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평범함의 그림자, 그 옆을 바라보다 - 넥스트 투 노멀 [공연]

글 입력 2023.11.2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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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의 옆에서’라는 제목에서 알아볼 수 있듯,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끊임없이 평범함을 갈망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나탈리와 평범의 언저리


 

“CK 온 스테이지(CK On Stage)” 프로젝트를 통해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의 학생들이 각색한 [넥스트 투 노멀]은 기존의 엄마 ‘다이애나’ 중심의 전개에서 나아가 그의 가족, 남편 ‘댄’과 딸 ‘나탈리’를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기존 라이선스 공연을 본 적이 없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관람 이후 다이애나만큼이나 나탈리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누가 나에게 제목 ‘넥스트 투 노멀’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을 묻는다면 나탈리였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다이애나를 따라 흘러간다. 평범을 얇게 가장한 채 위태롭게 걸어가는 다이애나의 주변, 이야기의 변두리에서 나탈리는 그 누구보다 평범을 동경한다. 그는 언제나 나를 꽉 안아주는 엄마, 언제나 나를 먼저 위로해 주는 아빠를 원한다. 그러나 나탈리의 엄마와 아빠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결국 엄마 다이애나가 자살을 시도하자 나탈리는 절망한다.

 

배우 김지민이 연기한 나탈리가 무너지는 이유는 결국 ‘평범함’ 이상으로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던 것은 천편일률적인 정상성, 즉 그림 같은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가족’이다. 극 내내 ‘평범함의 언저리라도 괜찮다’라며 정상성을 갈망하던 인물의 모습을 생각하면 상당히 모순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오빠의 죽음이라는 기억을 안고 정신병으로 힘들어하는 엄마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을 꼭 안아오는 엄마는 ‘옳지 않다’라고 느끼는 그 모순이 나탈리를 흥미롭게 만든다.

 

   

 

전형적인 ‘미친 인간’으로부터의 탈피


 

[넥스트 투 노멀]이 흥미로운 연극인 또 다른 이유는 정상성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있는 전형성의 굴레를 벗어났다는 점이다. 사회의 정상 규범을 부정하는 이야기의 경우 규범에서 탈락한 ‘비정상인’, 흔히 말하는 정신병자를 그 수단으로 사용한다. 또 그중 대부분은 여성을 택하니, ‘미친 여자’의 사용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보통 그런 미친 여자들을 끊임없이 날을 세우고 짜증을 부리는 히스테리 계열과 몽환적인 눈빛으로 시선을 저 멀리 처리하는 꿈 산책 계열로 나눈다.

 

[넥스트 투 노멀] 또한 미친 여자인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극을 끌어 나간다. 자칫하면 지루하고 잘못 쓰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인물을 등장시키는 극본만큼이나 그를 해석하는 배우의 역량이 중요하다. 배우 류하목이 인상 깊었던 이유다.

 

이야기의 1부, 전기충격 치료를 권하는 의사에게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다이애나가 “씨발 너 나 미친년으로 보는 거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인물이라면 당연히 악에 받쳐 소화할 대사지만, 류하목의 다이애나는 달랐다. 그는 물 흐르듯, 강렬하지 않으나 명확하게 적대적인 강세로 대사를 소화했다. 배우가 인물을 얼마나 연구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사였다. 다이애나는 이 대사 하나만으로 내 안의 계열 분류에서 빠져나갔다.

 

또 다른 인상적인 미친 인간은 드물게 등장하는 ‘미친 남자,’ 댄이었다. 댄은 이야기 내내 가장 전형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딸의 마음과 아내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진 못하더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우직하고 가정적인 가부장이다. 댄이 게이브의 환각을 본다는 걸 알고 나서야 그 또한 [넥스트 투 노멀]의 인물인 것을 상기할 정도로 댄이 둔하게 느껴졌다. 극 중에서 분명히 내가 짚어낼 수 있는 신호가 있었을 텐데, 눈치채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 극 중 극의 연기를 제대로 해냈다.

 

극은 댄의 ‘덩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댄은 다이애나와 나탈리를 갑갑하게 만드는 벽이기도, 쓰러지는 그들을 받아내는 의자이기도, 종래엔 무너진 가정이기도 하다. 주저앉은 댄이 게이브와 대화하는 장면은 아슬아슬하게 지켜온 가정의 파괴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덩치 큰 가부장의 붕괴가 주는 무게감이다.

 

날아갈 듯 가벼운 다이애나와 언제나 자리를 지켰던 댄이라는 두 ‘미친 인간’의 대비가 섬세하다. 정신병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기 위해, 그리고 또 지나치게 전형적인 인물 활용을 경계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한 흔적이다. 공연 내내 많은 고민이 엿보여 좋았다.

