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면으로 ‘멜랑콜리’를 포획하는 일 – 툴루즈 로트렉展

화면 너머의 것을 응시하기
글 입력 2020.07.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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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멜랑콜리의 서막


 

네 시를 조금 넘겨 도착했다. 티켓을 받으러 가니, 다섯 시까지 기다리면 도슨트와 함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고 말해주셨다. 잠시 고민하다가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여전히 누군가의 ‘설명과 함께’ 전시를 듣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특히 로트렉 같은 사람의 작품을 감상할 땐 더욱이 그렇다.

 

왜냐면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다가 요절한 예술인들은 대체로 ‘재미있는 멜랑콜리’를 안고 있어서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그런 사람들은 작품에서 정말 묘하고 재미있는 멜랑콜리를 드러낸다. 대놓고 자신의 우울감을 드러내고자 작정한 작품이건, 그렇지 않건. 전자보다 후자일 때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배로 더해진다. 작품을 그린 당사자의 인생이 우울감으로 점철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하나의 지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드러내고자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뜻이니.

 

이런 흥미를 느낄 때는 도슨트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정합적인 설명을 들어도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기에 그렇다. 그러니까, 이해와 감상은 이때 내게 다른 층위에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분들의 설명은 그 전시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제공해주긴 하나,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유의미한 이정표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 도슨트 입장에서도 나같이 작품에서 작가의 우울감을 읽어내려는 관람객은 반갑지 않을 거다. 놀랍게도, 도슨트와 함께 전시회를 관람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고 찰나의 십 초 동안 머릿속에 저런 내용을 떠올렸었다. 어쨌거나 곧장 티켓을 챙겨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전시장에 발을 들인 순간, 첫 번째로 들었던 생각은 꽤 괜찮은 전시회일 것이란 확신. 두 번째로는 도슨트 설명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쪽을 선택한 게 옳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으로 이 전시장 안에서 로트렉의 멜랑콜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 근원에 대해 결론을 내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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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품의 대상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멜랑콜리


 

전시의 구성을 차례대로 설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이니, 인상에 남는 것들을 키워드로 정리하고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내게 전시회의 관람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포스터’, ‘작품의 대상(특히 매춘부나, 음지 문화에 종사하는 여성)’, ‘기이할 정도로 선명했던 그림의 색깔.’ 미술사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로트렉의 예술 인생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에 해당하는데, 먼저 그의 작품에서 ‘뮤즈’격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 관한 감상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거두절미하고, 로트렉의 포스터 작품에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관객이 포착할 수 있는 멜랑콜리가 있다. 사전적 정의상으로 이 감정은 ‘우울’이나 ‘비애’에 해당하는 감정으로, ‘우울의 병’과 ‘그 기저에 있는 우울의 기질’이라는 두 가지 국면을 갖는다. 이때 기질은 신체적인 것으로, 체내의 흑담즙이 과도한 수준으로 분비되는 양상을 가리킨다. 특유의 철학적 분석에 과학적 엄밀함을 더하고자 했던 것에서 예상한 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출발한 용어라고 한다. (아마 저 시기의 그리스인들만큼 이렇게 잉여적인 동시에 생산적인 분석을 도출하는 인간들이 존재할지.)

 

예술에서 멜랑콜리는 르네상스에 진입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감정이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미켈란젤로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가를 설명하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예술가처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재능은, ‘정상적인’ 특질을 바탕으로 논하기 어렵다. 도대체 저런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어째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작품을 저리 ‘천재적으로’ 만들어내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처럼 천재라는 말에 그를 가둔다.

 

이후 천재가 가지고 있는 특질로 멜랑콜리를 규정해, 예술가는 곧 특유의 비생산적인 기질을 예술을 통해 생산적으로 승화시킨 천재라 정의한 것이다. 어딘가 음침해 보이고, 우울해 보이고, 보편의 타인과 한 차원 다른 사유를 행하는 존재로 말이다. 이렇듯 멜랑콜리는 정합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을 가리킬 때 동원되곤 했다.

 

