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국문과는 왜 문학을 싫어했을까? -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도서]

국문과는 문학이 싫어요.
글 입력 2020.03.3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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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국문과는 문학이 싫어요.

 

사람들은 국문과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작가 지망생쯤으로 여긴다. 적어도 문학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입학하고 나서 본 동기들도 그랬다. 입학 후 얼마간은, 문학인이라는 소속감을 느꼈고 예술을 향유하는 교양인이 된 것만 같았다. 속세에서 벗어난 이 시대 최후의 지성인 포지션쯤이랄까? 지금 보면 우습다. 돌아가서 멱살 붙잡고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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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화유산을 배운다는 흥분은 곧 하품이 되었다. 고전문학, 현대 문학, 최초의 문학과 문학사들, 뒤집어지게 재미없었다. 물론 전공을 재미로 배우는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안 그래도 재미없는 내용을 교수님은 그대로 따라 읊어 버리니, 완전히 문학에 흥미를 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가, 문학인이라는 이미지만 원한 것 같기도 하다.
 
순진했다. 아니 무지했다. 작가가 이뤄냈고 노력했던 경험들을 경시하고 닮고 싶은 이미지만 원했나 보다. 얼마나 작품을 읽고, 창작하며, 다시 고치고, 그런 것들 없이. 나는 문학에 피상적으로 노력했고 형식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뉴스에서 봤던, 전공과 맞지 않다고 응답한 70퍼센트의 대학생 중 하나가 될 줄은 몰랐지.
 
마음이 붕 떠버렸다. 더 이상 흥미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전공 강의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집중하기 싫을 때마다 딴짓했고 주변을 둘러봤다. 문학인이 있었다. 문학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에서 괜히 움츠러들었다. -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사니까 그때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 과거의 내가 저지른 안일하고 무책임한 선택이 쌓이고 쌓인 걸까?
 
그럴 때마다 억지로 문학인인 척 페르소나를 덧씌웠다. 적어도 과 동기처럼 여겨지길 원했다. 중고등학교에서 만들어진 작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그 당시에는 인생 최대 업적이 대학교 국문과 입학이었으니까. 이미지만 좇아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마저도 없었나 보다.
 
노력해서 얻은 업적을 버리기에는 엄두가 안 났다. 불편한 채로, 혹시나 다른 '문학인'과 달라 보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언제 어디에서나 검열 받는 기분을 느꼈다. 적당히 문학에 관심 있는 척, 아는척해댔다. 모른 데다가 관심도 없으면서.
 
듣고 있던 강의에서도 이도 저도 아니게 공부했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독후감은 전날 읽고 당일에 써서 제출했으며 의무적으로 출석했고 적당히 공부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종강했다. 종강 후 어이없게도. 책을 읽게 됐다. 다른 조가 발표했거나 수업에서 언급됐던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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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골랐다. 표지가 예뻐서 골랐고 읽다 보니 재밌어서 샀다. 다 읽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었고 연관검색어에 나오는 다른 작가도 읽었다. 자발적으로 마음에 드는 글귀를 기록하고, 나름대로 여운을 즐기고 독후감도 썼다. 우스웠다. 이걸 학기 중에 읽거나 열중했으면 학점이라도 더 잘 받았을 텐데.
 
그리고 생각해봤다. 난 왜 문학을 읽을까?  왜 공부하기는 싫어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잡아, 인생 처음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문학들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로 이어졌다. 도서관에서 무지막지하게 읽어냈던 문학들을 추억해봤다.
 
문득 잊고 있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교 때 읽었던 책들이 인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이루는 정체성과 인간성, 가치관이 그 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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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 내가 대학생인 날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다. 중2병과 대2병, 나름의 우울을 겪는다는 데서 동질감을 느꼈나 보다. 중학교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읽었던 문학의 의미가 뒤늦게 다른 깨달음을 줬다.
 
작가는 창작하는 데 몇 년을 쓰고 인생을 담는다. 우리는 그에 비해 굉장히 짧은 시간 작가의 인생관을 읽어낸다. 책을 읽고 글귀를 수집하거나 독후감을 쓰거나 여운을 즐긴다는 건 작가 인생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수용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집적하는 거라 생각한다. 중학생부터 읽어왔던 문학들이 나를 이뤄냈다. 그제서야 문학을 공부하는 것과 읽는 것의 차이를 어렴풋 알게 됐다.
 
뭐, 문학으로 잃어버린 정체성을 문학으로 회복했다는 뻔한 레퍼토리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의 피상적인 이미지를 수단으로 여겼던 내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거다. 나의 우주를 구축하기 위해서 읽는 거라고.
 
그렇기에 책 제목을 보자마자,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학을 좋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저자는 서평가 '로쟈'다. 새 책이 밀려들고 쓸려나가는 현실에서, 책의 바다에 빠져 부유하고 버티다가 끝끝내 그가 자신만의 항로를 찾았다. 그 사투 기록이  <책에 빠져 죽지 않기>다.  소설만을 따로 떼어 내어 만든 서평집이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다.
 
