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 The Breadwinner [영화]

글 입력 2020.04.2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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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카스트제와 한국의 가부장제, 두 문화는 ‘전통’이라는 이름을 함께 공유한다. 우리는 ‘이게 전통이야’라는 문장만으로 많은 것들이 묵인된 채 넘겨지고, 반박의 목소리는 쉽게 없었던 일로 치부된 날들을 지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고착화되어 온 시간 만큼이나 전통이 쥔 권력과 힘은 강력했기 때문이다.


전통은 애초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써 내재화되어왔다. 그리고 점차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져 왔던 잘못된 관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전에 그 벽의 높이와 두께를 체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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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소개할 영화는, 그리 멀지 않은 나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통’으로써 이루어지는 처참한 인권 유린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The Breadwinner다.


아시아 중앙부에 위치한 국가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들 사이에 놓이면서 역사적으로 수천 년에 걸쳐 국경이 재차 나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과 혼란이 거듭되었고 마침내 평화의 시대로 다다르는 듯했지만, 안정을 되찾을 새도 없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 결성된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 탈레반이 권력을 쥐게 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급작스러운 전통화가 이루어졌다. 즉 이슬람교의 종교적 전통이 정치화된 결과였다.


그리고 The Breadwinner는, 파키스탄 국경의 아프간 난민촌에서 수개월을 살면서 그 고통과 비극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데보라 앨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넷플릭스를 통해서는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으로 번역되어 제공됐다. 번역된 제목으로 유추할 수 있듯 ‘가장(家長)’이라는 의미의 ‘Breadwinner’는,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자 어린 아프간 여성인 파르바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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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는 아버지가 탈레반에 의해 투옥됨으로써 성인 남성이 부재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어린 아프간 여성이 엄마와 언니 소라야, 네 살배기 남동생 자키, 그리고 파르바나 본인까지 총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이 남성 없이 밖에 혼자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여성이 혼자 밖에 나와 불필요한 관심을 끌면 안 된다는 것이 근거다.


혼자 나온 여성에게 물건을 판 상인은 손가락질을 받거나 곤란한 일을 겪었고, 파르바나의 가정처럼 성인 남성이 부재한 가정에선 식량을 사거나 물을 길어오는 일이 매번 목숨을 걸고 행해졌다. 따라서 파르바나에게 살기 위한 최선은 남장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죽은 오빠 술레이만의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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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남성의 상황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이 나라에선 누구든 지뢰가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걸어야 했고, 글자를 배울 수 없었으며, 남성은 죽거나 팔다리를 잃을 위험을 감당하며 전쟁에 출전했다.

여성에게 물건을 팔았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는 행인, 파르바나를 괴롭히는 이드리스, 즉 이들의 폭력은 자신의 억압감을 또 다른 억압으로써 해소하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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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는 시장에서 우연히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바로 동창 샤우지아였다. 샤우지아는 파르바나보다도 이른 나이에 남장을 하고 밖으로 나와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르바나와 샤우지아는 다른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다. 샤우지아는 델로와르라는 이름으로, 파르바나는 오테시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샤우지아는 투옥된 파르바나의 아버지를 꺼내기 위해서는 뇌물이 필요하다 조언했고, 결과적으로 돈으로는 아버지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샤우지아는 그 과정에서 파르바나의 곁을 지켰다.

파르바나와 샤우지아는 델로와르와 오테시로 살 수밖에 없던 현실 속에서,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서로의 진짜 이름을 불러준다. 샤우지아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며 자신을 위해 물건을 파는 게 꿈이라 말하면서, 그녀가 가고 싶은 멋진 바다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파르바나는 ‘네가 말했던 해변에서 20년 뒤에 만나자’는 진심 어린 기약을 담아 그녀의 진짜 이름을 불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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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극적인 현실에서 이들이 연대하는 방법, 그리고 당장 내일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름 아닌 ‘이야기’였다. 파르바나의 서사와 교차되며 전개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정확히는 파르바나가 어린 남동생 자키에게, 그리고 엄마가 이어받아 다시 파르바나에게, 또 파르바나가 델로와르와 함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파르바나가 파르바나 자신에게 들려주며 전개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엘리펀트킹(코끼리 신)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내려는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다. 파르바나는 공포나 불안감에 휩싸이는 순간마다 엘리펀트킹 이야기를 연재해간다. 곧 그녀에게 이야기 행위는, 그 자체로 현실을 견디는 수단이자 당장 내일을 살 의지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녀가 필사적으로 이야기만은 지켜내려 했던 건, 다름 아닌 파르바나 자신의 서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엘리펀트킹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홀로 마을을 떠나고,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며 최후의 엘리펀트킹에 대적하려 한다. 그리고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끝내 파르바나로 겹쳐 보이는데, 그 이유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장을 하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 홀로 돈을 벌어 용감하게 교도소로 찾아가는 파르바나, 무엇보다 주인공에게 “네 이야기를 쏟아내!”라 절박히 소리치는 그녀의 한 마디는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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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불과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지금 한국과 비슷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파르바나의 엄마는 한때 작가였고, 아빠는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아빠는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게 됐으며, 엄마는 혼자서는 밖에서 물을 길어올 수도 없는 처지에 다다랐다.

무너져야 할 부당한 관습들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키려는 사람들. 아프가니스탄의 이러한 관습은 정말로 ‘전통 있는’ 역사를 지녔는가. 그렇다면 과연 전통이라는 이름만으로 인권 유린이 가능해질 만큼, 모든 전통은 위대하다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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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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