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정'이라는 음모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글 입력 2020.07.1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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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31일 오찬호 작가는 경기도 소재의 한 대학에서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해당 문제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면 2004년도 최초 재용 당시 정규직 전환을 보장받고 들어왔다는 여승무원측과 그런 적이 없고 노동자들은 분명히 계약직임을 알고 들어왔다는 사측의 입장이 충돌하는 사안이었다. 결국 2006년 3월부터 350여 명의 여승무원들은 철도공사에 정규직 직접 채용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이들의 파업은 시작한 지 무려 12년이 지난 2018년, 정규직 전환 투쟁을 벌이다 해고된 180 명에 대해 특별 경력직 채용의 형식으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면서 일단락되었다.

 

한편 이 주제를 통해 오찬호 작가는 학생들에게 인권의 정의와 인권 침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 했다. 하지만 한 학생의 대답은 그런 그의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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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작가가 잠시 당황하는 사이 주변 학생들도 그 학생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소음이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라는 걸 눈치챈 그는 보다 공격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처우 개선과 정규직 전환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말을 이어나가는 학생의 어조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찬호 교수가 학생의 말에 대해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 무려 3분의 2 이상이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이는 비단 그날 그 강의실에서만 만난 반응은 아니었다.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도 학생과 비슷한 견해들이 쏟아졌다.

 

 

“여승무원들은 철도유통 소속 계약직인 걸 알고 들어갔습니다. 지금 철도공사 정직원으로 전환해달라는 것이 가장 주를 이루는 요구 사항인데요.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공사 들어가기 엄청 어렵습니다. 남들 몇 년씩 어렵게 준비해서 토익 900점 넘기고 어렵게 공사 들어가는데 정직원을 넘보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볼 수 있죠. 노력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승무원 여러분들은 철도공사 정직원이 되고 싶으시면 시험을 치고 정정당당하게 들어가십시오.”

 

 

앞서 말한 일화는 오찬호 작가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의 서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가 강의실에서 마주했던 그 풍경을 우리는 12년이 지난 오늘날에 다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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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란에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한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하루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내더니 내가 글을 쓰는 7월 9일 오후 5시를 기준으로 무려 304,808명이 동의를 표시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0년 6월 21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전체 9000여 명의 비정규직 직원 중 일부인 2143명(공항 소방대 211명, 야생동물 통제 30명,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자사의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7000여 명에 대해서도 자회사를 만들어 올해 안에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그러자 곧장 여론의 반발이 몰아쳤다. 특히 청년층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이유인즉슨 이러한 무분별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가 기존의 고용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취업준비생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하는 또 다른 특혜가 될 수 있다. 기존에 입사한 정규직 직원들의 근로 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직원들도 이번 정규직 전환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면서 해당 논란은 더욱더 가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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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우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번 정규직 전환이 기존의 고용 계획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을 못 박아두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전환되는 인력들은 대다수가 준비하는 사무직이 아닌 ‘청원경찰’로 채용된다. 애초에 요구하는 전문성이 다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보안요원으로서의 실무능력이지 입사 시의 성적이나 스펙이 아니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직원들은 그 능력을 이미 몇 년에 걸쳐 검증받았다.

 

기존의 정규직 직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시간을 두고 대화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비판받아야 하는 건 성과를 내기 위해 구성원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무작정 계획을 발표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조급함이지, 정규직 전환 그 자체가 아니다.

 

더 큰 의문은 왜 우리가 이번 사안을 ‘서로가 서로의 일자리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으로 보아냐 하는가’다. 오히려 비정규직이 줄고 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지고 올 수도 있지 않을까?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36%에 달한다. 전년도에 비해 무려 3.4%가 증가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 격차도 벌어졌다.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018년보다 15만 9000원이 올랐지만 비정규직 근로자는 고작 8만 5000원이 오르는 데 그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평균 근속 기간 차이도 5년 5개월로 2018년보다 3개월이 더 늘었다.

 

이렇듯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와 그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잠깐 드라마 <송곳>의 대사를 빌려 보자면 저임금에, 뻑하면 잘린다. 위험한 일은 시키면서 산재처리도 안 해주고, 산재가 안 되니까 빚더미에 앉는다. 노조 만들기도 어렵고. 실업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빈곤율도 높다. 거기다가 낙인효과까지 있다. 그렇지 않아도 못 사는데 경기 나빠지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다. 고생은 제일 많이 하는데, 책임도 제일 많이 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발표는 노동시장에 오히려 건전하고 건강한 일자리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근로자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대학생 전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는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왔던 스펙과 함께 이번 사건을 언급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이야기하는 게시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과연 그들이 2016년 구의역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김모군과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고 분노하던 이들이 맞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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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 사안에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취업준비생) 사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실력이나 노력에 의해서 취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얻어걸리는 운빨로 평생 직장이 결정된다는 게 사실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매일매일을 투자를 하면서 본인들의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노력을 하는데, 이런 식으로 본인들의 노력이나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얻어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님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좀 인식하게 된 것 같고.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본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동기부여를 잃어버린 건 사실이다, 이런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지금 운빨이라는 표현 쓰셨는데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전환을 할 거면 미리 예고를 하고 지금 취업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되지 않느냐. 누구는 운 좋아서 비정규직하다가 갑자기 어느 날 정규직 되고 이런 식으로 무원칙하게 돌아가면 안 된다, 그 말씀이세요?

