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궤적 - '몸의 언어'

글 입력 2020.05.04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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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를 봤다. 사랑을 정의하고 탐구하는 느낌의 영화는 아니었다. 사랑이 뭘까, 하며 자조하는 것 같은 내용의 영화였다. 주인공 테루코는 마모루를 사랑한다. 테루코만 마모루를 사랑한다. 일방적이다. 테루코의 헌신이 사랑에 기반한 행위임을 알면서도 마모루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테루코가 제공하는 편의는 누리지만 마모루는 그 같은 헌신이 불편하다는 기색을 종종 드러낸다.


진전 없는 관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들고 늘어지는 테루코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사랑에 취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부조리를 자처하는 테루코에게 뒤틀린 구석이 있다고 여겼다. 테루코는 “차라리 마모루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지워져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그 뒤틀림을 설명하는 서사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는 맹목적 사랑의 이유를 설명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빠지는 자기비하의 감정을 오히려 관객에게 납득하려 시도한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종국에 영화는 테루코의 사랑을 우리의 통념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사랑이란 감정이 이렇게 부조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배재한다. 사랑이 뭘까, 란 탄식만 있다.


<몸의 언어>도 비슷하다. 나른 작가는 자기가 겪은 사랑의 경험으로 이 책을 쓰고 그렸다고 말한다. 자기 개인의 경험을 그렸지만 그것으로 사랑을 정의하진 않는다. 지나간 사랑을 “정리하고 되짚어보고 싶었다”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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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함에 이유를 붙이고 부연과 주석을 달려 혈안인 때가 있었다. 그것 자체가 무의미한 거였다. 도무지 사랑을 정의내릴 수가 없다. “정의”는 누구나에게 통용되는 절대적이고 명백한 규정을 일컫는다.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저마다 제각각의 사랑을 해서다. 시시각각 사랑의 형태가 변해서다. 당신이 겪었던 사랑과 내가 경험한 사랑이 같은 차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제는 증오했고 오늘은 보고 싶고 내일은 편안한 감정이 드는데, 그걸 다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의 언어>는 “널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면, 왜 사랑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한다. 불쑥 찾아오고 덜컥 대면하는 감정이 사랑이라서 “빠진다”는 동사가 붙었을 거라 짐작한다. 어쩌면 사랑은 우연이고 우연은 해석될 수 없다. 다시 한 번, 사랑은 정의내림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다만 사랑은 같이 궤적을 그려나가는 행위라서 사랑이 끝났을 때, 그 때 그었던 궤적을 헤집어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다음에 다가올 사랑을 준비할 수 있다.


<몸의 언어>를 보고 읽으며 내가 겪었던 사랑을 돌아봤다. 사랑을 해보지 않았을 때엔 그것이 마냥 낭만적인 것이라 여겨 환상에 취했다. 아름다움으로 가득해서 사랑이 별 볼일 없는 나를 바닥에서 끄집어내줄 거라 생각했다.


사랑을 할 때엔, 이게 사랑인지도 몰라서 연인과 싸웠다. 좋아하는 마음을 은폐하고 그걸 보여주면 관계에서 지고 들어갈까봐 염려한 적도 있다. 사랑이 끝났을 때엔 외로웠다. 사랑이 뭔지 정의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외로움이 뭔지는 알게 됐다.


나는 그때 그었던 궤적을 살피며 다음에 빠질 사랑을 대비한다. <몸의 언어>는 당신이 사랑했을 때의 기억을 다시 환기해준다.


 




몸의 언어

- 보통의 연애 -
 
 
지은이 : 나른

출판사 : 플로베르

분야
에세이

규격
165×210mm

쪽 수 : 184쪽

발행일
2020년 04월 10일

정가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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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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