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스다 미리 좋아하세요? 전 좋아해요! [도서]

생각이 많은 밤에 침대 맡에 두고 읽을 만화책을 추천한다면.
글 입력 2020.07.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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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알라딘에서 알게 된 만화책


  

제작년과 작년은 유독 종로에 나갈 일이 많았다. 약속 시간 전후로 시간이 조금 뜰 때면 나는 서성거리다가 알라딘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면 나는 곧장 만화책 구역으로 가서 가지런히 놓인 책들의 제목을 눈으로 훑었다. 눈에 걸리는 책이 두어권 있었다. 단색의 배경 위에 동글동글한 폰트로 한 문장. <결혼하지않아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싫은 사람>. 헉, 내가 한 번쯤 해봤을 생각들이 그대로 적힌 이 제목은 뭐지. 호기심에 집어든 책을 그대로 집까지 가져갔다.

 

작가는 마스다 미리. 1969년 오사카 출신. 교토 예술 단기 대학 졸업 후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프리 일러스트레이터로 독립. 2001년 'OL은 대단해' 한국출판명은 '여자들은 언제나 대단해'가 그의 데뷔작이다. 2006년 시작된 수짱 시리즈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며 유명해졌고, 2013년 결혼하지 않아도괜찮을까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미리는 필명이며 그는 데뷔 이래 대체로 신비주의를 지켜왔다고 한다. 실물 사진이 궁금하지만 모처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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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일보. 작가가 인터뷰를 위해 보낸 캐리커쳐.

 

 

 

마스다 미리하면, 수짱 시리즈.


  

일본에서 30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라고 불리며, 3040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30대 여성들이 겪을 법한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 그렇다고 20대인 내가 공감할 포인트가 없었던 건 또 아닌데. 나도 이미 그의 팬이기 때문에. <지금이대로 괜찮은 걸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싫은 사람>, <수짱의 연애>의 네 작품으로 이어지는 수짱 시리즈는 작가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수짱이 겪는 일상적인 고민들이 담겨있다.

 

수짱이 보내는 하루하루는 우리가 보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공감할 부분이 많다. 코너 속의 코너 느낌으로 있는 한 페이지짜리 삽화에는 ‘어느 날의 수짱, 평상시에는 대충 건너는 횡단보도지만, 아이가 있어서 신호를 지켰다.’가 써 있다. 정말 내 생각까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치밀한 공감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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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 시리즈 일부

 

 

일상생활에서 미묘하게 싱숭생숭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캐치해낸 건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묘하게 껄끄러운 직장동료를 싫어하는 수짱을 다루고 있으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기보다는 불편한 사람? 아니, 불편한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싫은 사람이야.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속이 뒤숭숭해진다. 뒤숭숭해지고 삐걱댄다. 싫다면 떠올리지 않으면 그만이잖아. 하지만 왠지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싫어하는 사람과 부스러기가 남는 대화를 반복하고, 괜히 그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만 지고 가는 밤을 보내기도 여러 번. 책의 후반부에서 수짱은 결국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지쳤어. 몸도 마음도. 일, 그만두고 싶다. 그만둘까. 안 돼, 안돼. 내가 그만두면 그 뒤는 어떻게 되겠어! … 상관없잖아, 나중 일 따위. 눈앞의 일이 지금의 내게는 중요한 것 아냐? 왠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꼬이고 꼬여서 풀리지 않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싫어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그러다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이 나쁜 사람 같아서 다시 괴로워져. 도망갈 곳이 없다면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이때는 탈주밖에 없어. 그만두자. 일, 그만두자. (중략) 그 사람을 싫어하는 나도 틀리지 않아. 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거지. 그래도 되는 거지, 나. 아, 오랜만에 꽃향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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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수짱은 어떻게 탄생한 인물이었냐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을 찾았다.

 

"35세 때 한창 장래를 고민했습니다. 그때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나쁜 인생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고 생각해보고 싶어 만화를 그렸습니다. 출판 계약이라든지 정해진 게 없었지만 그냥 그렸어요. 그려놓고 나서 여러 출판사에 작품을 보냈죠." (출처 손민규, 마스다 미리 “순간순간을 즐기는게 행복”, 채널예스)

 

수짱에 자신을 대입해서 이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정말 남일 같지 않은 그 일에, 수짱은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든가 조언을 얻은 이들.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24권이 출간되었고 모두 합해 22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하니 탄탄한 팬층이 있는 건 확실하겠지.

 

최근 마스다 미리는 수짱 시리즈 외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40대 딸이 주인공인 <사와무리 씨댁의 이런 하루>, 부부의 일상을 그린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등 다양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수짱을 모처럼 보기 힘들어지니, 수짱의 오랜 팬들은 ‘작가가 유명세 때문에 변했다. 더 이상 수짱 같은보통의 여성을 다루지 않는다’고 섭섭해 한다. 이에 대한 작가의 답이다.

 

"저는 늘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부부 이야기, 남자 이야기를 비롯해 여러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20,30,40 대 보통 여성들이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새 만화가 올해 7월 일본에서 나와요.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수짱도 다시 그릴 거예요. 부디 기다려 주세요!"

