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세 번째 목소리, 조명 디자이너 원유섭

무대를 비추는 빛에 살다
글 입력 2020.03.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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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3

조명 디자이너 원유섭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무채색 무대를 마주친다. 저마다 자리를 찾아가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 공연 임박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일순 멈춰있던 무대에 ‘후욱’하고 생기가 불어 넣어진다. 조명이 켜지는 순간이다.


흔히 우리가 조명을 상상할 때, 그저 밝게 켜진 모습이나 독백을 강조하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정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조명은 시작부터 끝까지 작품과 긴밀하게 밀착하여 함께 숨을 쉰다. 장면에 맞춰 힘을 빼고 넣으면서 작품 서사를 함께 완성해간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것이 바로 조명의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익숙한 듯 익숙지 않은 조명의 세계를 알아보고자 <빨래>, <더 데빌>, <브로드웨이 42번가>, <거미여인의 키스>, <오펀스> 등 숱한 작품에 빛을 비춘 조명 디자이너 원유섭님과 인터뷰 시간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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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빨래> 中  (ⓒ. 수박)

 

 

Q. 안녕하세요, 유섭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원유섭입니다. 연극, 뮤지컬, 무용, 콘서트 등 공연 관련 조명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Q.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조명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처음 조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1세대 조명디자이너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94년 여름에 제주도에서 하는 한 축제의 조명팀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힘들게 셋업을 마치고 팔로우 오퍼레이터 임무를 수행하러 약 6~7m 높이에 올라가게 되었죠. 콘서트가 시작되었지만 해가 지기 전이었던 터라 조명이 켜진 건지 꺼진 건지 분간이 안 되었습니다. 거기다 체력마저 거의 고갈되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잠시 후, 해가 졌고 그 순간 전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제가 설치했던 조명기들에서 빛이 살아나기 시작한 거죠. 해가 사라진 밤바다를 배경으로 보이는 것은 오로지 무대에 펼쳐진 수많은 빛들과 수평선임을 알려주는 듯한 오징어잡이 배의 반짝임이 전부였습니다. 한참을 넋 놓고 그 광경에 빠져있었고 그때부터 ‘불쟁이’가 되고 싶다는, 조명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Q. 그때의 두근거림이 유섭님을 지금의 자리까지 이끈 것이군요. 조명이 가진 매력이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그에 앞서 무대를 완성하기까지 조명디자인의 전반적인 과정을 들어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모든 스텝의 공통된 작업이겠지만, 작품을 의뢰받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대본 분석입니다. 물론 파트별로 분석을 하는 방법이나 심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조명의 경우 대본에 명시된 시간, 장소, 시대적 배경 및 그 안에서 표현되는 공간을 가장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물론 작품의 연습이 시작되면  창작자들과의(Creative Team) 회의 과정을 통해 달라지는 부분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을 게을리할 수는 없겠지요.


대본 분석을 마친 후에는 회의를 통해서 세부디자인을 시작합니다. 이때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부분이 바로 조명기의 배치 구상 및 레퍼런스 리서치입니다. 작품에 맞는 특정 조명기기 및 패턴, 즉 고보(gobo; 대개 스테인리스 합금으로 된 작은 원형 판에 도형, 그림, 기호 등을 뚫은 뒤, 고보판에 끼워 조명기에 부착함. 다양한 무늬의 무대연출이 가능)라던가 장면별로 테마가 될 수 있는 컬러 등 빛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찾게 됩니다.


특히 조명의 경우 무대디자인과 배우들의 동선, 그리고 음악적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셋업을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수차례 수정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컨셉부터 다시 작업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연출과 무대 디자이너와의 협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말로 풀이하다 보니 간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전반적인 디자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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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 디자인 자료 일부

 

 

다음 작업은 셋업 현장에서 이루어집니다. 크게 구분을 하자면 조명기기 설치, 시스템 구축, 장면별 메모리(memory; 각 장면의 조명 밝기 및 구성 설정 후 이를 디지털 신호로 저장하는 시스템 또는 저장한 데이터), 리허설, 공연 순이 되겠습니다.


설치 및 시스템 구축기간은 연출부 및 배우들의 연습 스케줄에 맞춰서 런스루(run-through;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하는 연습)를 참관한다거나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되도록 극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조명 디자인이 완성되는 곳은 결국 관객과 직접 만나는 극장입니다. 빛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아무리 많은 사전준비를 했더라도,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때 처음 구상과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때문에, 장면별 메모리가 시작되기 전 테스트 삼아서 가(假) 메모리를 해 본다거나 빛을 직접 인물에 비춰 보는 등의 작업을 합니다. 이를 통해 조명기기의 세부 위치를 조정하고 설치 방법을 결정짓는 거죠. 경험상 이 과정을 거쳐야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림들을 실제로 시각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다음으로는 장면별 메모리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작품마다 주어지는 시간이 매번 다르지만 보통 이 시간을 통해서 조명 디자인의 가장 큰 뼈대가 완성됩니다. 추상적인 구상들이 정해진 공간과 완성된 세트에서 가장 처음으로 실제 구현이 되는 시간이어서 약간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시간이라고 할까요? 물론 연출부 혹은 무대 디자인 팀과의 협의가 계속 병행이 되고요.


