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 사람의 교환일기 [도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글 입력 2020.04.26 17:50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notebook-1840276_640.jpg

 

 

‘교환 일기’라 함은 친구나 가족, 연인 사이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돌려 가며 쓰는 일기를 의미한다. 지금은 서로 간에 카톡, 커플 어플, 나아가 SNS의 댓글까지 디지털식으로 서로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빈번히 나눌 수 있게 됐지만, 나한텐 아직도 아날로그 소통 방식으로 멈춰있다.

 

엄마와 나만의 화해 방법이 있었다. 지금에야 깨닫게 된 거지만 엄마와 딸 사이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싸움의 끝은 주로 내가 방으로 쌩 들어가버리는 식이었는데, 몇 시간이 지난 뒤 미안함의 감정이 차올라 방문을 살짝 열어보면 아래엔 공책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속엔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시작으로 엄마의 사과로 마무리된다. 답변으로 내 심정을 적어내고 (자존심이 세서 사과는 거의 안 한다) 안방 앞에 놔두고 괜히 소리를 내며 방으로 돌아온다. 하트를 몸통으로 만들어낸 엄마만의 특유 캐릭터를 최종 답변으로 받는 순간, 우리는 각자 방에서 나와 아무 일도 없던 냥 이야기를 이어간다.


 

SE-c1848114-886e-4db1-ac54-96da6e545e66.jpg


 

도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형식으로 전개된다. 가수, 영화배우이자 책방 주인인 요조와 소설가인 임경선은 문체에서도 드러나는데, 다소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들 또한 인정한다. 요조는 부드럽고 침착하지만 그만큼 무르다. 임경선은 뭐든지 빠르다. 항상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말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다르지만 둘의 대화는 교환일기를 넘어서 시도 때도 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몇 년의 우정은 서로를 물들게 하였다.

 

인간관계, 연애, 결혼, 삶에 대한 생각 즉 모든 주제를 가감 없이 다룬다. 커리어면에서 페이 협상법부터 자신의 프리랜서 이야기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사생활 면에서는 각자의 연애 방식과 대화의 솔직함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렇듯 소위 둘의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뜻하지만, 최근에는 대화가 잘 맞아 빠르게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둘 만의 사적인 영역에서의 소통에서 머물지 않고 책을 읽는 제 3자의 깊은 공감까지 끌어낸다. 필자는 상반된 성향이 공존한 유난스러운 성격인데 둘의 대화를 보면서 양쪽의 관점에서 공감하기도, 한쪽에 시선에서 부러워하기도, 위로받기도 했다.

 

필자와 관계에 관한 생각이 유사한 요조가 자신이 그에서 받은 상처와 나름의 해결법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날아온다.

 


“고독한 게 두려우면서도 두렵지 않은 척하며 서로를 더욱 고독하게 하고, 혼자 고독함을 찾아내는 능력은 조금도 대견해하고 싶지 않아.”

 

“서로에게 ‘언제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이라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특히나 같이 살고 있다면 참지 말고, 자신이 솔직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그녀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나중에 상처를 받을지라도 상대방의 장점을 쉽게 찾아내고 다가가는 능력을 알아봐 주며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레 덧붙인다. 개인적으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감정을 숨기고 혼자 감당하는 스타일이기에 마음이 많이 갔던 문장이다.


 

friendship-2156171_640.jpg

 

 

점점 나이가 들며, 패스추리처럼 내 본연의 성격 위를 둘러싸는 면들이 많아진다. 친구라면 모든 감정을 공유해야만 하는 줄 알았던 과거에서, 한 두 겹 정도의 우정만 나누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다는 걸 이해한다.


그러한 사회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속마음까지 걱정 없이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이를 자연히 인정하면서도 감정 상하지 않게 서로의 의견을 밝히며 티키타카 할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침묵 속에서 억지스러운 추임새를 넣지 않아도 익숙해지는 친구가 있다. 마냥 장난치며 웃기다가도 한없이 진지할 때는 진지해질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어이없는 사소한 일로 무너짐을 보일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이전에 나는 ‘1인칭’의 삶에 익숙했다. 훗날 스펙타클했던 내 일상과 감정을 기록하고 싶은 에세이를 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과 교감했던 흔적을 남겨두고 싶다.

 

읽는 내내 부러워 한 요조와 임경선, 그들처럼.

 

 

 

에디터 박수정 tag.jpg

 


[박수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김혜인
    •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과 그 신중함에서 오는 무게감의 중요성이 느껴지네요 타인과의 티키타가는 늘 맞진 않으니 쉽지 않지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의미 있는 티키타카를 위해 늘 진심이 통하는 제가 되길. 그리고 작가님과도 그리 소통하길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