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잠깐만요. 이 공연 한 번만 봐주세요! - 연극 '잠깐만'

글 입력 2020.08.02 15: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jpg


 

“잠... 잠깐만요!”

 

 

이 연극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대사는 “잠깐만요.”이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배우들은 관객과 호흡하기 시작하며 극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실 처음에는 마임으로 무슨 말을 전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는 뜻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어느새 그들의 말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완전히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이 연극에.

 

 

 

마임, 명화, 그리고 음악의 만남


 

국내 최정상 마임이스트인 고재경과 그 제자들답게 마임에 대해 문외한인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마임을 선사해주었다. “어떻게 몸을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드는, 부드러움과 강함이 적절히 섞인 몸짓이 관객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냈다.

 

감탄하며 보는 동시에 배우들이 굉장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몸짓으로만 모든 걸 표현해야 하기에 일반 연극보다 체력을 두 세배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힘든 기색 없이 끝까지 밝은 모습으로 극을 마친 배우들이 정말로 존경스럽다.

 

이렇게 극을 이끌어가는 3명의 배우는 자신들의 연기만으로 극장 안을 꽉 채웠다. 정말 ‘몸짓’, 그 하나로 말이다.

 

 

잠깐만 공연 사진 (1).jpg


잠깐만 공연 사진 (6).jpg

 

 

또 적재적소에 맞게 배치된 음악은 극의 집중도를 한결 높여주었다. 마지막 고흐의 자화상이 등장할 때 “Starry starry night”의 한 소절이 들리는 순간 ‘별이 빛나는 밤에’의 풍경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만>은 마치 명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아서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명화에 관한 연구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에 대해 깊숙이 파고드니 보이지 않았던 점들이 새롭게 보였고, 이후 명화 속 인물의 삶에 대해 유추할 수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 여성의 세 시기



BAL_284099.jpg

©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

 

 

가장 기억에 남았던 명화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성의 세 시기’였다. 그 이유는 여성의 세 시기(어린아이, 어머니, 할머니)를 단지 몇 분 안에 모두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안기면서 시작된다. 아이는 어머니의 배움을 받으며 점점 자라난다. 그러나 어머니도 나이가 들면서 더는 아이와 놀아줄 수 없게 된다. 마지막에는 눈을 감고 쉬고 있는, 이젠 할머니가 된 그녀를 아이가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마무리된다. 처음에 자기가 안기던 모습과 반대로 말이다.

 

 

잠깐만 공연 사진 (7).jpg


잠깐만 공연 사진 (8).jpg

 

 

이 장면에서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그들의 연기가 끝이 날 때까지 계속 울컥했다. 나도 여성이라 그런 건지 빠르게 흘러가는 여성의 세월을 눈으로 접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인생이자 내 미래를 미리 엿본 듯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극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잠깐만>에 참여하다


 

관객 참여형 연극이라 사실 나를 지목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면 재밌게 보지만, 그게 나의 경우라면 말이 다르다. 앞에 나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괜한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멋진 공연이 나로 인해 망가지지 않길 바라며 그럴 일이 없길 기도했다.

 

나의 기도가 빗나간 건지 뭉크의 ‘절규’ 명화가 등장한 순간, 갑자기 고재경 배우의 지목을 받아 무대로 올라서게 되었다. 단순히 액자를 들고만 있는 역할이었기에 정말 괜한 걱정을 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관객의 표정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알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변경)

  

배우들과 나란히 서서 관객들의 시선을 받으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극을 계속 지켜보다가 함께 참여하게 되니 < 잠깐만 >의 엑스트라가 된 느낌이랄까. 조금 부끄럽긴 했어도 연극을 같이 만들어나갔다는 점이 실로 뿌듯했다.

 

그곳에서 관객들을 바라봤을 때, 단 한 명도 졸거나 지루해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앞으로 무엇이 전개될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보며 나까지 행복해졌다. 배우들은 이 행복감을 느끼면서 연극을 진행하고 있었겠지? 평소 관객들의 표정을 살펴볼 수 없는 또 하나의 관객으로서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금에야 “이 기회를 놓쳤으면 어쩔 뻔했어!” 하는 생각이 든다.


*

 

연극의 성공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막이 내렸을 때 아쉬움이 드는 연극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서 <잠깐만>은 성공적이다. 55분이란 시간이 눈 깜짝할 새 훌쩍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고 퇴장하는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박수를 보냈던 것 같다.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던 공연에 집에 돌아가면서도 그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오랜만에 연극의 매력을 접하니 대학로로 다시 한번 향하고 싶다. 소극장 연극이 매력적인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접하니 그 열기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같이 호흡하고 있는 듯한 느낌 덕분에.

 

무엇보다 좋았던 건 관객 분위기였다.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연극이기에 관객이 이를 거부하거나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분위기도 다운될 것이다. 나는 첫 공연에 갔었는데, 그들의 시작을 응원하는 분들이 모여서 그런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가 좋았다. 심지어 장면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기에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실로 비롯된 웃음소리가 왜 그렇게나 듣기 좋았는지. 무슨 연극을 볼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잠깐만요. 이 공연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하고 싶다. 마임과 명화, 음악을 이용해 끌고 가는 극이 이렇게 재밌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본 연극 중에 탑3을 차지한 연극이었다.

 

 


 

 

잠깐만

웃음을 자아내는 그림이야기
 

일자 : 2020.07.29 ~ 2020.08.02

시간
평일 8시
주말 5시

장소 : 알과핵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20,000원

  

제작

마임공작소 판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6세 이상

공연시간
55분




 
마임공작소 판
 

 마임공작소 판은 마임이란 장르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형식과 소통하고자 결성된 단체입니다. 다양한 활동영역의 예술가들이 마임을 탐구하고 대중적이면서 독립적인 작품으로서의 마임레퍼토리를 개발하여 관객에게 다가가고자하며 그에 맞는 작품 활동 및 각종 마임 및 공연예술축제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에디터.jpg


      



[최수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3502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