
글 입력 2020.08.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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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뻔한 드라마에 일정 수준 이상의 흥미는 느끼지 못하겠다. 돈 많고 젊은 남자 주인공과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스토리, 혹은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 안에서도 이루어지는 러브 라인 등의 클리셰는 보기에 편하고 감상에 있어 불편함이 없기에 끊임없이 소비된다. 클리셰가 주는 전개만으로도 감상의 만족이 충족되니까.

 

대리로 감정을 만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클리셰를 다루는 콘텐츠를 찾는 이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콘텐츠가 새로운 형식으로 창작되지 않고 같은 구조 안에서 내러티브만 변형되다 보니 더는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이제는 더 색다른 것을 찾게 된다. 조금 더 진실성을 탐구하는 드라마나 아예 러브라인이 제거된 드라마처럼.

 

그러다가 이 드라마를 찾게 되었다. 일본에서 꽤 좋은 실적을 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클리셰 요소가 짙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에 선뜻 손이 잘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뜻밖의 인생 드라마를 찾고 말았다. 확실히 다르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이런 드라마가 나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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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연사 규명 연구소 (이하 UDI)로 의뢰가 들어오는 시신의 사인을 파헤치는 스토리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PD, 작가, 주인공 모두가 여성이라는 점이 꽤 독특하다. 따라서 드라마는 젊은 여성 법의학자인 '미스미 미코토'를 주인공으로 앞세워 젊은, 일본 여성, 법의학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편견들을 본질적으로 꿰뚫어 본다.

 

2020년 세계별 성평등 지수에서 121위를 기록한 일본에서 젠더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을 드러낸 드라마가 제96회 일본 드라마 아카데미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는 사실 또한.

 

<언내추럴>의 내러티브 구조는 미드와 닮아있다. 조금씩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다가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처음부터 다시 해결의 방향성을 잡는 반전적인 전개나, 성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일본 안에서 자체적으로 젠더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지금껏 봐왔던 일본드라마와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제작된 <언내추럴>은 큰 틀의 사건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달려가면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의문사들을 마구 파헤친다. 인물들에 대한 미스테리한 뒷배경을 알아가는 재미도 덤. 시청자와 함께 의문사를 파헤칠 때는 숨이 가쁘도록 벅차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일상의 평범함을 다룬다.

 

불미스러운 죽음의 원인을 밝혀낸 후로는 맛있게 도시락을 먹던 미스미 미코토의 무표정과 때마침 흘러나오는 요네즈 켄시의< Lemon>은 아직까지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여성이 어떤 옷을 입고 있든 술을 마시고 취해 있든 남자 마음대로 하면 안 되죠. 합의하지 않은 성행위는 범죄입니다.

 

<언내추럴> 中

 

 

내가 생각하는 '잘 만든' 콘텐츠의 기준은 억지스러움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나뉜다. 연기의 억지스러움, 연출의 억지스러움도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메시지'의 억지스러움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출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퀄리티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전달 방식은 꽤 효과적이다.

 

대화 속에 메시지를 집어넣는다. '요즘에는 실력은 미숙하면서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여성 연구자가 늘고 있다', '책임 전가는 여성의 특징이지요.'라며 여성을 감정적인 '하위' 대상으로 폄하하는 남성들의 언행과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등 파인 옷을 입었다며 범죄 행위의 동기에 여성에게도 책임을 묻는 말들은 자연히 불편함을 자아내게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당연한 혐오이지만 혐오로서 인지하지 못했던 표현을 꼬집어주는 시원함이 있다.

 

또한 메시지는 젠더 이슈만을 다루지 않는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최초 감염돼 사망한 고인에 대한 모독은 2020년 코로나19의 사태와 유사한 상황을 비추며, 살해 후 자살이라는 뜻의 'murder-suicide'와 비교되는 '동반 자살'이라는 단어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학교 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고스란히 조명하기도 한다.

 

일상에 존재하는 폭력과 편견을 꼬집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꽤 신중하다. 자극적인 프레임을 연출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며, 이로 인해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청자를 안전하게 이끌어 준다.

 

러브 라인도 없고, 폭력적인 장면도 없지만 흥미롭다. 이것이 내가 이 드라마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던 츠카하라 아유코 PD와 아라이 준코 PD의 말처럼, 사망한 자들을 부검하며 그들이 남겨놓은 죽음의 단서를 추적해 진실한 삶의 모습을 탐구하는 이 드라마는 메디컬 드라마가 가져다주는 휴머니즘을 상기시킨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의문사의 사인을 밝혀주는 드라마. 뚜렷한 목표 의식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탐구해나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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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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