 

취업준비생) 네, 맞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번에 전환되는 보안검색요원 분들은 ‘우리는 그동안 노력한 게 있다. 들어와서 우리가 쌓은 경험, 교육시간, 이런 게 분명히 있는데 왜 그런 것은 인정해 주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취업준비생) 솔직히 말씀드려서 모든 비정규직들이 그런 투자는 다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모 회사의 정규직화를 통해서 얻는다는 부분은 상대적 차별, 역차별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좀 화두가 된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위의 내용은 지난 6월 25일에 방송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취업준비생은 앵커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결정이 또 다른 역차별임을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요구한다. 정규직화 결정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시험의 기회를 부여하거나.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증 하나가 생긴다. 청년들이 말하는, 취업준비생들이 이야기하는 ‘공정한 경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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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의 채용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사무직 기준). 1차 서류, 2차 필기, 3차 면접 순으로 구성되는 이 과정은 악명이 매우 높다. 우선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만점에 가까운 어학 성적은 물론 각종 자격증과 활동 경력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 2차 필기시험에서는 공인회계사 난이도에 달하는 전공시험과 함께 NCS 직무능력 평가를 본다. 커트라인도 높다. 3차 면접에서는 AI 면접, PT 면접, 인성면접, 영어면접, 상황면접 등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경쟁률도 200:1이 넘는다. 이렇게 악랄하니 이곳에 입사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생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들이 이번 정규직화에 대해 분노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년들의 분노에 마냥 동조하기엔 찝찝하다. 그들의 언어 속에 감춰진 수상쩍은 움직임들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는다. 앞서 언급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는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를 ‘운빨’로 규정하였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이를 두고 소위 로또 취업이라며 비아냥거리기에 바쁘다.

 

그러나 실제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보안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비정규직 요원의 해명을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는 모든 비정규직 보안 요원들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정식으로 낸 채용 공고를 통해 지원하여 서류 면접과 280시간의 교육훈련, 서울공항 항공청에서 주관하는 인증평가를 모두 통과한 후에 채용된 사람들이다. 기존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다소 약식화되긴 했어도 어쨌든 나름대로 철저하고 객관적인 채용 절차를 통해 선발된 정당한 고용인력들이다. 근무 기간이 3년이 넘는 사람들도 상당 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을 인터뷰이는 운빨이라는 단어로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덧붙인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모든 비정규직들이 그런 투자는 다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바로 이 대목에서 청년들의 언어 속 감춰져 있던 수상쩍은 음모가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앞서 인터뷰이는 분명 ‘이런 식으로 본인들의 노력이나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얻어 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님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좀 인식하게 된 것 같고’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그에게 그대로 다시 돌려준다.

 

 

"이런 식(비정규직들의 그런 투자는 당연하다고 말하는)으로 본인들(비정규직)의 노력이나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얻어 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님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좀 인식하게 된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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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터뷰이가 말하는 노력이라는 건 책상 앞에서 이룩한 성과들만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학, 자격증, 스터디, 성적 등등. 비정규직 직원이 현장에서 무슨 노력을 했든 간에 그 외 나머지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은 노력의 과정이 아닌 결과이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은 결과. 경쟁에 뒤처진 결과. 그리하여 그들은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자신들의 무능력함에 대해 노력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세상의 가장 낮고 초라한 곳에서 한없이 버둥거려야 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책상 앞에서 보낸 시간 못지않게 그들이 발로 뛰며 보낸 시간 역시 가치가 있다. 패배는 죄가 아니다. 우리는 벌을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물론 열심히 한 1등이 상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보다 조금 덜 뛰어나다는 게, 평범하다는 게 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비정규직도 그들이 현재 처한 입장에서 충분히 노력한다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짜 공정한 사회다.

 

