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글 입력 2020.02.1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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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대한 이야기



2019년에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을 뽑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말할 것이다. 8월에 읽었는데, 그때부터 '이 책은 오래 기억에 남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직접 선물하기까지 했다. 혼자 간직하고 싶은 책이 있고, 나누고 싶은 책이 있다. 이 책은 후자였다. 왜 그럴까 돌이켜보니,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원하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우리'를 다루고 있다.


 


장르 소설이 무엇인가요?



'장르 소설'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다. 전문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 종이의 묶음(최근에는 전자책으로 읽고 있지만)은 모두 '책'이다. 최근에 와서야 소설, 에세이, 서평집, 시집, 그림책, 만화책 등 분류를 시작했다. 무언가를 범주화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다. 내 멋대로 범주화를 해봤다. 책을 장르로 나누고, 그 중에 또 '문학'이라는 분류를 나눌 수 있다. '문학'을 '소설'과 '시'로 나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소설'을 '순수 문학 소설'과 '장르 문학 소설'로 나눈다. '순수 문학'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학"(출처: 네이버 고려대한국어사전)이란다. 그러니까 "무협, 로맨스, SF 같은 특정 경향을 가지고 대중성을 추구하는 것"이 '장르 문학'이고 나머지는 '순수 문학'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내멋대로 이해한 것이다.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엠마(Emma)>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모두 로맨스 소설이다. 그러면 장르 문학인가?

 

누군가 명확하게 답을 준다면 감사하겠지만, 사실 읽던 책을 덮어놓고 '장르 문학이 무엇인가?'에 몰두할 정도로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많은 매체와 책의 표지, 그리고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SF 장르'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순수하게 예술을 추구하는지의 여부보다도 '리얼리즘을 추구하는지 여부'가 장르 문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더 쉬운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엠마(Emma)>와 <대도시의 사랑법>은 모두 사실적이었다.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SF 소설은 다르다. 세계를 창조하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 이미 있는 것을 빼앗거나, 새로운 능력을 준다.

 

김초엽 작가는 SF 장르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를 '사고실험'으로 뽑았다(출처: 페미회로 인터뷰). 사실주의적 문학이 할 수 없는 제한된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 등장인물들을 두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변인을 통제하며 실험 환경을 구축하는 것처럼 세상을 구축하고 그 안의 인간을 관찰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예시를 들어보면 SF장르를 구분하는 게 쉬워진다.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스타워즈', 그리고 나도 전편을 다 본 '스타트렉'은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인과 싸운다. 그런데 둘 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이 둘 때문에 SF 장르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근육질의 남자들이 나와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아픔을 딛거나, 혹은 아버지의 임무를 이어서 완수하거나 하기 위해 외계인과 싸우며 모험하고 성장하다가 우주를 정복한다. 그 사이에 몸에 딱 붙는 수트를 입어서 말랐지만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말을 재치있게 하면서 전투도 곧잘해서 순응적이게 보이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꼭 상대편에 붙잡혀서 남자 주인공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여자 동료와 사랑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모두 나의 편견이다.

 

나는 SF 장르를 잘못 알고 있었다. SF 장르를 '실험 환경 만들기'라는 특징만 있으면 성립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변인을 통제한 환경에서 실험할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그 안의 스토리는 사실 만드는 사람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훨씬 더 많은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훌륭한 영화라고 극찬할 수 밖에 없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 2016)>는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이다. 영화 속에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그 외계인과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는 여자 주인공이 나온다. 외계인이 침공(?)했으니 당연히 과학자들이 총출동했고,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이 언어학적 지식을 펼쳐서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외계 생물이 침공했을 때 꼭 싸워야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과학적 디테일이 많기 때문에 어렵게 볼 수도 있지만, 집중해서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이고, 이 디테일들이 SF 장르의 핵심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Netflix의 흥행작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리즈도 SF 장르다. 어린 아이들이 나와서 뒤집힌 세계를 모험하며 호킨스 마을과 지구를 구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엘'이라는 여자 아이가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묘사된다. 이 시리즈에 빠져서 나는 작년 여름 내내 집에 붙어 있었다. 나는 일부만 보고 SF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고, 그리고 사실 SF 장르를 아주 좋아하는 거였다!

