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퍼핏을 위한 공간, 퀘이 형제의 작은 세계를 엿보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글 입력 2020.07.2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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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악어의 거리 “의상실”.jpg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악어의 거리 "의상실"

 

 

"죽는다는 것은 없다.

생명이 없다는 것은 단지

알려지지 않은 삶의 형태를 숨기는

변장일 뿐이다."

 

_브루노 슐츠

 

 

무대미술가 박동우는 '무대미술가라는 직업은 사실상 화가이자 시인이자 건축가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인으로서 공연 텍스트를 이 시대에 맞게 함축적으로 해석하고, 화가로서 그 해석과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 그림을 건축가로서 3차원적인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완성되는, 그런 직업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무대미술가가 만들어내는 무대 모형이 생각났다. 함께할 때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술이 공간을 만나야 창작자들의 결실을 온전히 전할 수 있듯이 말이다.

 

예술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은 여러 가지다. 극장, 야외무대, 전시장, 공방... 경기장이 콘서트장이 되기도 하고 버려진 공간들이 예술을 담을 수 있는 대안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기도 한다.

 

 

3. 블랙드로잉_끝없이 욕망하는 사람들_1.jpg 4. 라보네쿠에르 성_1.jpg

Ceux qui dèsirent Sans Fin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끝없이 욕망하는 사람들 (좌)

Château de Labonnécuyère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라보네쿠에르 성(우)

 

 

그 모든 공간의 기반이 되어준 퀘이 형제의 블랙드로잉은 그들의 작품관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종이와 연필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표현해낸 장면들은 섬세하고도 풍부했다.

 

그렇게 홀로코스트 역사, 프란츠 카프카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소설 등 역사적인 사건, 인물과 함께 프랑스 와인 같은 일상의 소재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함축적 표현은 퍼핏이라는 인간의 축소판을 통해 재탄생한다.

 

퍼핏은 화면 밖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는 동시에 화면 속에서는 퀘이 형제가 불어넣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런 그들을 위한 공간이 바로 퀘이 형제가 창조한 '도미토리움 (라틴어로 ‘방’ 혹은 ‘잠’을 의미)', 즉 디오라마 박스인데 쉽게 말해 퍼핏을 위한 작은 방이라고 할 수 있다.


 

8.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_프라하의 연금술사.jpg

The Cabinet of Jan Švankmajer

"The Alchemist of Prague"

PhotographⓒKIM yeonje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 "프라하의 연금술사" 



"도미토리움 전시를 통해 저희가 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관객 여러분께서 무대 데코 속에 설치된 퍼핏을 보고 저희 작업의 진정한 규모를 느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실제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영화적 공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로,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퍼핏과 데코의 물질적 형태를 온전히 관찰하고 탐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퀘이 형제

 

 

물론 그 공간이 아늑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지만 퀘이 형제의 끝없는 상상을 현실로 불러와 담아내는 작은 방은 퍼핏에게는 짧은 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세계다. 그 공간이 있어야만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그들의 신비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이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가 아닐까.

 

관찰은 정지된 상태에서 더욱 자세하고 집요해진다. 도미토리움 속의 소품 하나하나, 퍼핏의 몸짓 하나하나가 매우 섬세했다. 꼭 영상 속에서만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소재로 표현된 그들의 움직임은 입체적인 삽화처럼 퀘이 형제의 스토리를 전하고 있었다.

 

   

10. 캘리그라퍼.jpg

"The Calligrapher" BBC 2 Ident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캘리그라퍼

 

 

캘리그라퍼라는 작품에서도 그 섬세함은 빛을 발한다. 전시장의 곳곳에는 확대경이 설치되어 퀘이 형제의 작품을 더욱 자세히, 그리고 시선에 따라서 여러 각도로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 작품도 정교하게 하나하나 그려낸 선과 캘리그라피, 그 자체만으로 표현한 입체감을 확대경을 통해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퀘이 형제의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영상 속에서였다고 생각한다.

 

영상을 보는 순간 '작가들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블랙드로잉에서부터 느꼈던 '세밀함'은 퀘이 형제의 상징을 넘어선 그 자체였다.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도 영상미지만 퍼핏 애니메이션은 그 특성상 스톱모션으로 제작되기에 그 뒤에 존재했을 작업 과정을 떠올려 보면 그들의 결과물과 꾸준함이 더 경이롭게 느껴졌다.

 

단지, 음악을 단순한 백그라운드가 아닌 하나의 시나리오로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던 퀘이 형제의 철학이 인상깊었던 나에게 전시장 내의 소음은 영화의 소리를 감상할 수 없는 방해요소가 되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하는 만큼 전시를 통해서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영화적 공간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실제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영화 속 퍼핏의 삶과 퀘이 형제의 철학을 충분히 즐겨보면 어떨까. 상영정보는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 Quay Brothers: Welcome to the Dormitorium -

 

 

포스터.jpg

 

 

전시일정

2020년 6월 27일 ~ 10월 4일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입장 마감: 오후 6시)


관람료

성인 12,000원

청소년 10,000원

어린이, 유아 8,000원

 

 

 

김유이.jpg

 

 

[김유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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