그런 이유로 청년의 분노는 이 모든 게 제로섬 게임이라는 착각 속에서 빚어진, 혹은 그보다 더 끔찍한 우월 의식에서 빚어진 허상에 불과하다. 인터뷰이를 비롯한 수많은 청년들이 시험을 통한 경쟁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공정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험만큼 책상 앞에서 이룩한 성과를 선보이기에 좋은 수단은 없으니까.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 앉아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과 직장에서 발로 뛰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비정규직 중 시험에서 누가 더 유리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런 이유로 청년들이 주장하는 ‘공정한 경쟁’은 힘을 잃는다. 공평한 세상을 부르짖는 그들의 분노는 모순되어 있다. 설득력이 없다. 심지어 괘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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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번 사건을 제로섬 게임으로만 바라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오찬호 작가는 그 원인으로 ‘자기계발’을 지목한다. 90년대 직업환경이 변화하고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둔화되면서 예전처럼 대학만 졸업하면 누구나 취업하는 시대는 저물기 시작했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까지 닥쳤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이제 애를 써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자기계발’ 열풍이 한국 사회에 불어닥쳤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다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가꾸기 위해 저마다 노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물론 이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기계발이 가져오는 순영향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자기계발의 레이스에 집중하다 보니 우리가 놓치는 것들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부는 자기계발의 바람은 일반적인 의미의 자기계발과는 조금 다르다. 청년들의 자기계발에는 ‘취업 준비’라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한다. 그렇다 보니 이 자기계발엔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 있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남들도 봤을 때 고개를 끄덕이고 인정해 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자기계발 열풍이 우리 주변의 진짜 문제를 포착하는데 방해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덤탱이를 씌운다. 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라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정규직이 되기 위해 잠을 줄이고, 아예 회사 앞으로 이사를 가는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덕분에 그는 선배들의 자잘한 부탁은 물론, 심지어 주말에도 언제든 나가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저자는 그토록 바라던 정규직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말 자기계발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 큰 사람이 되었나?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나? 아니다. 그냥 직장 상사들에게 이쁨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공모전 6개를 동시에 준비하기 위해 커피믹스를 몇십 개씩 씹어 먹으면서 밤을 지새운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물론 취업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를 위해 위장병에 걸리고, 수면부족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를 우리는 과연 정상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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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자꾸 미치라는 건지;;)

 

 

그러나 자기계발의 환상 담론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는 입을 막아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노력 끝에 성공이라는 목표를 이룬 사람들에게 숭고한 희생의 신화를 부여한다.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자발적으로 그 길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렇게 자신들의 담론을 유지하고 재생산한다. 만약 누군가 이를 거부하고 환경을 지적한다면, 자기계발의 담론은 순식간에 그 사람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핑계만 대는 불평쟁이로 몰아가 버린다.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결국 이러한 자기계발 담론의 문제들은 청년들의 시선을 변질시킨다. 우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만약 누군가 ‘나 힘들어!’라며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가정해보자. 응당 생각되는 당연한 반응은 바로 공감과 위로일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에 돌아오는 건 ‘야,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더 힘들어’라는 말이다. 마치 ‘쇼 미더 머니’의 랩배틀 마냥 서로의 불행을 가지고 겨룬다. 누군가 아프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가 더 아프냐가 더 중요해진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를 향한 공감과 위로는 실종된다. 결국 아무도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지 않으니 나조차도 타인의 고통에 무심해진다. 대신 나와 타인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타인에 대한 공감이 사라지면서 편견이 득세한다. 우리가 보는 자기계발서에는 패자에 대한 편견들을 강화시키는 내용이 차고 넘친다. 노력을 안 해서 취업에 실패했다는 둥, 그래서 살을 빼지 못한다는 둥. 온갖 실패의 이유들이 구구절절하게, 그러나 근시안적으로만 제시된다. 청년들은 이러한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보다 냉담해진다. 실패한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바로 개인의 몫이다. 우울한 것도, 개인한 것도 모두 개인의 잘못이다. 그걸 사회가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저 노력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개인의 사안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경제적 상황을 자기계발로 극복하려는 사회의 분위기는 결국 청년들로 하여금 비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갖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건 결국 자신들이 종사하게 될 그 ‘노동시장’의 환경을 더욱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역설적인 상황을 낳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기계발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노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구조적인 차이가 세상엔 분명히 존재한다. 자기계발을 통해 백날 개인적으로 해결해봤자 바뀌는 건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뿐이다. 누군가는 경쟁에 밀리고 밀려 결국 도태되고 고통받는다는 사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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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장그래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바둑을 시작해 1년만에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다. 대회에서는 4강 밑으로 떨어져 본 적도 없다. 공부도 잘했다. 새벽엔 아르바이트도 뛰었다. 우연한 기회로 들어온 회사에서도 비정규직이지만 열심히 일했다. 실은 그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동료들의 애정 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그래는 정규직이 되는 데 실패했다. 자세한 이유는 나오진 않지만 짐작은 간다. 그가 고졸이었으니까. 다른 직원들에 비해 훨씬 부족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오늘 우리도 수많은 장그래에게 똑같은 이유로 당신은 정규직이 될 자격이 없음을 말했는지도 모른다. 학벌이 낮다는 이유로. 스펙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가 회사에 들어와 어떤 노력을 해왔던, 어떤 시간을 보냈든 간에 ‘당신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지난 십수 년 간 한국 사회는 학벌 지상주의와 스펙 만능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기업에는 블라인드 채용 바람이 불었고, 대학들은 수험생에게 교내 활동이나 수상 이력을 제외한 다른 외부 활동은 자기소개서에 기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찬호 작가가 2008년 강의실에서 만난 대한민국과 2020년의 대한민국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교묘해지고 간사해졌다. 이젠 노력에도 등급이 생겼다. 자격이 생겼다. 그리고 '공정'과 '공평'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차별'과 '위계'의 질서를 세운다. 꿈을 꾼 이들에게 도둑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결국 현실이 이 모양이니 우리는 드라마에서조차 정규직이 된 장그래를 볼 수 없던 게 아니었을까.

 

 

 

컬처리스트_이중민.jpg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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