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은 날개로 세상을 끌어안는 법 [도서]

글 입력 2020.06.21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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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작년 추석, 본가로 향하기 위한 고속버스에 오르기 전, 잠시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구매했었다. 한국 소설하면 상당히 유명한 구병모 작가님의 <아가미>. 출판된 지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난 시점이라 조금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상당한 사람들이 추천하던 그 도서를 읽으리라 다짐만 하다가 드디어 한가득 기대를 품고 그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헤엄쳐야지 별 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p.22

 


<아가미>는 슬프지만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 다양하고 풍부한 소재들을 이용해 전개를 이어나가지만 결국 작가님이 말하고자, 다가가고자, 알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살기 위해 아가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곤과 곤을 미워했지만 사랑했기에 말없이 보내주었던 강하의 이야기.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p.185

 


곤을 향한 강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 것만 같아 더 눈물이 났다. 강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그 마음이 담겨있어서. 곤을 미칠 듯이 미워해서 못된 말과 짓궂은 행동이 앞섰지만, 결국 그 모든 것 밑에는 너무나도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깊은 어느 한 곳에 내재되어 있었으니깐. 그렇기에 결국 둘은 서로를 위해, 서로를 향해 살아갔다.


<아가미>를 너무 소중해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시간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덮을 때쯤 마냥 다짐했었던 것 같다.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은 모두 읽고 싶다고.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유명하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도 어렸을 적 많이 읽었다던 그 <위저드 베이커리>를 나는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읽어보지 않았었기에 당장 구입하려 서점을 향해 발을 내디뎠지만, <위저드 베이커리> 옆에 꽂혀있던 작가님의 신작 <버드 스트라이크>가 내 시야를 사로잡았었다.


평소 옷이나 액세서리 등과 같은 일상 품목들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게 눈에 보이면 오히려 다른 것을 선택하곤 하던 속물 효과가 책을 구매하고자 손을 뻗는 그 찰나에 또다시 발휘되었던 걸까. 주변에서도 많이 읽었다던 소설보다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접하지 않았을 작품을 먼저 읽어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가 나를 짓눌러 본래 목적은 잊고 <버드 스트라이크>를 구매해 돌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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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작가님이 자신의 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소설 <버드 스트라이크>는 도시 사람들이 고원 지대에 사는 날개 달린 가상의 종족, 익인들을 착취하고 실험 대상으로까지 삼으면서 벌어지는 종족 간의 갈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 충돌의 틈바구니에서 주인공 ‘루’와 ‘비오’가 만나게 되는데, 둘은 서로에게서 소외받고 배척당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며 감정적 교류를 겪게 된다. 목숨이 위태로운 고비를 넘기며 각기 성장해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담은 이 책은 sf 환상 동화이자 성장 소설로 볼 수 있겠다.


 

어떤 우역곡절을 거쳤든 간에, 서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연결된 데에는 이치가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론 설명되지 않는 연결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살아있는 이유랍니다. 그러니 이어진 끈을 섣불리 자르려 하지 말고 그리로 마음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p.126

 


익인 소년 비오와 도시 소녀 루는 두 발을 내딛고 있는 곳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종족 간 성향은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포용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그 둘은 서로의 처지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행복해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준다.


익인들의 마을에서 반(半)익인으로 태어나 비오가 포기해야 했던 일들과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마냥 멀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책이 아닌 이 현실에서조차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근육을 이용해 TV를 틀어 뉴스만 들여다봐도 압도적인 세계 강국 미국에서는 현재 인종차별로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깐.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언가는 옳고 바람직하다거나 다른 것은 그릇되었음을 말하지는 않아.

 

p.348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서로의 겉모습으로 경계를 나누고 곁눈질을 하며 선입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돈, 건강, 명예, 학력, 인종, 종교 … 많은 것들이 그에 속해있고 이와 비슷한 일들은 수 백 번, 수 천 번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것들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매일 투쟁하며 살아간다. 물론 이를 주도한 자들의 최후는 죗값을 받는 것으로 끝을 맺곤 하지만, 죄를 짓고도 명예와 돈을 이용해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아주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위기와 아픔 앞에서도 도시 사람인 루를 따뜻하게 대해줬던 익인들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혹자는 익인들을 당하기만 하는 약자에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두려움 앞에서도 지켜야 할 도리는 저버리지 않는, 침착하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던 그 용기야말로 무력보다 더 강한 힘으로 다가왔고 내게는 더 빛나며 소중한 것으로 보였으니깐.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앟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와 친말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p.107

 


<버드 스트라이크>의 어느 리뷰 글에서는 우리에겐 진실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한다. 같은 아픔을 가지지 않았어도 타인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진실한 사랑. 약한 것을 이용해 착취하지 않고, 가진 것을 시기해 끌어내리지 않는 사랑.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함께 비상할 수 있도록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는 그 마음.


그러니 우리는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속 가사처럼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손을 마주 잡아야 하고,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 조금은 더 따뜻한 세상이 우리를 비출 테니, 함께일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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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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