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외와, 소외의 소외에 대해서 - 인종차별과 '버드 스크라이트' [문화 전반]

인종차별의 '인종'에 동양인이 속할 수나 있을까?
글 입력 2020.07.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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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6월이 끝났다. 올해의 반이 지나갔지만 코로나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몰염치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어 나왔고 기어이 숙주가 됐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한반도는 사람들을 다시 집어넣기 위해 비를 뿌려댔다. 비가 내렸고 이따금 바람이 불었다. 마침 선물 받은 캔들 워머를 켜놓으니 한껏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동안 책을 멀리하고 살았다. 자격증을 공부하느라 억지로 책을 붙들어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시험이 취소됐지만 그만 둘 수 없어, 계속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텍스트에 질려 한동안 독서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건만, 아늑한 분위기에 오래간만에 독욕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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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소년 만화에서 등장할 것만 같은 제목이었다. 무조건적인 열정을 앞세운 소년만화 특유의 느낌이 짙게 배어있을 것 같아서 꺼려졌다가 저자명을 보고 멈칫했다. 구병모, 세 글자로 곧 <위저드 베이커리>를 연상했다. 아 그거 재밌었지, 하면서 그제서야 책을 꺼냈다.

 

구병모 세계관은 매력적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 소설이지만 호러와 판타지가 가미된 기이한 분위기를 깔고 간다. 작에서 다루는 인간사는 노골적으로 현실적이지만,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비현실 같기도 하다. 더욱이 주인공이 '이상한' 빵집에 들어가는 순간, 판타지 세상에 서서 인간 군상들을 현실 너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주인공 시선을 빌려 작품을 감상했던 내게도 이색 경험이었다.

 

<버드 스트라이크>에서도 그렇다. 현실에서 볼 수 없었던, '익인'이라는 인종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시선을 빌려 인간들을 바라본다. 몸보다 큰 날개를 지니며, 굉장히 적은 개체 수에 자연을 사랑하며 숭상하는 존재다. 세계관에서 '주류'로 등장하는 인간들 보다 체격이 작으며,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익인들은 인간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저 지역에 따라 각자 계승되는 전통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적은 개체 수와 문명 수준 차이로, 무엇보다 날개라는 외양의 차이로 익인들은 지속적으로 약탈당해왔다. 익인들의 날개는 핫한 연구 대상이었으며, 사익을 목적으로 무덤을 파헤치거나 납치하는 등 잔혹하게 익인들을 대해왔다. 참다못한 익인들은 저항의 일환으로 도시의 시청으로 쳐들어가 구조물을 훼손했다. 사건을 추궁하기 위해 미처 도망가지 못한 주인공이 감금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사실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풀어내고 싶어 글 쓰게 됐다. 주인공 '비오'는 익인이지만 사실 아버지가 인간인 혼혈이다. 익인들은 자연을 숭상하고 그에 순응한 것처럼 순혈이 당연한 것이라 믿는다. 혼혈은 섭리에 어긋난 존재라고 부족 전체에 인식이 만연해있다. 당연히 비오는 보통의 익인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겨우겨우 몇 가지 제약을 걸어두고 부족과 같이 살아가는 정도였지, 일원으로 대우받는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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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주인공이기 때문에 공감 갈 수밖에 없지만, 더 눈길이 가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 인간이 주류인 세계관에서 익인들은 인간들에게 소외받는다. 더불어 비오는 소외 받는 익인들에게마저 소외받는다.

 

소외의 소외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 행태가, 현재 격렬해지고 불거지고 있는 '흑인' 인종차별에서마저 소외된 동양인들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동양인인 나로서는 어느 순간 비오에게 과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종차별하면 떠오르는 게 흑인이 당했던 수탈, 핍박과 학대, 저항했던 역사들이다. 물론 동양인들은 인종차별의 역사에서마저 비껴나가 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들이었으며, 학대당했지만 항상 인종차별을 논할 때 흑인이 언급됐지, 동양인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서구 사회에서는 종종 동양인이 개보다 권리가 낮다고 종종 표현한다. 백인은 흑인을 차별하고 흑인은 동양인을 차별한다고. 하이틴 드라마에서 풋볼 선수인 백인과 흑인 무리들이 너드로 묘사되는 동양인들을 조롱하는 장면은 하도 많이 봐서 화나기보단 보기 지겨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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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들은 그래서 흑인에게 연대하기가 쉽지 않다. 동양인들의 차별에 대해 아무도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동양인마저 자기가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나 말 다 했다. 동양인 차별은 차별이 아니라 장난으로 소비되고 있다. 눈을 째는 것이나 코로나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는 사람이 아니라 '코로나'로 불릴 정도로, 물론 그전에는 '칭챙총'이었다.

