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어떤 세계 [시각예술]

조민아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
글 입력 2020.06.2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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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에서 4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열린 <2020 금호 영 아티스트> 전은 금호 영 아티스트 공모에서 선정된 김세은, 노기훈, 박아람, 조민아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조민아 작가의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였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2011년부터 여러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여러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와 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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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아의 그림은 식별하기 쉬운 형상들로 채워져 있다. 알레고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형상 하나하나 - 사람, 비둘기, 책, 배, 생수통, 돈 - 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놓여 있는 공간은 모호하다. 형상들의 배경은 3차원의 공간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몇몇 부분에서 드러나는 원근감은 또 다른 부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의 배경은 언뜻 보면 땅과 그 앞을 흐르는 물처럼 보이지만 하늘이 있어야 할 자리엔 하늘인지, 땅인지 아니면 그냥 색면인지 모를 것이 있다. 그러니 이 캔버스 속의 인물이 땅에 발을 딛고 서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상상된, 가상의 세계이다.

 

의미 불명의 기호들로 가득한 이 그림이 어딘가 익숙하게 다가온다면 그건 아마 화풍 때문일 것이다. 뚜렷한 윤곽선과 음영 표현, 밝고 따뜻한 색채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이러한 화풍은 다른 동양화 작품이나 벽화, 또는 그림책의 삽화 등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익숙한 형식으로 낯선 광경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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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내용으로 넘어가 보자.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노동, 생산이라는 말로 함축할 수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거나, 스스로 생산물이 된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Prayer 1(좌측 세번째)에서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렬로 늘어서 있고 푸른 배경은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강 또는 바다를 연상시킨다. 이 모호한 공간은 인물을 어딘가로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자유나 유동성을 발견해내기는 쉽지 않다. 두 손을 모으고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 인물들은 공장에서 찍혀나오는 공산품을 연상시킨다. 그러니 여기서 저 액체(로 보이는)가 가리키는 것은 드넓은 바다보다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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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아 작가가 그려낸 세계의 구성원들은 목적 모를 일을 한다. 이들은 짐승을 잡고, 화살을 던지고, 뭔가를 통에 담고, 잡고, 짜낸다. 관객은 이 무표정한 사람들의 행위가 가리키는 곳을 열심히 추적해보지만 그 끝에는 아무것도, 아무 의미도 없다. 이것은 목적 없는 노동이며 결말 없는 서사이다. 작품의 한 끝부터 다른 끝까지 열심히 뜯어봐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에서 오는 허무함, 끊임없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저주에라도 걸린듯 미적지근한 표정의 인물들에게서 오는 위화감 같은 것이 커다란 캔버스를 채우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을 보는 우리는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소통하지 않지만 단절되어 있지도 않다. 기계처럼 노동하는 인간, 감정이 결여된 듯한 표정은 인간 소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빼기, 나누기 그리고 다시 더하기>에서 드러나듯 작가가 그린 세계에는 공동체가 존재한다.

 

캔버스 속의 세계는 상상된 세계이지만 분명히 현대사회를 투영하고 있다.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와 같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 허구의 개념으로 도피할 수 없는, 직면해야 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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