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도서]

글 입력 2020.08.0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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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사랑하는 수다쟁이 이야기를 들었다. 장르는 클래식부터 현대 작곡가, 재즈와 팝까지 전부 아우르면서. 음악에 대한 지식적인 내용부터, 역사, 그리고 개인의 경험까지 다양한 내용을 실었다.

 

꾸준히 실어오던 칼럼을 모은 내용이라고 한다. 마치 잡지의 '잠시 쉬어가기' 코너에 있는 내용마냥 편하게 읽었다. 그렇게 길지 않으면서도 각자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어 즐거웠다. 얼마나 많은 지식과 경험, 추억이 풍부한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나는 사실 한 분야에 깊이 파지 못하는 성격이다. 하나만 파기에는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 전공을 했어도, 음악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한다고 해도, 한 작가의 일대기나 사조 등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최소한의 -에술을 즐기기 위한 기본적인- 정보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 있어도 내가 느끼는 데에는 충분히 족하다.

 

하지만 가끔씩 (이 아닌, 자주 생각하는) 한 분야을 미친듯이 '덕후'처럼 파면 어떻게 될까,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그걸 바로 전문가라고도 칭할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단 하나만 마스터하는 스페셜리스트와, 여러 분야를 폭넓게 조금씩 다 알고 있는 제너럴리스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다.

 

나는 후자이다. 하지만 전자의 삶은 항상 궁금하다. 음악의 길만 파고 있는 내 친구처럼, 한 가수나 배우를 좋아한다면 모든 공연과 굿즈를 다 가져야만 하는 내 사촌 동생처럼. 이 글은 (주로 클래식) 음악, LP판을 지극히 사랑하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지루하지 않게, 답답해하지 않게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담았고, 또 쓴 글의 내용도 정말 다양했다. 앞서 말했듯이 음악적 지식과 역사, 최근의 경험과 옛날 추억거리, 풍경을 그리는 방법, 미술 등 많은 재료들을 넣었다. 그래서 읽기가 참 좋았다.

 

게다가 엄청나게 친절하게 QR코드를 각 글마다 앞에 넣었다. 그래서 쉽게 음악을 틀어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물론 음악은 길고 글은 짧아서 동시에 음미하기에는 시간이 비대칭적이었지만. 이렇게 친절한 글이라니. 엄청 감동이었다. 이전에는 음악 관련 책을 읽어도 음악을 매번 검색해서 찾아 들어야 했어서, 나중에는 포기하고 글만 읽었어서, 더 반가웠다.

 

나도 예전에는 음악 각 장르들을 파서 들었지만, 지금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자주 듣는다. 여전히 취향은 있지만, 항상 새로운 곡을 듣고 싶다. 낯설고 새로운 음악들로 내 세계를 넓히고자 한다. 만약 이 책에 나온 곡들을 희망/열정/사랑/우정 이 내용들로 나누는게 아니라 분위기 별로 나누면 어떻게 갈래가 나눠질지 상상해본다. 가끔씩 음악을 들을 때면 책 내용과 별개로 어떤 상황이나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를 곡별로 적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음악은 언제나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준다. 그리고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정말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은 다양한 곡들. 세계를 넓힐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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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수십 년간 수천 장의 LP 음반을 모으면서 음악을 즐긴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이 시간을 "음악의 여신 뮤즈를 만난 순간"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순간들을 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하고 위트 있는 에세이로 담아냈다. 책을 읽다 보면 음악이 궁금해질 독자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친절하게 QR코드를 삽입해 바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서의 배경음악이 되어줄 것이고, 끝까지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가 완성될 것이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책이다.

 

여타의 클래식 음악책과 다른 점은 '클래식'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 틀을 넓히고 다양화했다는 점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클래식'은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이나 연주법에 의한 음악으로 흔히 대중음악에 상대되는 말"로 쓰인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서양 전통 클래식으로 음악 듣기를 시작했지만 점차 그 범위를 넓혀 이제는 국악, 재즈, 가요, 팝 등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클래식' 목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자에게 클래식은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예술"이다.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언제나 사랑받아 마땅할 음악이 있을 뿐이다.


책에는 바흐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정통 클래식 작곡가들은 물론이고, 몇 백 년 후 '제2의 베토벤'으로 불릴 현대 작곡가와 지휘자, 연주자까지 망라하고 있다. 「화양연화」 「붉은 돼지」등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미스터 션샤인」의 OST로 쓰인 뉴에이지, 샹송, 올드 팝도 함께한다.  음악가와 곡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이고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담겨 있다. 우리 가곡 「명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연주곡을 소개할 때는 개인적 추억담도 꺼내놓았다.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책의 어디를 펼치더라도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을 만큼 멋진 음악 이야기'가 독자들을 기다린다. 클래식 입문자뿐만 아니라 음악애호가라면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일간지 보도사진 기자인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은 사계절 분위기에 맞춰 희망, 열정, 사랑, 우정이라는 테마로 담겼다. 전국을 넘어 세계 곳곳을 오가며 찍은 생생한 사진은 글과 어우러져 마치 음악을 들으며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최근 음악애호가들을 중심으로 LP(long-playing record) 바람이 불고 있다. 저자 최정동은 "LP는 가청 주파수 음역대만을 담은 CD보다 자연스럽고 풍성한 소리를 들려주기 때문에 더 음악적"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관리하며 들어온 불후의 명반을 소개한다. 직접 찍은 커버 사진을 모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음악다방을 드나들며 LP로 음악을 들었던 7080세대는 그 시절 추억에 젖어들 수 있고, 옛 음악이 궁금한 젊은 독자들은 레트로 감성에 빠져들게 된다. 모든 세대가 언제 들어도 좋을 음악을 듣다 보면 행복감에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역사 기행과 음악 듣기를 즐겨왔다. "역사를 읽으면 현장을 거닐고 싶고, 음악을 들으면 예술가의 체온을 느끼고 싶다"고 한다. 그간 이 둘을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이번 책에도 그 여정이 일부 담겼다. 아름다운 음악이 인문학적 지식과 어우러져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특히 로마제국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저자는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한니발 전쟁 루트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아랑후에즈 협주곡」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1901-99)를 만난다(135쪽). 에스파냐 시골마을 사군토(Sagunto)는 한니발 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진 곳으로 로드리고의 고향이다. 세 살 때 두 눈이 먼 로드리고는 「마법사의 제자」작곡가 폴 뒤카(Paul Dukas, 1865-1935)에게 사사받고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다.

 

당시 저자가 탄 배 이름은 프랑스 작곡가 이름과 같은 '베를리오즈'였다. 저자는 도버해협의 거친 파도를 만났을 때 '베를리오즈' 갑판 위에서 그의 「환상교향곡」을 떠올린다. 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가 환각 상태에서 여자를 죽여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내용의 강렬한 곡이 눈앞의 넘실거리는 파도에 맞춰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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