 

드라마 속에서도 느껴지는 인종차별은 당연히 드라마 밖에서도 궤를 같이 한다. 흑인들은 할당 고용 제도나 할리우드에서도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동양인들은 등장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무대에 설자리가 없다. 이번에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골든 글러브 수상을 한 게 매우 이슈가 됐을 정도였다. 자그마치 1981년 여성 일본 배우가 수상한 이후 40여 년이 지난 2019년이었지만 이제 겨우 두 번째 기록이라고 하면 믿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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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오와 샤론 최의 인터뷰가 이슈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산드라 오는 봉준호 감독을 그저 한국인 남자, 동양인 감독으로서의 봉준호로 봤지만 봉준호는 스스로를 봉준호 감독으로 여겼다고 발언한다.

 

인종차별적 사회에서 살아오지 못한 봉준호 감독은 세뇌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선을 지녔다고 언급했다. 산드라 오가 발언하는 모습은 울분에 차 있는 것만 같기도, 환희에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시선으로 보지 못한다고 깨달았다고.

 

동양인이지만 동양인 사회에서 자라온 나조차도 영화를 포함한 문화와 경제와 철학 따위에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구사회가 중심이라고 세뇌당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끼리 출연하고 연출하며 시상하고 수상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을 명망 있는 국제 시상식으로 여겼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봉준호는 전혀 구애받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인 오스카 시상식이 따지고 보면 '로컬 시상식'이었다는 걸 상기시켜줬다. 산드라 오의 말을 빌려보자면 세련된 방식의 공격이 아니었지만 공격이었고 공격이 아니었다고. 봉준호의 발언은 수많은 지지를 받았다. 심지어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상태에서 그런 발언을 하니까 장난 아니게 맵시 났다.

 

봉준호 감독의 '로컬 시상식' 발언과 산드라 오의 인터뷰, 비오의 상황을 인식하면서 소설이 다르게 읽혔다. 소년만화를 연상시키는 제목도 현재 내가 인식하고 있는 사유를 관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우선 버드는 '새, 아가씨, (특히 약간 특이한) 사람', 스트라이크는 '(세게) 치다, 부딪치다. (손이나 무기로) 때리다'로 정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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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다리.

버드 스트라이크로

가장 많이 희생되는 종이며

멸종 위기종이기도 하다.

 

 

버드 스트라이크. 비행기 앞에 선 아가씨, 새, 특이한 사람.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들. 주류에서 벗어난 존재가 비행기 맞은편에서 달려들 때 얼마나 미약해 보이겠는가?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부딪칠 각오를 하고 나서 달려든다. 1.8Kg의 '새'가 기본 시속 960km로 비행하는 항공기와 부딪힐 때 약 64t의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달려오는 항공기 속도와 새의 무게가 합쳐져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현실을 배제하고 소설 제목으로, 익인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항공기 동체를 찌그러트리거나 새가 항공기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엔진을 망가뜨리면 화재나 추락을 일으킬 수 있지만 딱 그 정도다. 그러면 그 새는 살 수 있을까? 당연히 죽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부딪친다. 동체가 찌그러트린다고 해도, 엔진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다시 수리할 수 있는 정도의 '사건'이다. 새들은 목숨을 걸지만. 비행기의 입장에서는 이착륙(높은 고도에서는 새가 날지 않으니까) 시에만 잠깐 조심하면 -지금같이 뜨거워졌을 때만- 되는 인종차별일 수도 있다. 기득권들에게 있어 그 정도의 저항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잠깐의 숨통도 승객들에겐 무관심한 세상이고 인식 밖에 존재하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소설 내에서도 그렇다. 수탈을 금하고 존재를 인정하는 등 서류로 명문화하지만 결국 현 시행이 권력을 유지해야만 보장할까 말까 할 수 있는 반쪽짜리 서류에 불과하다. 동시에 익인이 받는 인식과 차별에 대한 언급이 드러나지 않았다. 현실의 차별과 소외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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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도 평등에 대해 명문화됐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흑인에게 걸쳐진 부정적 이미지는 해소되지 못함은 물론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담론의 주제로 이마저 떠오르지 못했다는 게 현실이다. 인종차별의 '인종'에 동양인이 속할 수나 있을까?

 

소설 중반에, 부족 외의 제3의 인물이 개입하면서 익인들의 비오에 대한 소외가 정당하지 않다는 걸 일깨워준다. 그건 외부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비오 스스로 깨닫지 못한 소외였다. 다만 필자가 마음에 든 부분은 비오의 마지막 행보였다.

 

비오는 '나'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홀연 자취를 감추고 방황을 시작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서 모두가 연대해야한다고 세상은 말하지만, 차별과 소외의 당사자부터 소외에 대해 자각하고 인식하고 성찰함으로써 저항이 시작된다. 비오의 방황이,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세상에서 가시화되고 있지 않은 세태에서 동양인 스스로 인종차별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는 걸 암시하는 것만 같았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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