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기를 - 총보다 강한 실

글 입력 2020.03.1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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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한국어로 번역된 책의 제목부터가 강렬하다. ‘총보다 강한 실’이라니. 당연하게도 실은 절대 총보다 강할 수 없으니 상당히 역설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시작을 알림으로써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과 옷을 생산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세계 경제와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인류는 천을 만들어낸 덕택에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사시대에 온대 지방에서는 옷감 짜는 일에 드는 시간이 도자기 굽는 일과 식량 구하는 일에 고요되는 시간을 합친 것보다 길었다.

 

실과 천을 생산하기 위한 정교한 수작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아이들이 방적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들이 버는 돈은 산업혁명 직전까지 빈곤층 가구 가계소득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다. 우리는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변동이 철이나 석탄과 관련이 있다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직물도 변화의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 p.15

 

 

이 책은 우리 삶에 가장 친숙한 실을 주제로 역사를 풀어나간다. 역사를 학교에서, 책에서, 인터넷에서 수없이 접하면서도 그 속에서 실, 직물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 점을 작가는 날카롭게 꼬집는 듯하다.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아와서인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청동기는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실은 역사를 떠올릴 때 눈길도 주지 않는 대상이었으니.

 

*


역사는 승리자들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대항했던 패배자들은 당연하게도 역사 속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지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전제가 기반이 되는 부분은 기록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 선조들이 사용했던 물건 즉 유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석기나 철, 청동기같이 단단하고 어떤 환경에서든 부패하지 않는 강한 것들만이 우리 후손들에게 더 먼저, 더 많이 발견되게 마련이다. 혹여 그 물건들이 부패된 것들보다 중요하지 않았거나 그 당시 더 적게 사용되고 만들어졌을지라도. 그러다 보니 과거 이집트에서 그토록 중요시 여겨지던 리넨은 현재에는 더 이상 많이 알려져 있지도 않고 발견되더라도 그 가치를 발하지 못한다. 미라가 신성시되는데 그 의미를 더해준 리넨이 미라를 발견한 고고학자들에게는 방해물로 여겨지는 것처럼.

 

 

 

실은 왜 총보다 강력한가?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로 일컬어지는 의식주 중 당당히 의(衣)를 차지하고 있는 직물은 그 중요성에 비해 평가 절하되고 있지만 그 무관심과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을 항시 조용하게 머물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씻을 때를 제외하고 365일 24시간 내내 옷을 입거나 걸치고 있으며 잘 때도 이불을 덮고 베개를 벤다.


게다가 직물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해 주기도 하고 인간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주기도 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고, 규정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데 큰 힘을 보태왔다. 직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겨울을 맞이할 수조차 없어 에베레스트나 남극 대륙에 발자국을 새기기도 못했을 것이고 수많은 화학 약품들을 이용하는 실험을 진행할 수 없어 우리는 지금까지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이뤄내지 못했을 테며 우주로의 진출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또한 현재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코로나19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스크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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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해내어주는 직물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나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던 쉽게 부패하는 성질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역사 속에서 실을 뽑아내 직물과 옷을 만드는 일은 주로 여성에 의해 행해졌다. 여성은 지금까지도 사회적으로 약자에 해당하지만 과거에는 그들에게 보내지는 편협한 시선이 지금보다 더 했을 것이다.


그런 대우를 받아온 여성들이 만든 직물은 과거에 사람 간의 혹은 집단 간의 물품 교환에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었고 한 가정의 생활비에 큰 몫을 해냈으며 의류 수출이 나라 전체 수출의 80퍼센트를 차지하기도 했다. 생계를 책임지던 여성들의 직물이 남성이 많은 고고학자들에게 유물로서는 그 존재를 쉬이 발하지 못해 이렇게 등한시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은 주로 이야기로 전해져 우리 곁에 작은 등불처럼 작게나마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책은 실을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내며 미라를 감싸던 리넨, 중국의 비단, 수영복, 우주복 등 다양한 사례들을 가지고 직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원료, 직물의 역할 등을 우리에게 자세히 전한다. 하지만 이 사실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당연시 여기던 소재의 중요성, 이를 제작하던 여성들의 노력 등을 함께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준다.


생각지 못했던 단어들이 직물과 관련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알 수 있어 흥미로웠지만 직기나 직물 등의 사진을 함께 보여주었다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그 존재는 작지만 큰 역할을 해오며 많은 변화를 이끌어온 실. 지금까지도 실은 우리 삶의 가장 밀접한 영역에 존재하며 인류와 함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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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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