 

 

 

아쉬운 음향과 섬세한 조명


 

연극이 올라간 극장은 한예극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장길 66(동숭동) 1층)으로, 지정 좌석이 170석인 소극장이다. 높은 층고에 좁은 폭으로 구성된 무대에 2층의 구조물을 활용하여 진행되는 뮤지컬이다 보니, 까다로운 음향을 다루기 위해 많은 신경을 기울였으리라 예상한다. 안타깝게도 마이크 잡음, 배우 간 볼륨 차이로 인한 어색함 등의 음향 문제는 공연 내내 귀에 들어왔다. 당연히, 중간중간 불안했던 화음을 음향이 덮어주지도 못했다.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가깝다는 건 소극장의 큰 장점이다. 배우의 연기를 관찰하고 그 에너지를 곧바로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작은 극장에서 만나는 연극과 큰 극장에서 만나는 연극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소극장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고, [넥스트 투 노멀]에서도 가까이에만 목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떨어진 위치의 배우들이 화음을 이루는 곡이 많은 극의 특성상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진 것 같아 아쉬웠다.

 

음향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조명은 환상적이었다. 극 중 다이애나-댄, 나탈리-헨리가 무대의 다른 공간에서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연출이 많았다. 사건의 동시다발적인 전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지만, 조명이 섬세하게 활용되지 않았다면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코미디 같은 연출로 관객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었던 ‘록스타’ 매든 박사의 상담 장면과 급박한 음악과 함께 섬광이 번쩍였던 다이애나의 전기충격 치료 장면도 치밀한 조명 연출 덕분에 멋지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아쉬웠던 부분을 꼽자면 게이브의 정체가 공개되는 장면이었다. 개인적으로 게이브가 환각이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충격이었는데, 내가 받은 인상에 비해 연출이 약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다이애나와 댄의 대화가 아닌 나탈리와 헨리의 대화로 공개된 것도 살짝 아쉬웠고, 강렬한 조명을 이용해 각 인물이 대화하는 공간에 분리된 감각을 주거나 그 순간을 더 충격적으로 묘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는 길, 캐스팅과 스태프 보드를 보던 중에 깨달았다. 조명 담당 스태프는 이지민 조명 매니저와 최한비 조명 프로그래머 두 명인데, 음향을 담당했던 스태프는 이송학 음향 디자이너 한 명이었다. 소극장의 특성도 있겠지만, 투입된 인력의 크기 또한 차이의 한 원인이겠구나 싶었다. 누가 봐도 적은 인원으로 성공적인 뮤지컬 한 편을 만들어 낸 스태프들의 노력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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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옆으로 미뤄두었던 것


 

두 명의 정신병자와 한 명의 위태로운 청소년이 생각하는 ‘평범함’은 모두 다르다. 게이브의 기억을 잃은 다이애나를 두고 ‘더 나은 기억으로 채워갈 수 있다’라는 댄과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나탈리가 대립하는 이유고, 다이애나가 결국 댄과 나탈리를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각자만의 방법으로 전부 다르게 추구하는 가치는 보통 허구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결국 ‘노멀’, 정상성이 아니라 ‘넥스트 투,’ 그 옆에 있는 무언가를 돌아보게 한다.

 

정상적인 가족의 화목함을 위해 달린 그들의 끝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과는 멀었다. 다이애나는 결국 댄과 나탈리를, 그를 억누른 ‘평범함’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난다. 그에게 극의 끝맺음은 언제나 평범함의 옆에 있던 자신이다. 댄은 다이애나가 떠나고 나서야 본인의 묵은 상처를 마주 보고, 매든 박사가 권하는 상담을 받아들인다. 나탈리는 부모의 지난한 역사로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랑의 길을 걷는다.

 

늘 날고 싶어 했던 다이애나가 떠난 자리엔 늘 원했던 평범함에서 떨어진 두 사람이 남았다. 극은 끝났고, ‘화목한 세 명의 가족’도 끝났지만, 어쩐지 그들이 불행해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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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족사진 같은 배우들의 인사. 그러나 저 사진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극장 밖으로 나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는 결국 관객이 ‘미뤄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 같았다.

 

다들 ‘나만의 평범’을 위해 살아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평범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온통 사회에서 규정해 들이대는 개념들 사이의 ‘정상’이다. 우리는 항상 정상성이라는 잣대에 들어맞으려 애쓴다. 주어진 길을 걸으려 나를 이리저리 끼우고, 그 길이 너무 높더라도 아등바등 올라선다. 눈앞의 일들이 아닌 다른 것들에 관해선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런 우리에게 [넥스트 투 노멀]은 묻는다.

 

다이애나와 댄과, 나탈리와 우리가 무엇이 다른가?

당신은 평범함을 위해 어떤 것을 미뤄두었는가?

무언가에 쫓겨 단단히 잊어버린 ‘내’가 있지는 않은가?

 

고민하는 관객에게, 극은 평생을 정상성의 언저리에서 바둥거리는 삶이 고달프지 않냐고 묻는다. 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함의 옆을 비춘다. 나는 그 평범함의 옆에서 예전의 나를 보았다. 힘껏 밟혀 납작해진 나를, 희미해진 기쁨을, 겨우 숨 쉬고 있는 현실감을 보았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무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댄이 그랬던 것처럼, 여행을 떠나는 다이애나가 그러할 것처럼,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중이다.

 

 

 

[컬쳐리스트] 박주은.jpg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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