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방탈출처럼 재밌는 고전 그림 해독하기 - 이야기 미술관

글 입력 2024.04.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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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상상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전면화하는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작가가 불특정 사물의 본 쓰임을 탈피하여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림을 덧그리는 형식이었다. 작품에 별다른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배경 설명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던 설명도 전부 착상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미술계에서 해당 전시의 가치를 따진다면 충분히 유의미할 것이다. 문제는 내가 구도나 색감을 어떻게 구현하는 것이 미학적으로 훌륭하고 재치 있는가에 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그렇게 지루함만 느낀 전시가 있었는가 하면, 감상하는 내내 작품 속 함의를 찾고자 심장 박동이 거세지며 강한 희열을 느낀 전시도 있었다. 작가가 자신의 시그니쳐 같은 색채와 독특한 시선으로 각종 사회문제를 고발하면서 비이상적 행태에 반기를 드는 전시였다. 단순히 미학적 구현에만 치중하기보다는 특정 세계관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그림을 꾸려나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작품이든 강박적으로 그 안에 내재한 함의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는 나로서는 깊은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특정 전시에만 반응했듯, 저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에 큰 흥미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미술 내 세분화 장르 중 자신의 취향을 미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현대주의와 고전주의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현대주의에서는 작가가 떠오른 감정을 구현해 낸 인상파 그림이 주가 되는 데 반해, 고전주의에서는 작가가 자신의 생애나 역사적, 사회적 메시지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이다. 이를 미루어, 나는 미술 자체에 거리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호불호가 강한 것뿐임을 깨달았다. 더불어 미학적 아름다움의 구현에만 치중한 작품보다는 생애사적, 시의적 메시지를 지닌 작품에 큰 울림을 느끼는 만큼, 고전주의파에 가깝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저자의 설명을 읽은 뒤에야 내 취향을 이해할 수 있었듯,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전시에 끌렸던 것은 관람에 도움이 될 법한 설명이 풍부했던 덕택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야기 미술관에서는 이를 방지하듯 이창용 작가가 친절한 도슨트의 역할을 자처한다. 저자는 작품 설명뿐만 아니라 화가의 생애나 시대적 배경 등 작품 이면의 서사를 상세히 풀어준다. 단지 방에서 책을 펼쳤을 뿐인데도, 담당 도슨트의 음성을 들으며 고요한 미술관을 활보하는 기분을 느꼈다. 더불어 ‘아름답다’와 같은 1차원적인 감상 외에 다른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여정에서 느낀 장점을 크게 세 가지로 꼽아 정리해 보고 싶다. 기존의 시각을 탈피함으로써 얻은 깨달음, 그림의 의미를 추측하는 데서 오는 재미,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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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다각도로 맛보다


 

먼저 기존의 시각을 탈피하는 데서 오는 깨달음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 <요람>과 <발코니에 선 여인과 아이>를 그린 베르트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말이다. 베르트가 그린 모녀 그림 속 어머니는 베르트의 언니인 에드마다. 두 자매는 유년 시절부터, 프랑스의 여느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렸는데, 단순히 취미로만 이어나가기엔 재능이 뛰어났단다. 당시 화가의 등용문과도 같을 정도로 큰 대회에서 각각 아홉 점, 일곱 점씩 수상하는 쾌거를 이룰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19세기 당시 미술계에서는 여성 화가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에드마가 그림만 그리는 게 탐탁지 않았던 아버지는 결혼을 종용했다. 그렇게 반강제로 결혼하게 된 에드마는 종종 우울감에 시달렸다. 이에 동생 베르트는 그에게 아이를 낳으면 공허함을 채울 수 있지 않겠냐는 조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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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마의 딸이 태어났을 때 베르트는 종종 모녀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 당대 비평가들은 “여자는 남자가 표현하지 않는 센티멘탈리즘을 지녔기에 아이를 그릴 자격이 있다”라거나, 베르트의 그림에는 “여성의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이나 모성애가 잘 담겨 있다”며 호평했단다. 그러나 저자는 위 그림의 어머니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단지 모성애와 행복감뿐인 것 같냐고 반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에드마는 실적 상 베르트보다도 재능이 출중했던 데다 자의로 그림을 관둔 것도 아니었기에, 대체 수단을 찾기란 부단히 어려웠으리란 것이다.