이후 리허설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이때가 가장 최고조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리허설은 크게 테크니컬 리허설(technical rehearsal; 음향, 영상, 조명 장비 등의 설치를 완료한 다음 각 엔지니어와 연출자가 무대 기술적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리허설)과 드레스 리허설(dress rehearsal; 의상과 메이크업을 비롯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실제 공연과 동일하게 실시하는 리허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테크니컬 리허설은 모든 파트에서의 수정·보완을 병행하며 진행되기 때문에 혹여 중간중간 리허설을 멈추게 되었을 때 주어진 시간 안에 업무를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을 거의 모든 팀이 고스란히 느끼게 되죠.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공연과 똑같은 조건으로 진행되는 드레스 리허설을 마치면 드디어 본 공연의 막을 올리게 됩니다.

 

 

Q. 와, 마치 한 편의 조명 과정을 함께한 것 같아요. 이 친절한 설명은 역시 노련함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웃음) 지금까지 <빨래>, <더 데빌>, <오펀스>, <팬레터>, <브로드웨이 42번가>, <총각네 야채가게> 등 많은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유섭님이 작품을 다룰 때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작품마다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우선, 제가 생각하는 조명의 역할을 먼저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대본 분석의 과정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조명이 작품에서 표현 할 수 있는 것으로는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 공간, 날씨, 분위기, 등장인물의 감정 등 교과서적인 부분만 언급해도 표현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지요.


하지만 저는 그 외의 무엇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표현하기 모호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설명하자면 ‘빛으로 말을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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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더 데빌> 中  (ⓒ. 알엔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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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中  (ⓒ. 알엔디웍스)

 

 

조명이 작품 자체에 기능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만, 때론 그 표현이 사실적일 필요가 없는 순간이 존재합니다. 제가 했던 작품들을 예로 들자면 뮤지컬 <빨래>, <브로드웨이 42번가>, <오펀스> 등은 대본에 충실하며 조명의 역할이 분명하게 그려진 작품이지요. 반면 뮤지컬 <더 데빌>이나 <그림자를 판 사나이> 그리고 연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같은 경우, 그 역할이란 것을 구분 짓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표현을 해내야만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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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中  (ⓒ. 알엔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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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中  (ⓒ. 페이지1)

 

 

다시 말씀드리자면 어떠한 작품을 하건 단 한 번 혹은 수차례 시도되는 빛 그 자체로서 메시지를 던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작품에 방해가 된다거나 보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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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 HOPE > 中  (ⓒ. 알엔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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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나쁜자석> 中  (ⓒ. 레드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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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팬레터> 中  (ⓒ. 라이브)

 

 

가끔 찾아보는 작품 후기들에서 “조명이 너무 세다!”, “너무 조명이 돋보이려 한다!” 하는 지적 혹은 의견들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저의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저는 조명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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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 HOPE > 中  (ⓒ. 알엔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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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어나더 컨트리> 中  (ⓒ. 페이지1)

 

 

Q. ‘빛’ 자체가 가진 힘을 메시지로 승화시키는 거네요. 빛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꿈꾸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론 무대가 펼쳐지는 공간에 대한 이해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유섭님은 대학로의 소극장부터 중·대형 극장까지 다양한 공연장에서 작업을 해오셨잖아요. 혹시 공연장의 특성에 따라 조명이 받는 영향이나 제약이 있을까요?

 

먼저 기술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무대 조명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가 바로 무대 위 인물을 비추되 관객들이 그 무대 위를 지속해서 집중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거든요. 공연에서 사용되는 조명기와 일반 가정 및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조명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사체에 집중해서 빛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죠. 따라서 관객에게 보이는 공간 외에도 무대 위를 비춰줄 조명기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 역시 꼭 필요합니다. 아티스트의 머리 위가 될 수도 있고 양쪽 사이드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론 뒤나 정면 혹은 발아래와 같은 공간이 될 수도 있죠.


