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을 시의 언어로 표현하다 [영화]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씨
글 입력 2020.03.2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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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을 보다가 두 번 잠들었다.


음악시간에 배웠던 동요 구조인 aa'ba처럼 진행되는 영화 전개는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b부분에서도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느냐, 사실 그것도 아니다. 공책이 찢어졌을 뿐이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나열했을 때, 이 영화는 지루하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 지루한 일상을 시의 언어로 풀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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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패터슨은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다.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씨. 운율 같은 이 말이 보여주듯, 그는 버스 기사이면서 시를 쓴다.


그가 시를 쓰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된다. 성냥갑 하나로 며칠에 걸쳐, 고민을 하고 퇴고를 하며 시를 쓰는 그의 모습은 그 어느 시인 못지 않다. 몇 번이고 곱씹는 언어 속에서 새로운 운율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시를 써내려간다.

 
영화 속에선 반복되는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쌍둥이 꿈을 꿨다는 아내의 말에 쌍둥이가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고, 직장동료의 안부를 계속 묻고,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일어나고, 아내는 기묘한 패턴을 그리고 있고, 강아지 산책을 가고, 바에서 술을 마시고, 시를 쓰고, 잠이 든다.
 
사실 저 말이면 영화의 3분의 2는 본 셈이다. 저게 전부다. 시내 버스 기사란 직업 특성상 그는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만나는 사람도, 풍경도 거의 비슷한 일상 속에서 그는 매일 매일 조금씩 다른 부분을 발견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의 차이를 발견하는 아름다움, 그게 바로 시 아닐까. 그래서 그의 일상은 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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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중 꽤 많은 이들이 시를 쓴다. 그 중 우리가 '시인'이라고 지칭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등단하지 않은 비전문가들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들을 시인으로 표현한다.


당당하게 자신의 시를 읽는 소녀, 코인빨래방에서 가사를 쓰는 무명 래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를 좋아해 그의 고향 패터슨에 온 일본인. 모두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모든 인물이 시인이고, 동시에 모든 삶의 근원은 예술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예술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약간의 풍미를 더하는 향신료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삶에서 예술이 없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닌데, 난 예술 안하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린 모두 예술을 하고 있다.
 
누군가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운율을 맞추고, 연애를 하면서 참신한 비유법을 고민하고, 인스타 피드를 맞추기 위해 색감을 짠다. 하다못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마음에 드는 책 표지를 고르는 일 마저 예술이다.

매일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정형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속에서 다른 점을 발견한다면 그것마저 시가 될 수 있다. 버스를 탔는데 매일 같이 보던 남자가 없어졌다면, 그걸 알아챈 순간이 바로 시적인 순간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수많은 시적인 순간을 경험한다. 다만 모르기에 놓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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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바다는 꽤나 거칠다. 언제 풍랑이 닥칠지 모르고 암초가 나타날지 모른다. 예술은 배를 만드는 것과 같다. 튼튼하고 내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배. 예술이란 배는 거친 일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수단이다.
 
매일이 똑같아서 지겨운 사람이라면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씨의 일상을 들여다 보자. 내 일상 속 운율을 읽어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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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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