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간직한 색깔은 다르지만, 연극 흑백다방 [공연예술]

흑과 백이 간직하고 있는 색깔들
글 입력 2020.06.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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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방이 있다.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 바로 다방의 정의이지만 이 다방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한쪽은 들을 수 없다.

 

주인의 아내의 기일, 이곳을 찾아온 손님은 몇십년 전 주인이 경찰이었을 때의 폭력 수사로 대학생 때 청각장애를 갖게 된 피해자였다. 피해자는 주인 아내의 유골을 파헤쳐 오고 격분한 주인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죽지 않는다. LP판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대학시절 노래를 따라 불러달라는 손님의 요청에 주인이 응할 때에야 손님은 주인의 입모양을 보고 노래를 기억하게 되고 비로소 그들은 음악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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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기억하는 그때 그 당시의 상황은 흑백의 대립된 색깔처럼 달랐다. 주인은 자신이 명령과 임무에만 충실했을 뿐이며 정권이 바뀌면서 버림받았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손님은 그가 체포당하는 사진마저 가짜이고 기사도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거짓부렁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주인의 폭력적 요구에 의한 자신의 억지진술에 친구들이 죽었고 자신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색깔 있고 소리 들리는 꿈을 꾸고 난 뒤 일어나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 민주화가 되면서 경찰로서의 일상 업무가 불법이 되었어요.


손님: 선생님한테 맞아가지고 양쪽 귀 먹었어요.

 

 

두 사람은 대치하다 바뀐 자리에 앉고 결국 음악을 통해 소통에 이르게 된다. 무언가를 간직한다는 것은 그것의 무게를 책임진다는 말이다. 주인은 자신의 죄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손님의 시간을 돌려낼 방법처럼 구체적인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반면 손님은 항상 자신의 들리지 않는 귀와 자신 때문에 죽은 친구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했다.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간직하는 지점이 다른데 인물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에 따라 그들 각각의 태도를 유추할 수 있다. 주인은 자신의 죄로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손님은 자신 그 자체가 무게가 되어 그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직하며 살았다. 이들의 태도는 흑과 백이 명백히 나뉘어진 것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마지막에 같은 음악을 함께 듣게 되는 이유, 소통에 다다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님, 정말 기억이 안 나요?

 

 

극중 손님은 자신은 세상을 믿었는데 주인과 경찰 조직과 같은 세상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손님이 간직한 것은 믿음이었고 세상은 손님의 핏자국을 뺀 모든 불신과 권력을 간직했다.

 

소통은 손님의 믿음에 주인이 입을 벌려 화답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이 가진 공통 기억은 한 사람에게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일상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들이 만들어가는 다방에서의 만남은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듣게 해주는 주인의 입모양으로 그들 공통의 시간 속에 새겨진다.

 

손님이 몇 십 년 전 울부짖던 울음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했던 주인이었다. 지금 그는 손님이 들을 수 없는 음악을 혼자 듣고 있다가 손님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들을 수 없는 자에게 소리를 들려준다. 그 소리는 흑과 백 사이의 무수한 스펙트럼 중 어떤 색깔을 지녔을 것이다.

 

여전히 손님에게 세상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벽이고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 벽이다. 그들은 다른 믿음, 다른 색깔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부분 그들은 색깔의 일부를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커피를 주고받으며, 노래를 들려주며 색깔을 교환한다. 주인이 들려준 소리 혹은 잃어버린 색깔은 입모양을 바라보는 손님의 시선 속에 포착되었고 이제 그도 주인과 함께 벽 너머의 다채로운 색깔을 넘겨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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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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