 

김초엽 작가는 SF 장르를 아주 잘 알고 활용하고 있다. 나와 같이 장르 문학에 대해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틀을 깨고 있다. 김초엽 작가가 SF 장르 소설을 잘 활용하는 것은 과학을 전공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장르 문학이 가진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SF에서는 인물에게 해방을 줄 수 있어요.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 받던 억압을 뒤엎는 결말을 쓸 수도 있고, (...) 사실주의적인 소설에서는 현실이 개인을 압도하기 때문에, 인물이 세계를 바꾸기가 아무래도 어려워요. SF가 가진 전복적인 특성,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특성때문에 페미니즘 SF 소설을 쓰기 좋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장르에 비해 SF는 사회 구조, 세계 자체를 많이 다루는 장르여서 '구조적으로 소외된 존재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올라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10: 여성, 소수자와 함께하는 SF를 꿈꾸다, 김초엽 SF 작가 (2019)

 


이 소설 속에 남자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리고 노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회 구조를 새롭게 설정할 때 의도적으로 소외된 존재를 앞에 세운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설정과 주제가 김초엽 작가의 SF 장르의 핵심일 것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드디어 책의 내용에 대해 말한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단편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앞으로 책을 읽을 사람들도 있고 나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부분들도 있어서 몇 편으로 추려봤다. 맨 처음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다. 주인공 데이지가 살고 있는 마을은 유토피아다. 사람들에게는 결점이 있지만, 서로 이것을 신경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결점은 결점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갈등과 고난과 전쟁이 없다. 낭만적 감성과 성애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계 자궁에서 인간은 탄생한다. 이렇게 평온한 세상에서, 데이지는 의문을 품게 된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오스카가 그런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역사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이 마을에는 순례의 관습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성년식처럼 반드시 한 번은 이 유토피아를 떠나서, 증오와 배제가 가득한 지구를 여행해야 한다. 그리고 다녀오면 지구는 잊어버린다. 그런데 데이지는 일상의 균열을 마주하며 돌아오지 않는 순레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낸다. 바로 '사랑' 때문이다. 낭만과 사랑이 없이 한 자궁 안에서 같이 태어나는 이 마을에서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순례를 떠나 지구에서 다른 존재에게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알게 된다. 사랑은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유토피아로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숨겨진 진실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두 가지를 주목했다. 첫째로 든 생각은 '유토피아와 같은 이 마을에서는 왜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였다. 결점이 결점이 되지 않고, 다름을 배제하지 않는 이 아름다운 곳에 왜 사랑만 없을까. 모두가 같은 '기계 자궁'에서 태어난다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사랑의 시작은 '다름'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보고 그 차이를 가여워하거나, 동경한다. 그러면서 나와 상대의 고유함을 느낀다. 그 차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의 시작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 생각으로 넘어간다. 고통이 가득한 지구에 가면 사람들은 차별을 마주한다. 완벽한 과학적 시스템과 시술을 거쳐서 탄생한 '개조인'과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비개조인'이 있는 세상에서 '비개조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소외된다. 그런데, 지구에 순례를 떠났다가 이 '비개조인'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느껴질 것이고, 그가 받는 대우에 분노가 치밀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기 위해 맞서 싸우고 싶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순례자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는 어른은 적고, 어린이는 많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속성은 두 가지이다. 다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공감하는 마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와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서로를 하나로 여기기 시작한다. 닮은 점을 발견하며 즐거워하고, 같게 만들어간다. 그래서 상대가 받고 있는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싸운다. 그런 사랑을 순례자들은 한다. 이 사랑의 행동이 미래의 지구를 바꿀 것이다.


