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격렬하게 무시하고 싶다, 비웃고 싶다 [영화]

영화 <블루 재스민>과 자격지심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3.1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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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작품을 썩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와 <블루 재스민> 만큼은 정말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상위층에서 하위층으로 계층 하락을 경험하는 허영심 많은 여자 재스민 그 자체였던 케이트 블랜챗의 연기는 영화를 멱살 잡고 끌어갑니다. 미모의 여성으로 등장하는 재스민이지만 관객은 그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저 반짝이를 잔뜩 모은 까마귀 같은 모습일 뿐이죠.


<블루 재스민>은 계층 이동, 의존적 성격, 페미니즘 등 여러가지 논쟁거리가 있을 수 있는 영화지만 오늘 저는 못생긴 여동생 진저와 예쁜 언니 재스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지루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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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허영심 많아 보이는 금발 미녀 재스민이 남편 사업 몰락으로 인해 동생 진저네 집에 얹혀 사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언뜻 봐도 재스민은 사치스럽고 진저는 소박하고 털털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둘의 근본은 닮아있죠. 입양된 두 사람은 외적으로는 굉장히 다르게 생겼습니다. 칙칙한 갈색머리 진저는 작고 왜소하며 평균적인 외모를 갖고 있으나 재스민은 금발에 훤칠한 미녀입니다. 그래서 진저는 늘 예쁘고 잘 나가는 언니를 부러워했고, 재스민은 그런 진저의 부러움을 당연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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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과 우월감이 두 사람 사이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이었습니다. 재스민의 파산 전까지 진저가 그에게 갖고 있던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이었습니다. 자신과 달리 뉴요커로서 살아가는 그와 닮고 싶어 그와 비슷한 가방을 갖고 싶어 합니다. 진저는 그와 닮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지요. 두 사람은 자매이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살아 왔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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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스민이 파산한 후, 그는 진저네 집에서 살게 됩니다. 그 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해지죠. 다른 세계에 살던 언니가 자신의 집에서 살게 되자 그는 재스민과 자신이 동일한 세계로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재스민은 더 이상 부호가 아니었고 그 생활을 유지할 능력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진저는 재스민과 자스민을 동등한 선에 두고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언니는 유전자 덕분에', '잘난 남자 만나서'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허영심 많은 그를 비꼽니다.


진저는 삶의 낙차를 경험한 재스민을 연민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젠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서 우월감 비슷한 것을 느낍니다. 어쩌면 연민을 느끼는 것 자체가 우월감의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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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재스민의 입장은 어떨까요? 세계가 완전히 달랐던 재스민과 진저를 동일한 세계로 집어 넣는 사람들 혹은 사회에 재스민은 진저리 칩니다. 그는 진저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기'위해 악전고투합니다.


과거는 더 이상 그를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 기억들은 현실과 그를 더욱 떨어뜨려놓을 뿐이죠. 재스민은 '난 진저와 달라요'라는 말을 통해 그와 진저의 세계를 구분 지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를 둘러싼 세계는 진저와 동일합니다. 결국 재스민이 견디지 못했던 건 자신이 무시했던 상대와 동일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즉, 서로에 대한 자격지심이 존재하고 이는 '내가 쟤보단 잘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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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는 계속해서 언니의 치부를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며 그를 동정심의 대상으로 만들고, 재스민은 한 때 그를 무시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자존심을 채우려 합니다. 둘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사람은 모두 자격지심을 갖고 있지만 재스민의 경우는 그 수위가 높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죠.

 

재스민은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재벌급 남자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자 마치 새 인생을 선물 받은 듯 감격에 몸을 떠는 그의 모습은 과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진저 역시 남성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재스민은 남자에게 인생을 겁니다. 나를 채우는 사람이 타인이기에 대상이 사라지면 나 역시 완전히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재스민과 진저 모두 '상대를 무시하고 싶은 욕망'과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지만 재스민은 이 두 가지에 삶을 모두 쏟아 부었기 때문에, 그리고 방법을 타인에게서 찾았기 때문에 텅 빈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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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엔 텅 빈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이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며 완벽한 '그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의 삶은 오로지 타인의 것입니다. 주체가 되지 못한 삶은 아무리 주인공인 체 해도 결국 무대 밖으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진저와 재스민 역시 자신을 주인공으로 놓지 못하고 남자의 주변인으로 머뭅니다.

 

하지만 그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또 누구인지 짚어봐야 합니다. 영화에선 재스민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지만 그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불행은 스스로 자초한 셈이라는 결말은 남편 할의 문제까지 재스민에게 덮어 씌우는 꼴입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죠.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지만, 그래도 연기 하나 만큼은 정말 믿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나와 겉모습이 너무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은 한 번쯤 보시길 바랍니다. 일단, 저부터 다시 보고 와야겠네요.

 


[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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