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속의 그림자와 마주하는 시간 -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서늘한 여름밤, 내면 속 악몽 같은 불협화음의 동굴로 초대합니다.
글 입력 2020.07.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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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인형들이 다 무섭게 생겼어."

 

전시를 관람하던 한 아이가 내 옆에서 했던 말이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전시회는 흡사 어린이 영화인 줄 알고 만만하게 봤다가 큰 코 다치기로 유명한 영화 ‘판의 미로’ 같았다.

 

'퍼핏(Puppet, 인형, 꼭두각시.)'의 대가인 퀘이 형제의 작품 전시라는 설명만 듣고 아기자기한 인형을 기대하고 왔다가는 심장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전시는 여러 도미토리움에 초대되어 각 방을 구경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무료로 제공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입장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전시회에 입장하는 동시에 외부와 단절된 신비한 어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전시는 마치 불협화음이 주를 이루는 쇤 베르크의 음악과 같았다. 공포스럽고 왜인지 모르게 불쾌하기까지 했다. 심연에 잠들어있는 무언가를 계속 건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퀘이 형제의 작품들이 이렇게 괴이한 기분을 들게 하는 이유가 칼 구스타프 융의 ‘그림자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림자 이론'의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대체로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아는 긍정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자아 이상(ego-ideal)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의 정신 내용 가운데서 열등하고 부정적인 요소들은 자아에서 몰아낸다. 따라서 한 사람의 정신을 이루고 있지만 자아에 포함되지 못한 내용들은 그림자(Shatten)가 된다.

- 전교훈 외, 「융 심리학의 인간학적 함의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사대총논 제66집, 2003.

 

 

퀘이 형제의 작품들은 융이 말한 인간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표현한 것 같았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내면세계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길래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또 그들이 관객들의 그림자까지 건드릴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처럼 '그림자'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전시를 즐긴다면 그들의 난해한 세계를 이해하기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퀘이 형제의 작품세계를 크게 드로잉, 도미토리움, 스톱모션으로 나눠 그 속의 '그림자'들을 확인해보자.
 
 
 
마음 한 부분이 까맣게 침잠하는 느낌, 블랙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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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를 연습하는 연인>
블랙드로잉 중 한 작품
 
 
퀘이 형제가 1974년에서 1977년까지 제작한 흑백조 드로잉 연작(블랙드로잉) 중 한 작품이다. 이 그림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 한편이 서늘하게 쿵 사라지는 기분과 외면하던 내면의 무거운 돌의 무게를 그대로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블랙드로잉 작품들은 전시 초입에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태까지 이 시리즈의 그림들만큼 심연의 욕망, 불안, 폭력성, 증오, 상실감 등 어두운 감정을 구체화 한 작품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객들도 스스로의 내면 속 불안 혼란 우울 등의 감정을 떠올리며 감상하면 더욱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랙 드로잉 시리즈는 형제가 동유럽 여행 도중 접한 전쟁, 군대, 유대인, 학살, 고문의 흔적을 그린 시리즈이다. 그들의 작품이 내내 어두운 악몽 같은 분위기를 띄고 있는 이유를 이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꿈의 방, 도미토리움

 

도미토리움이란 라틴어로 '잠' 또는 '방'을 뜻한다. 형제는 자신들의 작품에 '도미토리움'이란 이름을 붙였다. '잠'은 꿈의 방이며 그래서 더욱 앞서 말한 '그림자'가 표출되기 쉽다.
 
꿈의 대가 프로이트는 아예 꿈에서 무의식을 해석해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퀘이 형제의 작품들은 매우 기괴하고 성애적이며 불쾌하기도 했는데, 이는 바로 그들의 작품이 '도미토리움' 죽 무의식의 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그들 작품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는 상자에 달린 확대경을 들 수 있다. 확대경을 들여다보면 작은 상자 속에 전연 새로운 커다란 세계가 갇혀있다. 황홀한 악몽을 엿보는 기분이다. 작은 내면의 '방'으로 대비되는 상자 속에는 넓디넓은 꿈, 즉 무의식의 세계가 환상적으로 펼쳐지는데 이 것만으로도 전시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신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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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실의 남과 여 "오 불가피한 운명이여">
확대경으로 상자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퍼핏이 기다리고 있다.
 
 
 
퍼핏에게 생명을, 스톱모션

 

퀘이 형제의 퍼핏들은 정말 살아있는 것 같았다. 외형은 비록 몇 가지 잡동사니로 얼기설기 뒤얽힌 인형이었지만 형제들의 손만 거치면 살아 숨 쉬는 듯, 인간의 고통, 쾌락, 슬픔 등을 그대로 느끼는 듯이 보였다.
 
살아 숨 쉬는 인형을 만드는 일에 대해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손으로 일한다는 것은 매우 촉각적이고 유기적인 과정이며, 단일 프레임당 가장 미묘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애니미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람들의 손에서 펼쳐지는, 사물의 '영혼'을 잠재적으로 해방시키는 진정한 연금술의 존재를 믿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전주국제영화제, <퀘이 형제 입문: 스톱모션, 도미토리움, 드로잉> 중
 
 
퀘이 형제가 이토록 생동감 넘치는 '인형술사'가 된 데에는 '브루노 슐츠'와 '얀 슈반크마예르'의 영향이 컸다. 이번 전시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얀 슈반크마예르'를 오마주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품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를 관람할 수 있다. 더불어 날로 생생하게 퍼핏의 모션을 구사하게 된 데에는 우리나라 퍼핏 뼈대 제작자 김우찬 작가와의 협업도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퀘이 형제는 실험정신을 가지고 설치미술. 실사 영화 등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전시에서 직접 그 다양한 표현들을 확인해보기를 추천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다시 돌아가 앞서 말한 그림자 이론에 비추어 보자면 우리는 내면 속의 그림자가 있음을 인정하고 가끔은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퀘이 형제는 그 그림자를 예술로 승화하여 표현하였다고 생각됐다. 퀘이 형제의 작품들은 내면의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들을 용기 있게 직면하고 싶을 때 다시 생각 날 것 같다.
 
사람들이 왜 공포영화를 보는지 조금은 이해할 법한 전시였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이 꼭 축축한 동굴 같았다. 무더운 여름날, 전혀 새로운 동굴 같은 그림자 세계를 체험하고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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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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