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리의 과학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도서]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리뷰
글 입력 2020.06.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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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마주할 수도 있는

사건을 SF로 상상해보다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독자가 현실과 앞날을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한 가지 조건 아래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 39편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병-19 발생 이후 사태를 반영한 1편을 추가해 모두 마흔 편의 짧은 SF 소설을 묶었다. 한 편의 글은 픽션과 논픽션의 혼합 구성이다. 논픽션은 픽션의 배경이 되거나 연관된 이슈, 사건, 지식에 대한 해설이며, 저자의 촌평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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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세상과의 “공존”


 

나의 넷플릭스 계정 속 ‘내가 찜한 콘텐츠’에 몇 달째 묵혀둔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2014년 개봉한 SF 영화 <인터스텔라>다.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안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람 당시 이 영화를 정말 이해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은 없다. 사실 다시 본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만큼 과학은 뼛속까지 문과생인 내게는 너무나도 먼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근 SF 장르에 조금씩이나마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 이유는 결국 ‘현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를 관람하던 2014년만 해도 ‘정말 이런 세상이 가능해?’ 정도의 의문이었는데 그로부터 고작 2년 후 바둑 두는 인공지능이 나타나 인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더니, 2020년이 된 현재는 늘 손에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에도 인공지능이 깔리는 등, 우리는 ‘정말?’이 ‘정말!’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정말?’도 ‘정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 나는 20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칭 아날로그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한다. 휴대폰의 빅스비는 실행해본 적도 없고, 시험기간인 지금도 종이에 모든 텍스트를 뽑아 직접 손으로 써가며 줄줄 외우는 ‘구시대적’ 공부법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세상 속, 새로운 기기의 필요성을 느껴 과감하게 구입하거나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보면, 과학적인 세상과 “공존”해야 할 필요성은 확연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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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변화하는 세상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세상이 올지 예측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미래를 엿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SF 장르’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매체를 불문하고 SF장르는 매니아가 많은 만큼 비매니아도 많다. 과학이라는 머리 아픈 분야를 다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터무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만큼은 진실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모든 발전은 바로 이러한 ‘터무니없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당연스레 누리는 모든 기기들, 아마 지금도 손에 들고 있을 스마트폰이 바로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의 결과물이니 말이다.

 

 

 

SF 세상 속, “나는?”


 

SF 장르란 곧 현실의 “비틀기”이다. 조목조목 비틀어버리기에 현실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 본질은 바로 현실인 것이다. ‘비틀기’라는 특성상 SF 장르의 내용은 낯설고 신비하지만 유쾌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불편하기도 한데, 그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다가올 미래에 이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헉!’하고 만들기에 ‘정말?’을 일깨우고, 현재 과학발전의 방향을 되짚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40편의 단편 소설에서 그려지는 세상 중 대다수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21세기 중반이나 말이라는 구체적인 시기와 관련 없이, 모두 과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과학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목적적인’ 존재가 아닌 ‘수단적인’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인간이 사용하는 각종 기기를 넘어, 신체와 뇌까지 각종 시술을 받아 인간을 개조시키거나 아예 생명체가 창조되는 그 순간부터 유전자 맞춤형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돈과 외모 등 외적인 요소가 아닌, 인간의 기원인 ‘탄생’부터 우열이 나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가 도래한다면 필히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논의가 제기될 것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현대(또는 머지않은 미래) 과학에 심리적인 친근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물리적으로도 한 몸이 되어버린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 받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각종 질병과 노화로부터 죽음을 늦추는 계기는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삶이 유한하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이라는 의문을 창출하게 된다. 한 이야기 속에는 노화로 인해 죽음이 가까워짐에도 전자두뇌, 즉 과학을 거부하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그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이 인간과 한 몸이 되는 것이 당연해지는 시대가 온다면, 그러한 인물은 ‘구시대적’인 인물로 충분히 비판 받을 수도 있다.

 

 

“어머니께서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병이 심해지기 전에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사리분별이 어려워지더라도 절대 전자두뇌를 이식하지 말라고. 자신의 앞날과 마지막 모습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p.152-153 <새해 첫 주의 어떤 절망> 中

 

 

그래도 ‘과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얼마든지 선택에 따라 자신의 ‘주체성’을 지켜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것을 잊지 않고 과학을 발전시키며 미래를 대비해야만 ‘정말?’이 올바른 ‘정말!’이 될 수 있음에 틀림없다.

 

 

“어쨌든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건 곧 21세기 말의 시대적 정의입니다.”

 

“그런 시대라고 해도 타인에게 특정 인생관을 강요하는 게 폭력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지요?”

 

p.163 <회의적인 도시> 中

 

 

그 어떤 시대가 도래한다 할지라도 ‘스스로에 대한 권리’만큼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가치일 것이다. 이는 인간의 삶 속 존재하는 과학도 피해갈 수 없으며, 없어야만 한다.

 

*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평생을 과학에 몸을 바쳤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적인 인간에 관한 문제’에 관해서는 과학과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즉 인간의 삶 자체가 과학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인간화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임을 그 누구도 아닌 과학자가 말하고 있다.

 

일상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코로나19는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존재를 다시금 깨우치게 만들었다. 깨우침은 곧 돌아봄이 되고, 점검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무비판적으로 과학의 발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현재 과학의 위치를 한 번쯤 살펴보고, 그 속의 ‘인간’을 고려하도록 만드는 것이 SF 장르만이 가진 힘, 곧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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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만 끝나면 기필코 몇 달간 묵혀둔

<인터스텔라>를 다시 꺼내봐야겠다.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김창규×박상준의 손바닥 SF와 교양-

 

 

지은이 : 김창규, 박상준

 

발행 : 2020년 6월 4일

 

쪽수 : 228

 

판형 : 130x200mm

 

정가 : 14,000원

 

ISBN 979-11-9025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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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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