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궤적 - '몸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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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를 봤다. 사랑을 정의하고 탐구하는 느낌의 영화는 아니었다. 사랑이 뭘까, 하며 자조하는 것 같은 내용의 영화였다. 주인공 테루코는 마모루를 사랑한다. 테루코만 마모루를 사랑한다. 일방적이다. 테루코의 헌신이 사랑에 기반한 행위임을 알면서도 마모루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테루코가 제공하는 편의는 누리지만 마모루는 그 같은 헌신이 불편하다는 기색을 종종 드러낸다.
진전 없는 관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들고 늘어지는 테루코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사랑에 취해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부조리를 자처하는 테루코에게 뒤틀린 구석이 있다고 여겼다. 테루코는 “차라리 마모루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지워져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그 뒤틀림을 설명하는 서사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는 맹목적 사랑의 이유를 설명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빠지는 자기비하의 감정을 오히려 관객에게 납득하려 시도한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종국에 영화는 테루코의 사랑을 우리의 통념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사랑이란 감정이 이렇게 부조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옳고 그름의 판단은 배재한다. 사랑이 뭘까, 란 탄식만 있다.
<몸의 언어>도 비슷하다. 나른 작가는 자기가 겪은 사랑의 경험으로 이 책을 쓰고 그렸다고 말한다. 자기 개인의 경험을 그렸지만 그것으로 사랑을 정의하진 않는다. 지나간 사랑을 “정리하고 되짚어보고 싶었다”고 언급한다.
당신을 사랑함에 이유를 붙이고 부연과 주석을 달려 혈안인 때가 있었다. 그것 자체가 무의미한 거였다. 도무지 사랑을 정의내릴 수가 없다. “정의”는 누구나에게 통용되는 절대적이고 명백한 규정을 일컫는다.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저마다 제각각의 사랑을 해서다. 시시각각 사랑의 형태가 변해서다. 당신이 겪었던 사랑과 내가 경험한 사랑이 같은 차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제는 증오했고 오늘은 보고 싶고 내일은 편안한 감정이 드는데, 그걸 다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의 언어>는 “널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면, 왜 사랑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한다. 불쑥 찾아오고 덜컥 대면하는 감정이 사랑이라서 “빠진다”는 동사가 붙었을 거라 짐작한다. 어쩌면 사랑은 우연이고 우연은 해석될 수 없다. 다시 한 번, 사랑은 정의내림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다만 사랑은 같이 궤적을 그려나가는 행위라서 사랑이 끝났을 때, 그 때 그었던 궤적을 헤집어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다음에 다가올 사랑을 준비할 수 있다.
<몸의 언어>를 보고 읽으며 내가 겪었던 사랑을 돌아봤다. 사랑을 해보지 않았을 때엔 그것이 마냥 낭만적인 것이라 여겨 환상에 취했다. 아름다움으로 가득해서 사랑이 별 볼일 없는 나를 바닥에서 끄집어내줄 거라 생각했다.
사랑을 할 때엔, 이게 사랑인지도 몰라서 연인과 싸웠다. 좋아하는 마음을 은폐하고 그걸 보여주면 관계에서 지고 들어갈까봐 염려한 적도 있다. 사랑이 끝났을 때엔 외로웠다. 사랑이 뭔지 정의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외로움이 뭔지는 알게 됐다.
나는 그때 그었던 궤적을 살피며 다음에 빠질 사랑을 대비한다. <몸의 언어>는 당신이 사랑했을 때의 기억을 다시 환기해준다.
몸의 언어
- 보통의 연애 -지은이 : 나른출판사 : 플로베르분야에세이규격165×210mm쪽 수 : 184쪽발행일2020년 04월 10일정가 : 16,000원[박성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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