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이하고 독보적인 영화 미술의 세계 -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전 [전시]

글 입력 2020.07.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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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톱모션은 물체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사진을 찍은 후 이어붙여, 마치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촬영 기법이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그려 빠르게 넘기는 애니메이션의 원리와 비슷하지만, 그림이 아닌 실제 사물을 직접 움직이고 촬영한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이 기법으로 촬영된 영화에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월리스와 그로밋> 시리즈, 팀 버튼 감독의 <유령 신부> 등이 있다.

 

오늘 소개할 퀘이 형제도 스톱모션 기법을 활용해 퍼핏 애니메이션을 만든 예술가들이다.

 

 

1. 퀘이형제.jpg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스티븐 퀘이와 티모시 퀘이 형제는 필라델피아 예술학교와 영국 왕립 예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서 생업과 예술 작업을 병행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이후 영국에서 만난 친구 키스 그리피스의 제안으로 처음 영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악어의 거리(1986)>라는 작품이 칸 영화제의 초청을 받으며 명성을 얻게 되고, 영화 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이나 실사 영화까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 예술가들이기도 한다.


 

포스터.jpg

 

 

6월 27일부터 10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개최되는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이하 퀘이 형제 전)"은 이러한 퀘이 형제의 작품 세계를 시기 순으로 소개한다.

 

포스터 속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전시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여운 분위기의 애니메이션과는 거리가 먼, 어둡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 때문에 퀘이 형제 전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기이하고도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퀘이 형제가 미국에서 그린 ‘블랙 드로잉’에서부터 가장 최근작인 <인형의 숨(2019)>에 이르기까지, 전시 전반과 작품에 관한 소개를 해보려 한다.

 


KakaoTalk_20200718_141855857.jpg

 

 

매표와 함께 발열 체크를 마치면, 전시장 입구에서 두 개의 QR 코드를 볼 수 있다. 바로 무료 오디오 가이드의 QR코드다. 관람자들은 보통의 전시회에서 접하는, 작품과 작가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인 ‘클래식 오디오 가이드’와, 전시를 영화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전하는 ‘시네마틱 오디오 가이드’ 중 하나를 골라 선택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제작되었다는 ‘시네마틱 오디오 가이드’는 퀘이 형제의 저택에 있는 집사 Q가 전시장을 퀘이 형제의 저택이라고 소개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6. 부르노 슐츠의 “악어의 거리”.jpg

Bruno Schulz's "Street of Crocodiles"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도미토리움’은 라틴어로 방이나 묘소를 의미한다.

 

퀘이 형제는 이 단어를 자신들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촬영을 위해 만든 모형인 디오라마를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실사 영화로 따지면 영화의 세트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퀘이 형제는 영화의 부수적인 소품이나 배경 정도로 여겨지는 디오라마를, 자신들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독창적인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전시장이 여러 개의 방으로 구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거대한 도미토리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시장은 실제로 레드 카펫과 어두운 조명으로, 드라큘라나 유령이 나올 법한 저택처럼 꾸며져 있었다. 전시 초반부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인형의 숨(2019)> 속 퍼핏과, 퀘이형제가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첫 장편 실사영화 <벤야멘타 연구소(1995)> 속 소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영화미술 소품에 세월의 흔적, 사용한 흔적을 입히는 작업을 ‘간지를 낸다’고 하는데, 이 소품들은 그런 의미로 ‘간지’가 가득했다. 매끈하고 잘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상처 내고 더럽혀진 소품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도미토리움 전시를 통해 저희가 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관객 여러분께서 무대 데코 속에 설치된 퍼핏을 보고 저희 작업의 진정한 규모를 느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실제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영화적 공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로, 시선을 천천히 옮기며 퍼핏과 데코의 물질적 형태를 온전히 관찰하고 탐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늘 데코가 영화의 테마를 담은 시적 그릇으로서 전달돼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 퀘이 형제

 


3. 블랙드로잉_끝없이 욕망하는 사람들.jpg

Ceuxqui dèsirent Sans Fin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다음으로는 퀘이 형제의 초기작인 블랙 드로잉 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재료가 부족해 흰 종이에 연필로 그린 이 드로잉들은 유럽을 여행하며 퀘이 형제가 느꼈던 전후 동유럽의 어두운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증오를 연습하는 연인>,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등의 작품은 놀라운 섬세함과 우울한 색채로 관람자들을 빨려들게 한다.

 

 

8.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_프라하의 연금술사.jpg

The Cabinet of Jan Švankmajer "The Alchemist of Prague" PhotographⓒKIM yeonje

 

 

그다음 순서는 퀘이 형제의 영화 작업물인 <이름없는 작은 빗자루>,<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과 <악어의 거리>이다.

 

각 영화는 흰 벽에 빔프로젝터로 상영되고 있고, 옆에는 영화를 만드는 데 사용한 도미토리움이 전시되어 있다. 20분 남짓한, 미술관에서 관람하기에는 조금 긴 길이의 단편영화지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관람자들이 원하는 만큼 일부만 관람해도 충분할 듯했다.

 

 

5.악어의 거리 “의상실”.jpg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퀘이 형제의 영화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전개가 없다. 마네킹 같은 얼굴을 한 퍼핏들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퍼핏이 수납장을 열어보거나, 공이 굴러가거나 하는 장면이 병렬적으로 제시된다.

 

시간의 흐름이나 인과 관계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바로 퍼핏들이 작은 공간을 들여다보고, 구멍 속으로 손을 넣어 안에 있는 사물을 꺼내는 등의 동작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는 초현실적인 세계이지만, 좁은 공간을 탐구하고 그곳에 가 닿으려 하는 퍼핏의 행위가 인간의 본연적인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다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처럼 인물을 관찰자 시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속 퍼핏이 되어 주변을 관찰하는 1인칭 시점을 자주 체험해볼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보다는 실사 영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캘리그라퍼.jpg

"The Calligrapher" BBC 2 Ident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그 이외에도 관람자가 직접 관에 있는 구멍을 통해 영상물을 볼 수 있는 <하인 여행의 관>, 영화 <해부실의 남과 여>의 도미토리움, BBC 로고 영상으로 제작되었던 <캘리그라퍼>, 몰리에르의 희곡 서민귀족을 무대로 올릴 때 만들었던 무대 세트의 모형 등 흥미로운 작품이 가득했다.

 

해외 미술관을 방문하기 어려워지게 된 요즘, 뉴욕 현대미술관, 일본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전 세계의 미술관과 영화관을 찾았던 퀘이 형제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되어 흥분되고 기뻤다.

 

조금은 기괴하고 낯선 느낌이 들지만, 우리 퀘이 형제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도미토리움을 만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참고

제 21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 전시

'퀘이 형제: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브로셔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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