 


스펙트럼



이 단편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외계 생명체 탐사 연구원이었던 희진은 탐사를 서른 다섯 살에 외계로 탐사를 떠났다가 실종된다. 그리고 40년 만에 구조된다. 희진은 자신이 최초로 외계의 지성 생명체를 발견했으며 그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주장하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서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은 희진이 외계 지성 생명체와 보낸 시간을 보여준다. 도구를 사용하고, 상징언어를 사용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외계 생명체 무리에서 생활을 한다. 그들 가운데 한 개체 '루이'가 희진을 돌본다. 루이는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그러던 중, 루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루이가 온다. 이 외계 생명체들은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두 번째 루이 역시나 희진을 돌보고, 그림을 그린다. 시간이 흘러서 두 번째 루이도 죽고, 세 번째 루이가 온다. 이 루이도 그림을 그리고, 희진을 돌보다가 곧 죽는다.

 

희진은 이 루이들이 정말 같은 영혼을 가진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네 번째 루이가 오기 전, 루이들이 그린 그림을 본다. 그림에는 희진이 알 수 없는 색채 언어가 쓰여있다. 네 번째 루이가 오고, 처음 희진을 보고는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러나 이전의 루이들이 그린 그림을 본 후, 희진을 돌보기 시작한다. 루이들은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희진은 그 색채 언어를 분석하려 하지만 루이가 사용하는 색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는 범위에 있다. 다섯 번째 루이가 올 때쯤 희진은 구조되어 지구로 온다. 루이가 그린 종이 한 뭉치를 들고 와서 죽을 때까지 루이의 색채 언어를 해석한다.

 

루이들은 기록을 통해 연속된다. 다른 개체가 같은 개체가 되는 것이다. 경험과 감정,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까지도 이어진다. 그 순간들이 쌓여서 새로 온 루이는 희진과 더 깊은 상호작용을 한다. 그 증거로 시간이 지나며 루이는 희진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종과 상호 작용을 해서 더 빠르게 죽는다. 처음 읽으면서는 루이는 기록을 전수하고 받는 것을 통해 정말 온전히 같은 루이가 될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그것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 안에서 설정된 실험 환경인 것이다. 외계 생명체인 루이들은 영혼을 주고 건네 받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색채 언어는 그만큼 풍부하고 정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의 언어는 부족하다. 나의 생각, 감정, 경험을 온전히 기록하기에 부족하다. 혹은 나의 관찰력과 정성이 모자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결국에 진실은 가려지고 감정은 왜곡된다.

 

이 단편을 읽으며 마음이 아릿했다. 그 이유는 희진이 죽을 때까지 루이의 언어를 해석하려고 했다는 것 때문이다. 희진이 루이의 색채 언어를 다 해석하게 된다 해도 다른 루이들처럼 루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록하고 타인의 기록을 읽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루이를 관찰하며 연구하고,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는 희진을 루이도 기록했다. 그리고 희진이 해석한 루이의 색채 언어 기록 중 한 문장은 이렇다.


“그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생물이다.“


루이가 희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희진이 자신을 관찰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감각과 언어임에도 우리는 관찰하고, 표현하고 기록을 한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을 아릿하게 한다. 그 따스한 시선은 먼저의 루이에서 다음의 루이로 이어진다. 기록을 통해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내가 애정하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따금 상대가 너무나 깊고 넓은 사람이라,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이라 내가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옆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싶어진다. 상대에게 느끼는 호기심에는 끝이 없다. 어떤 존재에 대해 '이해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나의 기준에서 그를 받아들였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관찰과 기록을 멈추지 않는 것,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기록이 기억이 되기를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는 한국을 떠나와 로마에 살기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었을 무렵이다. 그때 나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나보겠다고 당차게 탐사선을 탔는데, 뭔가 잘못되어 끝없는 우주를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이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뒤틀린 마음에 나는 어떠한 언어도 뱉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기록을 멈추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이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그 사람의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을 나누고 싶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나는 당신을 위해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요' 라는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당신들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소개한 두 단편 외에도 다른 이야기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은 혼자가 '우리'가 되게 한다.



[박무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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