이러한 공간의 사용이 모든 극장에서 같은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이 조명이 받는 영향일 수 있겠군요. 같은 소극장이라고 해도 극장마다 구조와 허용 전력 용량이 다르며, 대극장이라고 무조건 여건이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공간마다 다른 제약으로 무대 조명에 끼치는 영향을 다 말씀드리기엔 너무 광범위하니 제가 디자인을 맡았을 때의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간이 협소할 경우엔 무대 위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빛 선 들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디자인 역시 전반적인 톤 혹은 컬러나 패턴 쪽으로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네요. 제가 했던 여러 작품 중 예를 들자면 뮤지컬 <빨래>와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같은 경우, 거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사실적인 표현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소극장이라는 공간 특성상 빛의 퍼짐을 최소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인물에 집중하는 장면들을 메모리 할 때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세트들을 살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세밀한 밝기 조절을 요구하는 작업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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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中  (ⓒ. 레드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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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빨래> 中  (ⓒ. 수박)

 

 

넓은 공간, 즉 대극장이나 아레나, 야외 상설 무대 같은 경우엔 작은 공간과 반대로 무대 위 아티스트 외에 세트 혹은 구조물 들이 더욱 부각되어야 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이번엔 뮤지컬 <킹 아더>와 <캣츠>를 예로 들어볼게요. 장소가 넓은 만큼 표현하는데 제약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넓어진 공간을 채워 내야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기본에 충실함은 물론이고 등장인물에 집중해야 하는 장면 임에도 공간 자체가 주는 웅장함까지 표현할 수 있는 적정선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축적된 경험과 철저한 준비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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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킹 아더> 中  (ⓒ. 알엔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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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캣츠> 中


 

‘작은 공간의 디자인이 큰 공간보다는 무조건 쉽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단계 없는 발전은 없는 것이고 경험 없는 연륜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의 다름에서 오는 어려움을 제약이란 틀에 가두어 둔다면 당연히 디자이너로서 성장이 힘들겠죠.


앞으로 어떤 공연을 어떤 공간에서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색을 놓지 않고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다양한 작품과 함께 가지각색의 공연장 환경을 겪어나가는 것이 또 하나의 여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유섭님의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이거나 도전적이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이 구현된 순간의 감회가 궁금합니다.


어떤 작품을 하건 저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입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뮤지컬 <더 데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데빌>은 대립하는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인간의 절망을 그린 다소 어두운 작품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모든 창작이 그러하듯 초연부터 세 번의 재공연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졌죠.


연강홀에서 초연이 올라가던 당시 ‘X’라는 인물이 ‘X’라는 넘버와 함께 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만들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테크니컬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사실 즉흥적으로 바뀌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던 터라 배우 혹은 연출부와 어떠한 약속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죠. 당시 제가 의도했던 바는 ‘빛들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노래가 시작되고 무대 위를 채우며 움직이는 빛들 사이에서 배우가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 주변의 빛들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설마 내가 의도한 것들이 배우에게 전달이 되었나’하는 궁금함이 들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이 되고 있었죠.


음악이 고조되던 어느 순간, ‘X’ 역할을 하는 배우가 빛들을 직접 컨트롤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명과 배우의 호흡은 완벽한 합을 이루었고, 마치 실제 공연인 것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그 장면이 끝났습니다. 이후 그 장면은 공연 진행의 기준이 되었고, 많은 수정이 있었던 세 번째 공연에서도 바뀌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진 장면으로 손꼽힙니다.


이후 공연 후기들에서도 종종 언급되면서 “등장인물 넷 외에 다섯 번째 배우는 조명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자부심마저 느낄 정도였죠. 디자이너로서 생각하고 있는 바를 관객들이 공감해주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더 데빌>처럼 디자이너가 도전정신을 가지고 작품에 임할 수 있는 좋은 창작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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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더 데빌> 中  (ⓒ. 알엔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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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더 데빌> 中  (ⓒ. 알엔디웍스)

 


Q. 조명을 매개로 무대 언어를 완성하고 이를 관객과 성공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에 제가 다 벅찬걸요. 뇌리에 강렬하게 남을 만한 장면입니다. 이런 경험을 할수록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더욱 커질 것 같은데요, 조명이 무대 위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호흡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조명이 조명으로써 호흡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조명 스텝들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죠.


작품의 규모마다 다르지만, 조명 스텝만 하더라도 많은 역할분담이 되어 있습니다.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업무를 위함입니다.


먼저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어시스턴트 디자이너’ 혹은 ‘협력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공연 안정화까지 가장 긴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추게 되죠.


다음은 디자인을 시각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프로그래머’가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만큼 조명 분야의 기술력도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특히 조명 콘솔의 경우, 영상 혹은 특수효과 컨트롤까지도 맡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조명 콘솔을 아주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조명 경험이 풍부한 재원이 필요하죠. 거의 어시스턴트만큼 저와의 호흡이 필요한 포지션입니다.


