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단골 다이어리 [사람]

단골집에 대한 나만의 정의, 나만의 까멜리아
글 입력 2020.02.1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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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에 오래 머문다는 것이 참 어색하다. 나는 불교유치원부터 시작해서 미취학아동 때만 4개의 원을 거쳤다. 초등학교도 4개를 지나온 뒤에서라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는 전학없이 다닐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사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7번의 이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역마살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먹었던 떡볶이를 다시 먹어보고 싶다면 나는 최소 1박 2일의 휴가가 필요하다. 이 동네에 8년전부터 비둘기에 모이주는 할머니가 있다느니, 동네에 파란 추리닝을 입은 백수아저씨가 가로등 아래서 또 담배를 뻑 뻑 피고 있다느니 해도 나는 알 수가 없다. 개뿔. 옆집 사는 친구도 없다.

제일 오래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는 제법 친구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단골집이 생긴 편이다. 그러다가 한 번은 문득, 친구와 가는 것이 나에게도 그 가게의 고작 두번째 방문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을 더듬어 댔다. 집에 오는 길에 그동안 다른 사람을 단골이라고 데려갔던 곳들을 몇 번이나 방문했는지 되뇌어 봤다.

단골집이라고 느끼려면 몇 번이나 방문해야 할까?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경비원이, 옆집 할머니가, 세 층 아래에 살고 있는 아저씨가 내 얼굴을 기억해가는 것이 싫다. 집 앞 편의점의 알바생도, 택배 기사 분이, 헬스장의 트레이너들이, 익숙해진 집 앞 카페의 바리스타가 불편하다. 나는 원래 어느 곳에서나 이방인이어야 한다. 내 발자국은 바람에, 차소리에 으스러져야 한다.

단골집이면 으레, 편한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제 1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보통 규모가 큰 매장들이거나, 바쁘게 돌아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곳이어야 한다. 이 조건만 충족하더라도 나는 앞으로 나의 머릿속은 이미 미래의 시점으로 가서 이 곳을 단골화 시켜버린다. 거기다가 음식이나, 제품, 서비스의 질이 나쁘지 않았다? 첫 방문일지언정, 그 곳은 99.8%의 확률로 (이미) 내 단골집이다. 내 눈코입이 안보일 어두운 조명까지 곁들여진다면 100%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단골집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몇 번이나 방문해야 할까? “한 번 와봤는데, 단골집이야!”라고 말했을 때, 한 번에 수긍할 사람은 거의 없다. 적어도 10번 이상은 방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한 이 단어의 어원은 ‘정해 놓고 가는 무당집, 항상 부르는 무당’이다. 나는 5번만 가도 질릴 지경이다.

한국은 다양하다. 큰 이유가 없으면 같은 곳을 두 번 방문하는 경우는 적다. 심지어 지금 이 동네는 카페나 음식점이 즐비해 있는 곳이다. 나는 새로운 것이 익숙하다. 새로운 것이 익숙한 나에게 이 동네에서 두 번이나 방문을 한다면 단골이 될 충분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뿐이라는 것도 안다. 어쨌든 결론은 내가 두 번 방문한 곳이라면 나에게 단골집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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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
극 중 노규태의 단골집 까멜리아.

 


익숙한 것에 대한 로망 - 내 성향이 어찌됐든 간에 꿈은 꿔볼 수 있지 않은가? 익숙한 것은 불변성의 성격을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항상 같은 맛을 내고, 항상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규칙이 있다. 그 은밀한 규칙을 알고 있는 것이 익숙하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상대 역시 나를 익숙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도 손을 잡고 다니는 노부부, 70에 친구들끼리 다니는 여행,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나의 물건들: 지갑, 액세서리, 가방 그 무엇이라도. 이 이상적인 익숙함은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 분리하려고 해도 그 경계가 흐릿할 뿐만 아니라, 분리하는 순간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한다.

나는 쉽게 익숙해진다. 단골집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넓은 면적 곳곳에 많은 수를 가지고 있다. ‘몇 년 간’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너무 생소하다. 그래서 내 옆에서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수긍할 만한 정도로 연차와 횟수가 쌓여온 것들이 있다면 간혹 신기함을 느낀다. 동시에 소중하다.

나는 분명 새로운 것이 익숙하다. 연차와 익숙함이 항상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가끔 그 오래된 장독대에서 꺼낸 진득함이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어딜가나 익숙하다. 마냥 새로움에 몸서리치지 않는다. 나의 단골집들에 대해서, 내가 그들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편안함’, ‘익명성’이라는 단어들이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는 단골집일지도 모른다.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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