로트렉과 같은 작가를 설명할 땐 더욱이 그렇다. 그의 정확한 이름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uose-Lautrec)’로, 남프랑스의 명망 높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자제다. 하지만 그는 선천적인 질병으로 추정되는 신체장애를 겪고 있었고, 유년 시절의 사고로 이 질환이 심해지면서 두 다리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게 된다. 이렇듯 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외부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로트렉은 집안의 도움을 빌려 작업실을 얻고 예술 활동에 몰두한다. 앞서 말했듯 로트렉은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기에 넉넉한 후원을 받아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간이 예상하는 바와 달리 활달한 성격을 지녔고, 입담이 좋아 주변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후기인상주의 계열에 속했던 고흐와 같은 화가들과도 서클을 만들어 활발하게 교류했다. 눈여겨볼 만한 사실이 여기서부터 등장하는데, 특히 그는 물랭 루즈를 포함한 밤 업소에 주기적으로 드나들면서 온갖 종류의 스케치 작품과 유화, 포스터 작품을 창작하곤 했다. 그는 물랑 루즈의 포스터를 그리고, 그곳을 비롯해 음지 문화가 주를 이뤘던 업소들의 무용수나 매춘 여성을 그렸다. 이들을 그려낸 작품은 본 전시회의 작품 구성에서 거의 7-80%를 차지하는데, 그만큼 업소 여성을 그린 포스터 및 스케치, 유화 작품은 (특히 포스터) ‘예술가’로서 로트렉이 걸었던 인생의 정체성을 대표한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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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음지의 업소와, 그곳에 종사하는 여성이었나. 많은 사람은 그 이유가 로트렉이 가졌던 신체적 결함에서 기인한, 자기 위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비정상적인’ 특질을 타고난 관계로 로트렉 자신은 일반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내적 우울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로트렉이 업소 여성에 대한 동질감과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한다. 업소 여성들 역시 주류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존재였고, 자신 역시 멀쩡한 신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국 ‘각자가 몸을 담고 있는 주류 물결에 속하지 못했다’라는 동질감을 공유하고, 이 여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작품의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로트렉의 동료였던 에두아르 비야르는 “귀족의 정신을 갖췄지만, 신체적 결함이 있었던 로트렉에게 멀쩡한 신체를 가졌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했던 매춘부들이 묘한 동질감을 주었을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확실히 물랑 루즈를 그린 포스터 작품과, 동시대 매춘 여성을 그려낸 스케치와 유화 그리고 포스터 작품들은 이런 면에서 그의 멜랑콜리를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드러내고 있다. 비록 멀쩡하지 않은 신체를 갖고 성장했지만, 그는 물적으로 부유했고, 당대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할 정도로 미술에 대한 재능도 뛰어났으며, 재치있는 입담을 보유해 귀족 신분으로도 매춘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지 못했다는 열등감은 언제나 그를 감싸며, 자기혐오와 내적 불안으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물론 단순히 업소에서 보냈던 시간이 길었고, 업소 여성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서 그들을 그렸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멜랑콜리의 개념을 가져오면, 그에게 이것저것 ‘해석’을 덧붙일 여지가 생긴다. 그 불안정한 감정이 곧 작품이 내뿜는 멜랑콜리로 이어졌던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단지 ‘화려한 그림’으로 치부할 수 있을 테다. 특히 포스터처럼 직관적인 문구와 형형색색의 색깔들이 화면을 메우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구체적이 전말로 멜랑콜리를 지목하고, 그 감정이 화면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고민하다 보면 그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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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색깔에 대한 단상


 

색깔이라고 칭할지, 색감이라고 칭할지 조금 고민했다. 색깔은 말 그대로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처럼, 명명된 기호다. 제각기 다른 파장을 지닌 빛이 물체의 표면에 반사하는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밝고 어두움을 명명한 것이다. 색감은 거기에 개인의 심리적인 지향이 개입된다. 색에서 개인이 받는 ‘느낌’을 뜻한다. 로트렉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설명할 때, 색감보다는 색깔이 더욱 적절하리라고 판단했다. 특히 포스터 작품을 관람하면서 더더욱 그랬다. 화면에서 오는 색깔의 향연이 강렬해서, 그냥 그 ‘색깔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을 정도였다.

 

이어서 든 생각은, 역시 후기인상주의 화가답다는 것이었다. 미학을 전공했음에도 미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대충 그 시기 작가들이 캔버스 위에 구현했던 선명한 색깔들을 떠올리면 그가 왜 그 계열 화가들의 서클에서 활발히 활동했는지 짐작이 간다. 동시에 그런 색깔을 일반 풍경화나 정물화가 아닌 ‘포스터’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독창적이라 느꼈다. 그 당시 포스터는 주로 무언가를 홍보하거나, 선전의 도구로 활용됐기에 미술품과는 거리가 멀었을 테다.

 

그런데도 그의 포스터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았다. 미디어아트의 포문을 연 화가라고까지 말하면서 말이다. 이럴 때면 사람들은 캔버스로 된 “미술작품”보다, 미술작품이 아님에도 그렇게 보이는 매체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후자가 더 창의적이고, 신선하고, 삶과 맞닿아 있기에 그런 걸까. 전시장에서도 포스터를 모아뒀던 구간에 사람들이 유독 몰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많지 않았던 포토존 중 하나를 차지했던 구간도 여기였고.

 

여담으로, 이 화가 작품이 보여주는 그런 색깔들 때문인지 전시회 굿즈가 정말 예뻤(!)다. 지금껏 작가의 작품을 포스터 ‘형태’로 만들어 굿즈로 내놨던 것들에는 그다지 눈길이 안 갔는데, 로트렉전 굿즈는 말 그대로 정말 ‘포스터’였기 때문에...쓸모만 있었다면 구매했을 것이다.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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