 

 

 

좋아하는 만화책이요? 오늘의 인생을 제일 좋아합니다.



내가 마스다 미리의 만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오늘의 인생>. 책 전반의 중심이 되는 큰 스토리도 없다. 매일 본 것, 느낀 것을 짤막하게 여러 개 모아놓았을 뿐. 이 책을 살까말까 고민하던 때 온라인 서점에서 본 책 소개글이 좋았던 걸로 기억해 다시 찾아가 봤다. 책소개. 출간 즉시 4만 부를 돌파한 마스다 미리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만화. 굵은 글씨굵은 글씨. 조금 더 내려서.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습니다. 출간 인터뷰 중. 마스다 미리가 이렇게 말했다고? 소리를 내지 않고 혀끝으로만 이 문장을 읊어보았다. 더 읽어보자. 다음 단락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네. 마스다 미리가 그린 하루들이 그렇듯, 우리의 하루 역시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우리의 하루도 특별한 날로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그 누구의 인생보다 소중해진다. 굵은 글씨는 여기에다 둬야하지 않을까요 예X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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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생 중 (읽는 법 한 페이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왼쪽 위에서 아래로 순)

 

 

전철 옆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잔뜩 벌고 싶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에게.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 그는 지지 말렴. 지지 말렴 이라고 응원하면서 전철에서 내렸다고 한다.

 

나는 이 장면을 찍어 ‘부자가 되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친구에게 보냈다. 물론 그 친구도 직장생활에 치여 오늘도 역시 힘든 하루를 보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울컥 떠오른 친구 생각에 사진까지 찍어 보냈지만 ‘뭐야 겁나 슬퍼 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라는 싱거운 답밖에 받지 못했다. 그래도 너도 조금 쯤은 위로 받은 거지? 지지 말자 ~

 

 

 

행복은 뭘까요, 대체?


  

<오늘의 인생>의 한 에피소드다.

 

오후까지 푹 잔 토요일. 커피가 떨어져서 주머니에 지갑만 넣고 장을 보러. 슈퍼에서 커피를 사고 빵집에도 들르고. 바람이 조금 쌀쌀했지만 날은 맑고. 비닐봉지 너머로 맛있는 빵이 보이고. 아아, 인생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쉽게 감동받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들의 인물들은 인생에 대해 여러 번 고찰하기 때문인지. 마스다 미리에게 행복을 묻는 질문이 유독 많은 것 같다.

 

*

 

Q. 선생님을 멘토로 여기는 독자도 많습니다. 답이 없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어려운 문제인데요. 정해진 목적이나 목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서, 인터뷰를 위해 여기까지 오다가 만약 넘어졌다고 해 봐요. 그때는 행복하지 않겠죠. 하지만 여기 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행복하죠.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이게 행복이지 않을까요. (출처 손민규, 마스다 미리 “순간순간을 즐기는 게 행복”, 채널예스, 2014.10)

 

Q. 행복은 뭘까요. 수짱이 걱정한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이 할머니가 되는 삶’도 정말 괜찮을까요.

A. 행복의 형태가 한가지만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해요. 행복은 ‘큰 행복’하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은 행복’ 여러 개가 있는 거예요. 좋은 날씨에 행복하고, 케이크가 맛있어서 행복한 거죠. 주변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 몇 번이든 행복하다고 느껴야 해요. 눈앞의 작은 일을 건너뛰고 먼곳에 있는 큰 일을 할 순 없어요. 조금씩 노력해야죠. (출처 마스다 미리 “큰 행복보다 작은 행복을 찾아 여러 번 느끼세요”, 한국일보, 2018.03)

 

*

 

나는 마스다 미리를 좋아해 라고 지인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거 실패한 사람들이 어물쩡 넘기는 패배주의가 만연한 만화 아냐? 뜬금없는 공격을 받았다. 정확히 저 문장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저런 톤이었다. 뭐라고? 정말 당황해서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격분한 나는 그 대답을 곱씹다가 나와함께 마스다 미리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저 대화를 공유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하루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나? 생각이 다르구나. 오늘은 이렇게만 짚어보자. 나는 마스다 미리의 행복론과 인생론에 이미 충분히 동의하고 있거든.

 

빡빡한 지하철에서 앞 사람이 멘 가방에 귀여운 인형이 들어 있어 조금은 살만했다는 그 일화에 나는 출근길 7호선에서 옆 사람이 끼고 있는 귀여운 반지에 시선을 뺏긴 적이 있던 게 생각이 났고. 맑은 날 맛있는 빵을 사서 행복해하는 일화에 맛있는 커피를 먹고 연신 박수만 쳤던 내가 생각났으니.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보면서 그의 행복을 내 순간순간에 대입하는 일은 계속되지 않을까. 아직 그처럼 행복이 뭐라고 정의내릴 단계는 아니겠지만, 그의 책을 읽으며 내가 정의하는 행복에 대해 조금씩 감을 잡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 그래서 내가 마스다 미리를 읽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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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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