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를 보내기 [사람]

혼자가 두려운 당신에게
글 입력 2020.04.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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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라는 슬로건을 시작으로 세상은 이제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가득하다. 한국에서는 혼자서 무얼 하기 눈치 보인다는 말도 옛말. '혼밥'을 시작으로 '혼영', '혼술' 등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혼족'이라고들 명하던가. 그러나 여전히 혼자 있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지인 중의 한 명도 그러했다. 안면만 트고 사적인 연락을 한 적 없으니 지인이라고 칭하기 모호하다만. 같은 과 동기였는데 강의도, 카페도, 밥도, 뭐든지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좋아했다. 그가 갑자기 나에게 생글거리며 다가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혼자였다. 그러니까, 널찍한 강의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기가 싫어서 아는 척을 해대는 것이었다. 본인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았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패턴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지금처럼 MBTI가 유행처럼 퍼졌더라면 '너 MBTI E로 시작하지'라고 묻지 않았을까.


나는 그 동기와 거의 양극에 서 있다.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소비를 즐기지 않아서 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쇼핑하러 다니지는 않는다. 대신 푹신한 이불 위에 무거운 몸뚱이를 뉘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들이마셨다가 내쉬기를 즐긴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이런 의문이 든 거다. 나는 자신과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가? 좋아함과 그렇지 않음을 떠나서 '예' 혹은 '아니요'로 답하는 문제다. 혼자 있기를 잘하니까 '예'에 가깝지 않나? 그런데 스트레스가 생겼다 하면 얘기가 전혀 달라졌다. 불안과 분노, 우울함에 허우적대다가 타인에게 의존하고 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스트레스가 밀려오는 상황에서도 홀로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해결책을 찾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조건이란 한계가 아니던가? 때로는 좋은 기준이 된다. 예를 들자면, 나는 '건강하게, 생산적으로, 무엇보다 드는 비용 없이' 혼자 보내고 싶었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와중이니 실외 활동은 최소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적어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구경하기는 리스트에 넣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 방법을 물색할 때. 그 전에, 나에 대한 진단이 먼저였다. 돌아가야 했다. 변화가 시작된 그 지점으로.




하루는 무려 24시간입니다



혼자 시간을 잘 보낸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그렇지 않다고 느낀 것은 석 달 전이다.

 


첫 번째 증상, 하루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초가 쌓여 분이 되고, 분이 쌓여 시간이 되고, 시간이 쌓여 하루가 된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뇌에 시계가 달린 느낌이었다. 째깍. 째깍. 째깍. 오후 여섯 시가 넘어가면 왠지 모를 안심이 들었다. 아, 드디어 하루가 끝나가는구나. 곧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겠지. 이 무렵 나는 깊은 새벽녘에 잠든 기억이 난다. 기나긴 아침을 최대한 짧게 만들기 위해.



두 번째 증상, 불안했다.


기질적으로 불안을 잘 느낀다. 동시에 불안을 잘 다스릴 줄도 안다. 한 몸처럼 커왔으니까. 그런데 컨트롤하기가 어려웠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일을 잔뜩 벌였다. 의외로 해야 할 일은 해냈다. 문제는 방식이 아주 너저분했다는 점. A를 하다가 B를 하고, 잠시 쉴 겸 핸드폰을 하다가 C가 떠올라 조금 건드렸다. 그리고 B와 A를 반복. 이렇게나 정신없었다.



세 번째 증상,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당연한 결과다. 낮과 밤이 바뀌었으니 신체 리듬이 붕괴하였고, 숙면의 질도 떨어지고,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 여기에 불안감까지 안고 있었으니 육체며 정신이며 힘들다고 아우성칠 수밖에.



그런데도 이 모든 불편을 그대로 떠안고 있었던 것은, 신기하게도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첫 토익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었고,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었고, 또 다른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고, 학교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기회까지 생겼다.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은 중요한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하면서였다. 가장 가까운 이와 싸우고, 다투고, 서로 지쳐서 흐지부지되었다가 다시 불같이 달려들었다. 안 그래도 답답한 일 천지인 세상에 개인적인 문제까지 겹쳤다. 이때 괴팍한 생각을 참 많이도 했더란다.


자, 이제 해결의 출발점에 섰다. 나의 조건에 맞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새롭게 발견한 방식, 혹은 해오던 방식을 확장하여 만든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나를 다루는 방식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다. 그런 내가 판단한 나의 특징 몇 가지. 예민하고, 체력이 안 좋고, 그에 비해 정신력은 좋고, 생각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나온 방법은

자전거 타기였다.


 

따릉이는 작년 중순부터 줄기차게 타왔다.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가끔은 비를 맞으면서도. 바람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여기에 교통비가 줄어드는 기쁨은 덤. 다만 부실한 발목에는 적응기가 필요했다. 약한 체력의 연장선인 셈이다. 매일 따릉이 타던 때엔 발등에 염증이 생겨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더라지. 이제는 요령이 생겨 가장 적절한 안장 높이, 힘을 주어야 하는 부위, 무리 없이 발목을 움직이는 법도 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새삼 느꼈지만, 서울은 모든 인프라가 모인 곳답게 자전거 도로까지 잘 되어있다. 물론 자동차와 버스 틈으로 숨 막히는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구간이 있긴 해도 대체로 양호한 수준이다. 나무나 하늘을 구경하며 다리를 신나게 움직일 때면 코와 입을 막는 마스크 틈으로도 시원한 바람이 오가는 기분이 든다. 답답한 일상 속 해방을 느끼는 순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을 수 없다.



