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기에 처했을 때의 주문, 구병모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 [도서]

구병모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은 현실세계의 주문 안내서이다.
글 입력 2020.05.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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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알리바바가 동굴 앞에서 외치는 주문은 ‘열려라 참깨’이다. 별 뜻 없어 보이고 심지어 다른 도둑의 말을 따라하기만 한 이 주문은 결정적 장면에서 알리바바 이야기를 반전시킨다.


현실에서는 절박하고 힘들 때, 소위 구원이라고 불리는 것이 내게로 와주었으면 할 때 외칠 수 있는 주문이란 술을 마시고 하는 한탄이나 푸념 섞인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실에서 주문은 무언가를 뒤바꿔놓지는 못하지만 위기에 처해있을 때면 입 속을 맴돈다.


이 소설집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주문은, 그리고 사람들의 주문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때로 그 주문은 냉정하게 익명의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외워지는 하나의 문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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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 속 소설들은 각각의 위기를 가지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 의해 지어진 끈적이는 거미줄에 당연하다는 듯이 발을 헛디디는 인물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차라리 얼굴을 모르면 얼굴을 마주 대하지나 말지, 끓어오르는 불편과 공포를 체감하는 인물들은 급박한 자신의 사정을 타인에게 관철시키지 못한다.


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에서는 작가로서 또 자신으로서의 삶을 타인이 전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자 작가로서의 삶을 놓으며 그들을 영원히 외면한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는 얼굴을 아는 타인들이 모르는 사람들보다 한 개인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 어떤 불편도 부작용도, 정주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정주는 문득 러시아워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서로 발을 밟고 밟히는 사이였던, 다시 스쳐갈 일 없으며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 수천수만의 얼굴들이 그리워졌다. 누구도 정주를 알지 못하며 정주 또한 그들을 모르는 세계에서의 불안과,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은 아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의 안식 가운데 선택을 요하는 문제에 불과했다. (중략) 그때 폭우 속에서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중략) 병원까지 실어다준 최씨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 정주는 의아해졌다.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 문학동네, 2018, p.85.(「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타인은 여전히 개인의 사정을 모른 체하고 예외적인 인물이 개인을 구해내지만 예외적인 인물마저 타인으로 기억된다. 타인은 영원히 남으로서 남게 되고 개인의 사정도 남에게는 남의 일로 남게 된다. 여기에서 주문은 입 속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무용지물이다. 주문이 작용할 공간은 낯선 타인의 시선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 개인의 사정과 욕망은 보이지 않는다.


주문을 실현하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여기 비록 상부의 지시였지만 구원이 필요할 때 스스로 주문이 되어주는 사례가 있다. 소설 「웨이큰」에서는 테러리즘이라는 타인의 배타적인 정체성이 극대화된 것으로부터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 가끔 그 희생은 ‘멋있게’ 묘사된다.

 


남편이 거기 뛰어든 순간 외부세계와 가상세계의 구별은 사라지고, 지독한 현실감만이 나의 내장을 흔들었습니다. 탐색이 아닌 투신, 기피가 아닌 접근, 막연한 대상이자 현실 아닌 모든 것들에 파열음이 일어나는 순간이었어요. 이이가 건드리고 지나간 곳들마다 진실이 생성되었어요. 어떤 열망이나 간절함이 부풀어오른 끝에 현실 착오에서 착오만 골라 집어 삼키는 듯했소.

 

같은 책, p.177.(「웨이큰」)


 

이 멋있는 게 주문이 될 수 있다면 주문은 한 번 내뱉고 구원을 취하면 된다는 식의 일회용품이 되고 만다. 주문이 한마디 말이라면 상관없지만 이 소설에서는 사람이 직접 위기의 상황에서 구원을 실현한다. 소설이 끝나도 그는 가상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웨이큰’하지 못하고 있다. 주문이 실현되었다고 그를 이미 내뱉어진 말처럼 어쩔 수 없는 사람 취급당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잘못이다. 이 주문은, 이 구원은 어딘지 탐탁지 않은 구석이 있다.


타인들에 대항하여 타인들을 구해냈지만 개인은 가상세계에 매장되었다.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영웅과 같은 개인의 희생은 결코 구원을 위한 주문 따위가 될 수 없다. 될 리도 없다. 주문은 실현되었으나 그것이 올바르게 실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주문일 수 있을까?

 


그것의 이름을 부르지 말자. 애당초 그것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말자.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 그리하여 처음부터 모든 것의 무의미만을 남겨놓은 채 그 무엇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자. (중략) 그리하여 나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흙바닥에 나도 읽을 수 없는 글씨를 총부리로 새기기 시작한다. 곧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와 네발 짐승의 호흡은 사라질 것이다. 말과 함께 이어졌던 존재에 결락이 생기고, 모든 세계가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의 파편 속에 잠기거나 말의 삭아 부스러진 로프에 감겨 꼼짝도 못하는, 무기력한 가난뱅이다.

 

같은 책, p.251.(「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사실 주문이라고 하는 것은 각자의 위기 상황이 다양하고 원하는 구원의 형태가 천차만별이니만큼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소설집에서 작가는 작가이기 때문에 제시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주문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소설을 통해 제시해놓는다. 위기 상황에서 작가로서의 주문은 이 소설집의 여러 소설에 드러나 있다. 그 중 하나가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말에 대한 지위를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바닥에 알아볼 수 없는 글씨를 쓰기 시작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생존 행위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곰으로 표현되는 타인, 나 아닌 다른 것에 관한 두려움, 혹은 나로부터 비롯된 낯선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계속해서 써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에 다가서려는 하나의 발걸음일 수도 있다.

 


거기에는 여인이 처음에 띄엄띄엄 부정확하게 적었던, 백지가 지난 세상에서 쓰던 것과는 다른 글자가 몇 번이고 적혀 있었다. (중략) 백지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없던 글자를 써내려간 흔적이었다.

 

같은 책, p.281. (「오토포이에시스」)


 

「오토포이에시스」에서 진리를 축약한 단 하나의 문장을 누군가 읽었는지, 그것이 주문이 되어 그가 구원을 맞이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주문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축적된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뛰어넘는 ‘다른’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나 아닌 어떤 다른 것은 결국 타(他)의 것이고 이것과 마주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 즉 주문의 첫 마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실을 반전시키는 구원이나 진리는 그것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런 상황에서 타의 것을 생각해보는 주문은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각자 삶에서 얻어내야 할 것들이다.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은 그런 의미에서 주문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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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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