 

당시 남성 화가들은 대개 모녀나 모자의 그림을 그릴 때 어머니의 행복한 미소를 녹여냈다고 한다. 저자는 베르트의 경우 그들과 달리 에드마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장본인이기에 '행복'이라는 단일한 감정 뒤에 숨은 복합적인 부정적 감정도 읽어냈으리라 본다. 더불어 여성으로서 언젠가 같은 전철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에드마의 그늘을 조명했으리라 추측한다. 베르트의 그림에 관한 여느 평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위 해석 역시 주관적이기에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당대 미술계에서는 흔했던, ‘모성애’를 주제로 한 각종 호평과는 상반되는 평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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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당시, 모성애를 주제로 한 글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육아를 여성의 전유물로 보는 그 이면에는 가부장제 이래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글에 따르면 모성애는 일종의 신화로서, 기득권층인 남성이 기존의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작용한다. 그런 지점에서 보았을 때, 베르트를 향해 건넸던 각종 호평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 특유의 ‘센티멘탈리즘’이라든가, ‘어머니라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모성애’라는 것은 본능의 영역도 아닐 수 있고,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 외려 사람에 따라 모성애의 정도는 차이가 있는데,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고 당연하다는 주입이 그 안에 반자발적으로 올라타 지속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베르트가 반드시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을 그려넣지만은 않았으리란 저자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와 달리 당시에 일관된 평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남성주의적인 시각이 얼마나 정형화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을 탈피했을 때, 즉 정형화된 시각이 아닌 작가 개인의 고유한 삶을 근거로 해독하고자 했을 때 그림을 얼마나 다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지를 절감하게 한다.

 

 

 

방탈출 수수께끼처럼 재밌는 그림 해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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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그림을 갖가지 방향으로 추측하며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그림에 문외한이더라도 한 번쯤 접해봤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이야기다. 위 작품은 클림트가 그릴 당시의 제목은 연인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키스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왜일까. 키스라는 제목이 그림 속 인상을 더욱 극대화한다거나 화가가 정한 제목을 번복할 정도의 큰 메시지가 있다는 판단에서였을 수 있다. 그런데 해당 그림의 전체적 메시지 해석에 있어 ‘그림 속 연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논제로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이를 미루어 연인이 누구인가에 관한 전말은 영영 알 수 없기에 논란의 여지를 잠재우고자 제목을 바꾼 것도 같다.

 

연인의 대상으로 추측되는 인물은 두 명으로 좁혀진다. 한 명은 아델레, 다른 한 명은 에밀리. 먼저 아델레는 유부녀로 클림트와 12년 동안 교제한 인물이다. 다른 이들은 그를 우아하고 고상한 귀족 부인으로 여겼으나, (당시에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상과는 달리) 클림트에게만큼은 자기주장이 명확하고 화끈하게 욕구를 표현했다고 한다. 아델레는 헤어진 뒤에도 클림트를 추억하는 공간까지 집안 한구석에 마련할 정도로 그를 열성적으로 사랑했다.

 

