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고백] #프롤로그. 선물상자 이야기

나는 왜 글쓰기 슬럼프에 빠졌을까
글 입력 2020.03.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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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의 소심한 고백이다.

    *고백(告白):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함


지난 11월부터 활동하고 있던 모든 플랫폼에 글을 안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쓰기 시작했다. 애정을 가지고 매주 꼬박꼬박 기고하던 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도, 나무를 키우듯 하나하나 공들여 작성하던 블로그 포스팅도, 꿀을 발라놓은 것 마냥 들락날락하며 일상을 기록하던 인스타그램 게시물까지, 그 어느 공적인 글쓰기 공간에도 내 생각을 담은 글을 도저히 남길 수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글 한 편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하며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도, 첫 문단조차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두 번째 문장을 쓰고 나면 첫 번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 번째 문장을 쓰다 보면 두 번째 문장이 거슬렸다. 그렇게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었고, 일주일은 한 달이 되었으며, 한 달은 두 달이 되었다.

 

그리고 중천에 떠 있던 해가 뉘엿뉘엿 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까지 문장을 썼다 지웠다 무한반복을 하던 2월의 어느 날,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글쓰기 슬럼프’에 빠졌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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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서는 내가 글쓰기 슬럼프에 빠졌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외면했을 뿐이다. 오랜 기간 동안 사실을 외면하며 진전이 없는 흰 화면만 부여잡고 있던 대가는 혹독했다.

 

내 상황을 직면하고 슬럼프를 인정한 그 순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걱정거리가 머릿속을 채웠다. 내가 글쓰기 슬럼프에 빠졌다고? 슬럼프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때만 오는 거 아닌가? 그 누구도 내게 글을 쓰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난 단지 글쓰기가 좋아서 글을 썼을 뿐인데 왜 글쓰기 슬럼프에 빠진 거지? 글쓰기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지? 극복할 수 있는 건 맞겠지? 극복 못하면 어떡하지? 난 이제 내 마음에 드는 글은 계속 쓰지 못하는 건가? 수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났고, 글쓰기를 더 이상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공포 속에 밀어 넣었다.

 

공포 속에서 침잠하지 않기 위해 나는 발버둥 쳤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노트북 앞에 앉았고, 더 열심히 이런저런 문장들을 썼다. 더 많은 고민을 해서 그런가, 마음에 드는 문장도 여럿 썼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마음에 드는 두 문장도 둘이 이어붙이면 빛을 잃었고, 이런저런 ‘문장들’은 하나의 ‘글’을 완성할 힘을 잃은 채 흰 화면을 떠다녔다. 결국, 나는 노트북을 덮고 슬럼프에 빠진 이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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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못 써서 고생했던 몇 달의 시간이 무색하게 단 이틀 만에 그 이유를 알아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글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주요 내용은 뒷전에 밀어두고 그럴싸한 말들을 이어붙이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좋은 선물은 알찬 내용물을 담고 리본 하나로 깔끔하게 포장된 선물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글의 본질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알찬 내용이다. 화려한 포장지로 포장되어있다고 해서 내용물이 없는 상자를 좋은 선물이라고 부르지 않듯, 별다른 내용 없이 미사여구들로만 이루어진 글도 좋은 글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몇 달 동안 붙잡고 있던 내 글은 빈 선물상자였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중심 내용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글의 중심을 잡아줄 내용이 없으니 문장들이 따로 놀기 시작했고, 나는 이런저런 수식어와 접속사를 사용하여 문장들을 꾸역꾸역 이어 붙이려 노력했다. 결국 빈 선물상자는 수십 겹의 포장지와 덕지덕지 바른 접착제의 무게에 눌려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찌그러진 상자를 어떻게 고칠까 고민하던 나는 상자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한참의 망설임 끝에 상자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정성스러운 선물이 한 가득 담긴 새로운 상자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다행히 새로운 상자에 들어갈 내용물을 고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찌그러진 선물 상자와 이별한 바로 그날,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새로운 선물상자에 담길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글은 나의 소심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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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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