읽다 보면 저자가 문학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꼽은 책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열정 가득히 서술한다. 인물, 줄거리, 감상까지도 깔쌈하게도 써냈다. 읽다 보면 책을 영업하는 게 아니라 세상엔 멋진 문학이 가득하고 난 이미 읽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흥분에 못 이겨 신이 난 아이같이 쓴 것 같다. 게으르고 의지박약인 내게도 열정이 옮겨붙을 정도로 대단한 열정과 순수다.
 
안 읽었던 책이면 안 읽었던 대로, 읽은 책이면 더 관심이 가게. 마치 마중물처럼 내게 약간의 열정과 동기를 심어준다. 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독욕이 솟은 이유는, 분량이 길지 않아서 쉽게 쉽게 넘기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것도 구구절절 설명해서 독자들을 지루해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첨예한 해석과 때로는 독특한 시선으로 대목을 간추려 설명해 준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 독자의 흥미가 식을 정도는 안 되게, 아주 살살 건들면서 재밌게. 

 


 조이스는 마지막 순간에 프랭크와의 탈출을 포기하고 주저앉은 이블린의 모습을 짐승에 비유한다.

 

"묶인 짐승"(창비), "수동적이 되어 어찌할 바 모르는 짐승"(민음사), "미약한 한 마리 짐승"(열린책들)


88p


 

서평 안에 제목과 함께 출판사도 병기한다. 그리고 중요한 대목마다 출판사별 번역을 몇 개 써준다. 얼마나 저자가 노련한 지 알 수 있다. 그걸 서평에 담아내서 독자로든 다양한 느낌을 받게 한다. 저자의 말 그대로, 쏟아지는 책의 바다에서 나름 항로를 제시하고, 우리는 목적지에 맞춰서 따라가면 된다. 자신이 느끼기에 제일 좋은 번역을 찾아서. 굉장히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독적 보편성을 체현하는 K, 카프카의 《소송》


 

읽었던 책들에 대한 해석이 독욕을 돋우었다. 가령, 카프카의 《소송》을 보자. 주인공 K는 갑자기 소송당한 사실에 당황해하며, 논리적으로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나 K가 소송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결국 형이 집행되면서 칼에 찔려 죽는다. 읽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소설이다. 하나의 코미디 같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연출된다. 주인공 K만 정상적인 사람 같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반복되고 과장적 묘사가 끊임없이 이뤄진다. 마치 연극 같다.

 

작가가 처음과 끝을 미리 정해두고 집필했지만 미완성이라는 점이 상기한 점들과 더불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신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게 독자가 소송에 걸린 기분을 느끼라고 의도한 건가? 뚱딴지같은 생각이 들도록 난해했다. 그런 맥락으로 저자가 《소송》에 대해 쓴 서평을 발견했을 때 굉장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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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p

 

 

저자는 K를 단독적 보편성을 체현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필자는 K가 단독적으로, 보편성을 체현한다고 생각했다. 인물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상인 같은 K는 그 자체로 보편적이지만, 이상한 인물들에서 홀로 튀기도 한다. 더불어 K는 '개인'인 자신이, '인간'이라는 논거를 들어 무죄를 주장한다. 상충하는 두 개념을 제시하면서 주인공 K와 소송이라는 작품 세계를 관통한 저자가 놀랍고 대단하다.

 

일전에 필자는 작품 전체를 난해하다고 치부하면서 그대로 죽 읽어버렸다. 비현실적인 상황과 과장적인 묘사, 알 수 없는 인물들의 언행이 코미디 연극을 연상하도록 했다. 소송을 읽으면서 명확했던 것은 하나였다. 마치 소송을 당한 것 같다는 정신없음과 당혹감이었다. 저자도 서평을 그렇게 마무리하는데 공감과 동시에 굉장히 짜릿했다.

 

 


문학은 널 달래지 않을거야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상기시켜준 인상적인 서평집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독욕을 되살리기도 하는 좋은 서평집이다. 다른 의미로 문학에 빠져 죽을 뻔한 내게는 제목부터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첫 챕터에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면서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제시한다.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 그런 문학이 없다면, 우리는 더 외로울 것이다.


19p


 

문학은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문학은 그저 외로운 우리를 나서서 달래주지 않는다. 또는 달래줄 것이라고 말해주지도 않는다. 문장은 내가 느꼈던 경험에 많은 위로가 됐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전혀 위로받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문학은 외로움을 달래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거짓 없이 곧게 서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후에 내가 우연히 문학을 다시 읽고 나 스스로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한 것처럼.

 

저자는 문학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항로를 찾았고 우리에게도 알려줬다. 더불어 필자는 문학이 필요한 이유와 문학을 대하는 태도도 배웠다. 저자가 찾은 것처럼, 우리도 나름의 항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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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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