그 외에도 전체 시스템 구상부터 현장의 세부 일정까지 맡아서 진행하는 ‘조명감독’ 이하 ‘셋업 테크니션’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후 공연 진행을 맡아서 해주는 ‘콘솔 오퍼레이터’와 ‘팔로우 스팟 오퍼레이터’ 등의 포지션이 있고요, 특히 오퍼레이터의 경우 큐 진행을 함에 있어서 씬(scene) 메모리 단계부터 저와 합을 맞추기 때문에 공연 진행 중에는 제가 가장 믿을 수 있어야 하는 포지션이기도 합니다.


매 공연 느끼는 바이지만 지금 함께하는 스텝들에게 이 기회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Q. 조명 분야가 이렇게 다양하게 나뉘는 줄 미처 몰랐어요. 세밀히 분류된 만큼이나 전문적인 팀워크를 자랑할 것 같습니다. 특히 늘 곁에서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더욱더 든든할 것 같아요. 유섭님은 2013년부터 ‘아트원 플러스(ART WON+)’의 대표로 회사 식구들과 함께 장비렌털사업을 겸하고 있으신데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느낀 점이나 바라게 된 점이 있나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말씀드려 볼게요.


사실 처음 장비를 보유하게 된 이유는 제가 디자인하는 작품에서 사용하고 싶은 장비의 특성이 모두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장비가 늘다 보니 오히려 장비보다는 사람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군요. 앞서 언급했듯이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 저와 호흡이 잘 맞는 조명 스텝들이 꼭 필요하거든요. 렌털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좋은 스텝들에게 안정적인 급여를 주기 시작하니, ‘계속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본격적으로 렌털 사업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회사 경영과 선임 디자인을 하고 있는 지금, 가장 뿌듯한 순간은 제가 디자인한 빛이 회사 식구들 손을 거쳐서 좋은 컨디션으로 구현될 때입니다.


공연이라는 장르가 무조건 라이브로 진행을 하다 보니 공연 중 예기치 못한 상황이 무수히 많이 발생합니다. 간단한 장비의 문제부터 안전 관련 사고까지 나열하자면 너무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조명 장비의 오작동’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어떤 팀보다 그 장비에 익숙한 우리 식구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놓고 공연 진행을 맡길 수 있는 거죠.


만약 제가 디자인만 맡아서 타 회사의 장비를 사용한다면 조명 관련 사고 발생 시 장비의 탓 혹은 빠른 수리 요청 외에는 제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보유한 장비를 사용함으로써 디자인 외의 기술적인 요소 즉 공연 기간 중 전체 조명 시스템의 유지 보수까지 저의 주된 업무가 되기 때문에 사고 발생률 자체를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게 되는 거죠.


앞으로도 계속 더 좋은 공연을 아트원 식구들과 함께 아트원 장비들로 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믿을 수 있는 장비와 팀을 보유함으로써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대표이자 조명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이뤄내고 싶거나 새로이 도전하는 방향이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회사 대표로서는 우리 아트원 식구들과 끊임없이 좋은 공연에 참여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 라이센스 공연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월드 투어를 떠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 갖춰진 회사가 된다면 더 좋겠지요.


더불어 조명 디자이너로서도 제가 참여하는 공연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작품이 되어서 순수 국내 창작으로 월드 투어를 떠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공연예술계 모든 관계자들이 힘든 시기입니다. 이 사태가 빨리 진정되어서 저를 비롯한 공연 관련 모든 스텝이 좋은 작품들에 참여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코로나 19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오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빈칸을 채워 주시겠어요?

 

“조명은 ~다.”


“조명은 천생 내 업이다.”


조명이란 일을 접한 순간부터 다른 직업은 생각도, 접해본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도 조명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한 회사의 대표로서 마무리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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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더 데빌> 中  (ⓒ. 알엔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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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여름, 그가 7m 높이에 올라 바라본 세상은 곧 그의 세상이 되었다. 이후 끊임없이 빛과 소통하여 그만의 세상을 구축하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랜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가지각색의 이야기 덕분에 마치 함께 현장을 둘러본 것 같은 대화였다.


장면마다 조명이 입혀져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수 갈래의 빛이 무대에 쏟아진다. 때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때로는 의도가 담겨 강렬하다. 그 모든 빛을 그리는 조명 디자이너에게 무대는 얼마나 광활할지. 무대를 에워싸는 자유로운 빛의 세계, 무한한 언어를 상상해본다.


 


 

 

무대 밖, 그들의 목소리를 담다

과정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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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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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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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 제가 본 작품들 대부분이 아트원이라는 회사의,  원유섭감독님의 작품이었다니~  신기하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 멋쪄요~ 앞으로도 기억에 남는 빛~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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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aom
    • 좋은 작품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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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리
    • 원유섭감독님  작품 너무 좋아요! 좋은 작품 많이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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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
    • 멋있어요!! 앞으로의 작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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