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눈가를 더듬어 보면, 나는 안대를 착용하고 있다 ②

내 남편이 나라에서 추방당했다 – 영드 이어즈&이어즈
글 입력 2020.04.06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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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사생대회에서 먼 미래에 대해서 그렸다. 사람들은 공기가 보호된 투명한 튜브안에서 살고, 자동차는 날아다녔다.

그 그림들은 그린 지 15년이 훌쩍 지났는데 보편화된 모습은 아무것도 없다. 근시안적인 태도는 지양하기로 하지만, 원시안의 지혜를 말하는 것에는 근시안에 대한 파악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매일 매일이 다른 현대사회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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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어즈&이어즈

 


영국 방송사 BBC에서 방영한 Years&Years(이하 이어즈&이어즈)는 지금, 당장을 보여주고 있다.

2034년까지의 가까운 미래를 정치, 기술,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소재로 풀어낸 현실적인 SF블랙코미디 장르라고 공식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가상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가족이다.

일례로 트럼프의 재선과 그에 따른 멕시코 압박 및 세계정세흐름,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 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가 실제 인물과 사건을 언급하는 것에 보수적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 미사일이 실제로 발포되었을 때, 언론이 기능하여 그러한 사실이 일반인에게 은폐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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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어즈&이어즈

 


그야말로 리얼리즘이다.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동성커플, 빅토르와 대니얼에 관한 것이었다. 대니얼의 전남편이 빅토르를 이민국에 불법체류자로 고발하는데, 빅토르는 우크라이나에서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민자법에 따라 24시간도 안되어서 즉각 추방당한다.

인상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LGBTQ를 자연스럽게 작품화하는 모습은 가히 그렇다. 게다가 국가 간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법률적 차이로 인해 벌어질 곧, 미래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안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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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ell Tovey & Maxim Baldry, Photo by Omar Khaleel

 


이어즈&이어즈는 고작 6부작이다. 6부작에 이 많은 내용을 넣기 위해서, 마이너한 주제에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빠른 전개를 선택하고 있다.

최근 문화의 흐름을 보면 아주 사회와 관련 없는 개인 힐링에 관한 것이거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과 소통하기 위한 친절한 해석집으로 나뉘는 양상이 보인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실, 일반인이라는 범주도 옳지 않다. 각자 전문인 분야가 있고, 필요에 따라 협력하는 것이다. 상생, 공생, 협력이라는 말을 최근에 많이 들은 것 같다고 느꼈다면, 맞다. 그것이 현재 사회의 순환적 특징이다.

기업들은 사회적 기업을 표방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봉사활동 목록들을 조금만 둘러보더라도 ‘재능기부’라는 타이틀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협력은 곧 관계를 의미한다. 하물며 밀림에서 태어난 타잔도 동물사회의 구성원이었다. ‘관계’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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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어즈&이어즈

 


아직까지 부담스럽고, 무겁고, 매니아적 성향을 가진 뉴스 대신, ‘문화’라는 소통 창구가 점점 크게 이용되고 있다.

로맨스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제를 그리게 된 대중문화들도 그런 이유를 포함한다. 정보 전달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보수용에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개인 생존을 물론이고, 그런 흐름이 유지된다면, 사회 생존에 대해서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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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시든 꽃에 물을 주듯

 


나는 종종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감성을 즐기고만 싶을 때가 있다. 복잡하고 바쁘고 시끄러운 뉴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나에게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 때도 있었다. 시류를 챙긴다는 것이 ‘감성’이라는 말과 반대말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초등학교에 책을 읽어서 왕따라는 ‘책따’가 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신문의 정치, 경제, 사회 면을 읽는 사람은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어려움이 생겼을 때 찾게 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다.

오히려 오늘이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웃는다.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앎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의 나는 더 감성적이다. 감성이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감성을 파괴한다는 핑계로 더 이상 많은 것들을 외면하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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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술이나 영화, 드라마 매체에서 아주 먼 미래를 그렸던 것은 가까운 미래는 오히려 더 무섭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 추측이 엇나가는 것도, 현재에서 짧은 시일 내에 격변한 모습도 막연하게 불편했을 것이다. 당장 익숙한 이불에서 벗어나라고 외치는 격이니.

그러나 우리 시선이 분명히 필요한 곳이 있고, 나의 시선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바라볼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봐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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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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