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랑이 제 말하면 온다더니 -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도서]

글 입력 2020.02.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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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은 틴에이지 드라마 시리즈 같다. 청소년의 성장을 다루면서 아주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가볍다는 표현이 본 작품에 대한 모멸적인 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거운 것들에 눌리지 않고 세상을 바꾸겠노라 소리를 떵떵 칠 수 있는 주인공의 가벼움이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 포인트다.


제목이 책의 주제를 가열하게 반영한다. 소설의 배경은 대한제국이 멸망하지 않고 입헌군주제로 남아있는 또 다른 역사의 한국이다. 대한제국의 황제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여성 황제, 혜종이 다스리고 있다. 혜종은 멋있는 정장을 입는다.

 

작품의 주인공 호랑은 '어린 여학생'이지만 앰프가 연결되지 않은 기타를 연주하고,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왕위 계승권을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부수는 것에 관심 있는 어린 아이다. 과연  짧게 숏컷을 하고 왕의 예복을 두른 소녀가 멋없이 다리를 벌리고 주먹을 내지르는 호랑은 권위나 부조리에 대항하는 파괴적인 소녀다.


이처럼 처음에는 겁 없이 펑크 앤 락을 떵떵 소리쳤던 호랑이지만, 다양한 조력자와의 만남과 일련의 사건을 통해 '호랑의 언어'외에도 다른 언어를 함께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의 끝에서 호랑은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을 보낸다.

 

소설은 천천히 쌓아 올린 이야기를 호랑의 등장 장면으로 끌어 모은다. 호랑은 성인식에 참여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그 위에 투쟁 조끼를 입는다. 성장한 호랑은 여전히 겁이 없고 대범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언어를 함께 사용한다.

 

 

“영광된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사랑해야만 할 여러분들 앞에서 소리 높여 선언합니다!”

 

- 호랑의 성인식 선언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개혁을 외치는 이 소녀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호랑 공주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이 겁 없는 소녀가 보여주는 성장과 열정에 감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필자도 점차 이 가볍기 짝이 없는 소녀를 처음에는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뻔뻔한 어른 세상에서도 자유의지를 가진 실천적 주체로 거듭나는 한 호랑을 접하면서, 그제야 이 단순하고 가벼운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느꼈다. 어른의 세계에 들어와서도 호랑은 여전히 호랑이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무살 때 술을 맛보고 얼굴을 확 찌푸리고 '맛없는걸 왜먹냐고' 이야기하는 호랑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사실 성인식이라는 상황 자체가 중의적이다. 후일담에서 작가가 언급했듯이, '호랑 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은 호랑 공주의 성인식이기도 하지만, 호랑 공주가 주최하는 성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호랑이 성인식 자리에서 '소리 높여 선언'하는 장면은, 성인식의 주체를 바꿔버린다.

 

어린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버린 세상에 고하는 말은 어른 세상에서 무시하고 잃어왔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그 나름의 언어와 이해를 통해 꿋꿋이 소리치는 소녀는 감히 세상의 변화를 만드는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제2기 대한제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하나같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 점령 아래서 휘종이 대한제국 황실의 국외 망명자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던 것. 다른 하나는 산종이 군부 독재정권 아래서 친군부파 황실에 맞서 민주화 진영의 상징이 되었던 것. 이 두 사건은 시민들이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계기들이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사건에서 현 황제 혜종의 어머니, 산종이 보인 활약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웅적 결단이었다.


- p.40


 

책은 호랑이에 대한 다양한 격언으로 엮여있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호랑이 속담은 '호랑이 제 말하면 온다더니'이다. 소설은 오늘날 존재하는 프레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호랑 유니버스'에서 레즈비언 권력자, 펑크머리를 한 공주, 게이 청소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변주는, '히로인'의 위치에 있는 해민이었다. 보통 주인공과 함께 다니는 이성 친구는 히로인 역할을 떠맡는데, 해민은 무려 남자 친구가 있다. 호랑 유니버스에서는 기택과 같은 꾸부정한 기성세대 정도만이 여성황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뿐이다. 이런 유쾌한 변주는 감히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프레임에 작가가 던지는 유쾌한 도전장처럼 느껴졌다.


청소년 호랑의 성장을 다룬다는 점에서 본 소설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청소년 소설로 분류될 수 있겠다. 그것도 오늘날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표현된 청소년 소설이다. 시작과 끝이 유쾌하고, 소설 전체에 깔린 전제와 끝맺음도 깔끔하다. 무거운 주제를 좋아하는 필자도 책을 이상한 만족감으로 마무리했다.


개인적인 사족을 좀 더 붙이자면,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제작되기 괜찮은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호랑에게 소설의 배경이 되는 '대한제국'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제시하고, 호랑이 왕위 계승권을 이어받도록 결심하게 되는 상황에서 인물의 등장과 연결시킨다는 점이나, 가볍지만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특유의 입담이 배우의 입에서 표현되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

 


호랑은 라라와 함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옥상정원 한켠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성인식 이후에도 호랑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불호로 응답을 한 시민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어쨌든 호랑은 주 40시간 동안은 무척이나 성실한 공주였다. 법정 업무시간이 끝나면 맹수로 돌아갔지만.


- p.213



이런들 저런들 어쩌하리, 호랑이 맞이하고 주최한 성인식에 초대받은 어른들은 이 사랑스러운 소녀의 행보에 미소를 짓게 된다. 호랑의 주변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녀가 정말로 황제가 될 수 있을까? 이기택 가문과의 껄끄러운 관계는 어떻게 될까? 라라는 라라랜드 비슷한 걸 세울 수 있게 될까? 뭐가 되었건 호랑은 여전히 앰프 없이 기타를 연주하고, 펑크로 대한제국을 정복하려 하겠지.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 안전가옥 오리지널 3 -

 


지은이 : 홍지운


출판사 : 안전가옥


분야

장르소설

역사소설, 팩션


규격

128X200mm


쪽 수 : 284쪽


발행일

2020년 02월 03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90174-66-4 (03810)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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