이어서 두 번째, 플래너 활용하기.


 

나는 계획 짜기를 좋아하고, 실행하는 것은 더 좋아하고, 모든 리스트를 완수하는 것은 더욱이 좋아한다.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좋다. 자신을 위해 오늘 하루도 애썼다는 사실도 큰 위안이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해 다이어리를 사곤 했다. 일 년 후의 결과는 대개 그러하듯 엉망이었다. 썼다가 말고, 또 썼다가 말고. 그러다 학교 신문에 짤막한 글과 사진을 기고하여 소정의 상품, 즉 데일리 플래너를 받았다. 쓰지도 않던 다이어리를 책장 구석에 받아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플래너를 채워갔다.


놀랍게도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그렇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위한 이정표, 플래너였다. 작년 말에 일대일 상담을 하며 나에 대한 고민을 털었다. 불안과 걱정이 많아서 인생의 장기 계획을 잡기가 힘들다고. 처방은 이거였다. 작심삼일 작전. 작심삼일이라는 말 그대로 3일 계획을 세우고, 3일 동안 수행하고, 다시 3일 계획을 짜는 것이다. 당시 나에게 딱 맞는 방법이었다. 지금은 조금 성장한 걸까. 3일이 짧다고 느껴 일주일에서 열흘을 한 번에 계획한다. 느리지만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세 번째, 눈 감고 숨쉬기다.


 

정확히는 '아우토겐 트레이닝'인데 잠이 안 올 때나 몸이 피곤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먼저, 편한 자세를 취한다. 의자에 앉아있다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려 어깨에 힘을 빼고 팔을 공중에 늘어뜨린다. 여기서 두 발은 꼭 바닥에 닿은 상태여야 한다. 신발을 벗을 필요는 없다. 누워있다면 발이 지면에 닿지 않아도 된다. 똑같이 힘을 빼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주문을 건다. 나는 아주 편안하다, 나는 아주 편안하다, 나는 아주 편안하다.


서너 번 생각한 후에, 다음 문장을 열 번 정도 생각한다. '나는 오른팔이 아주 무겁다.' 정말 무겁다는 생각으로 감각에 집중한다. 아주 오래전에 다친 부위가 아플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초등학생 때 다친 정강이에 통증을 느꼈다.- 나름 치료요법이라서 그렇다. '아우토겐'이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독일에서 만든 방법이다. 전쟁 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국민을 위해 탄생한 '돈 안 들고, 쉽고 간단한 스트레스 치료법'. 총 8단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첫 단계만으로도 충분히 몸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감정 일기 적기.

대략 시간을 정해 나의 감정과

에너지 레벨을 체크한다.


 

우선 감정 일기부터 이야기하자면, 하루 세 번 내가 나를 확인하는 것이다. 정확히 시간을 정할 필요는 없다. '기상 후, 이른 오후, 저녁'처럼 대략.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자신의 감정 대신 타인의 감정과 시선에 에너지를 쏟아왔기 때문이겠지. 여기서 유의사항. 감정 표현은 상태가 아니다. 배고픔, 졸림, 지루함 등은 일기에 쓸 수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기분이 나쁘다'가 아니라 우울, 분노, 짜증, 언짢음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간단히 정의해 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핸드폰 메모장이든 종이에 볼펜으로든 꼭 적어서 눈으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어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만들기 위함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간단해 보이지 않는가.


에너지 레벨은 하루에 한 번, 잠들기 전으로도 충분하다. 전체 에너지가 10이라고 치면 불 끄고 잠자리에 누운 현재 에너지는 얼마인가. 자신의 체력을 탓하기 전에 '오늘은 에너지가 1 남았으니까 힘들구나'라며 자기 자신을 이해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을 수치로 만드는 과정이다. 머리에 떠도는 관념에 이름을 붙여 실제로 꺼내 보면, 가끔 정말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을 마주한다. 이렇게 견딜 수 있는 역치를 높이며 조금 더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인간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부정적인 기분이 들면, 인간은 으레 그러하듯 소비를 택한다. 자기합리화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다. 기분이 안 좋으니까 맛있는 거 먹자, 기분이 안 좋으니까 이거 사서 전환하자. 혹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퍼마시며 괴로움을 잊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을 더 괴롭힌다. 당신의 스트레스를 풀어 줄 타인이 항상 곁에 있으면야 이런 고민도 필요 없다. 하지만 인간은 때로, 어쩌면 꽤 많은 시간을 혼자 이겨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자신을 보살피는 영역이라면. '자신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질문은 '스트레스를 혼자 어떻게 관리하는가?'로 이어져, 꽤 건전한 방법 네 가지를 소개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지갑부터 챙기던 당신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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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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