다음으로 에밀리는 클림트가 평생 쓴 편지 580여 통 중 400여 통이나 차지할 정도로 진정으로 사랑했던 대상이다. 에밀리는 클림트의 동생 사망 후 더욱 가까워진 관계로, 그와 거의 사실혼 관계로 붙어살았다고 한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 상 기혼 여성에겐 제약이 많이 따랐는데, 에밀리는 당대 유명한 의상실 디자이너였던 만큼 본인의 커리어를 굳건히 지키고자 했다. 저자는 이러한 이유로 그가 결혼을 택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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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연인의 주인공을 에밀리로 상정한다. 그림의 배경이 절벽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에밀리는 클림트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줬을 때 다시 그려오라고 할 정도로 까다로운 성격으로, 관계에 있어 우위를 점했다. 즉, 그림은 클림트가 자신을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묘사하면서 에밀리에게 본인을 더욱 사랑해달라며 처절하게 구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거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연인>을 그린 시기가 1907-8쯤이고,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그린 건 1907쯤이다. 물론 다소간 상이하겠으나 예술가들은 으레 특정 시기에 몰두하는 주제 같은 것이 있지 않나. 당시에 에밀리를 그리기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기상 아델레일 확률이 높지 않나 싶다. (더불어 연인의 얼굴을 보면 어쩐지 아델레의 얼굴을 더 닮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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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배경이 절벽이 맞더라도, 절벽이 반드시 위태로움과 직결된다고 보는 것은 너무 정형화된 사고 아닌가 싶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가 떠올랐다. 크툴루 신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누군가는 신에게 간절히 소원을 빈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어떤 방식으로 들어줄지를 고민하던 신은 그 둘을 재난의 상황 속에 가져다 놓았고, 끝내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위 신화 속 ‘재난의 상황’과 그림 속 ‘절벽’을 같은 궤도에 놓는다면, 절벽에서의 고립은 단지 불행하고 위태로운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굳세게 의지하며 사랑을 키워가는 매개가 될 수도 있다. 또 분명 고립된 상황이지만 둘밖에 없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고통과 더불어 황홀함이 동반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즉 절벽은 외려 둘의 사랑이 간절해지길 바라는, 그것이 고조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그린 장치적 설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그림이 반드시 클림트의 입장에서 그려진 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만약 연인의 주인공이 아델레가 맞다면, 아델레의 심정을 대변한 그림일 수 있다. 아델레는 연인에게 화끈하게 자신의 욕구를 전부 말할 정도로 사랑에 있어 정열적인 성격이었고, 헤어지고 나서도 그를 갈망할 만큼 넘치도록 사랑했다. 즉,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갈망하고, 그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성격이 '절벽 위 사랑'으로 재현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의 서사를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을 밝힌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추측은 다소 비논리적인 데다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그저 여러 가능성을 헤아리며 해석에 동참하고플 정도로 흥미로웠다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싶다.

 

 

 

글과 그림, '예술'이라는 공통 분모로 읽어낼 수 있었던 점에 대하여


 

한편 미술관에서 얻은 공감의 영역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책의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화가의 가치관을 보며, 예술적 영감을 찾는 방법적 측면에서 미술과 글에 통용되는 지점이 있음을 느꼈다.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슬픔과 고통에서 나온다.” 실제로 피카소는 반전작가였고 한국 전쟁에 관한 반전 의식을 그림에 드러내기도 할 만큼 (찾아보니 작품 자체는 사상 관련 논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점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비극적이고 슬픈 역사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곤 했다. 그 말고도 다른 이들(특히 뭉크 등)도 우울하고 비극적인 개인적 감정을 그림에 그대로 묘사했다. 한편 자신의 감정을 정교하게 포착해 내기 위해 그 안에 매몰되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고립시킨 경우도 있었다. 고흐의 이야기다. 그는 “나는 내 심장과 영혼을 그림에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미쳐버렸다.”라고 했듯 말이다.

 

한창 글쓰기에 천착했을 당시 나도 그랬던 것만 같다. 내 사유의 원주소를 찾기 위해 감정 속으로 속속들이 파고들이 낱낱이 파헤치려 들었다. 대개 그런 행위는 우울감에 깊이 잠식될 때나 가능했다. 그럴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예술적 재료로 삼기에는 더없이 좋은 습관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식으로 파고들고 침잠해야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강에는 해롭지 않을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글을 쓰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에는 머리가 단순하게 비워졌고, 맑았고, 단순한 행복감도 동반된다는 것을 느꼈으니 말이다.

 

종국에는 욕심을 조금 버렸다. 이내 이전에 나를 몰아세우고 집착하고 좀먹으면서 예술을 우위에 놓았을 때 얻을 수 있었던 희열이나 행복과는 또 다른 류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나는 불행을 주제로 쓸 수 없더라도, 또 다른 류의 글을, 또 다른 주제의 행복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마음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편해졌다.


어쨌거나 나는 예술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나 자신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고, 그들의 선택은 달랐다. 그랬기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거장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겠지 싶으면서도, 예술이 자신과의 싸움을 지속하고 고역을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중노동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예술이라는 공통 분모로 묶인 그들의 삶과 작품, 가치관을 엿보면서 다채로운 감정과 사유의 소용돌이 속에 잠겼다. 책을 읽으면서 화가에 관한 사실적 정보를 다양하게 접하다 보니, 때로 도슨트가 일러준 해석에만 의존하게 되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이를 경계하며 자유롭게 읽어낸다면 충분히 독창적인 감상을 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에 관심은 있지만 어쩐지 장벽을 느끼는 이들이 입문용으로 보기에 좋은 서적 같다. 다각도로 그림을 감상하면서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여정에 발을 들이고 싶은 모두에게 추천한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역설적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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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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