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마이애미를 예술로 채우는 ‘부동산 왕’

#14 호르헤 페레즈 컬렉션
글 입력 2020.01.2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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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야자수가 늘어선 미국 남부의 따뜻한 날씨를 떠올릴 수도, 곳곳에서 스페인어가 들려오는 미국 속의 작은 라틴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마이애미는 매 겨울마다 ‘아트 바젤 마이애미’라는 대형 아트 페어가 열리는 곳이다. 또 마굴리스 컬렉션, 루벨 패밀리 컬렉션, 배스 뮤지엄 등 ‘슈퍼 컬렉터’들의 사립 미술관이 유난히 많은 도시로 그려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미술관 중 히스패닉 계열의 이름을 가진 미술관은 사실 흔치 않다. 마이애미는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도 특히나 라틴 아메리카 외의 지역 중 스페인어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자, 쿠바인이 도시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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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érez Art Museum Miami, PAMM. photo from Wikipedia "Pérez Art Museum Miami"

 


비단 이 도시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서 최초로 지어진 스페인식 이름의 미술관이 마이애미에 있다. 바로 페레즈 미술관(Pérez Art Museum Miami, PAMM)이다. 약칭인 '팜(PAMM)'이 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자수(palm tree)를 연상시키는 이 미술관은 원래 마이애미 미술관(Miami Art Museum)이었다가 2013년 호르헤 페레즈(Jorge M. Pérez, 1949~)가 자신의 컬렉션 중 2천만 달러 상당의 핵심작을 수백 점 기증한 데 이어, 추가로 2천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 & 드 뫼롱이 도시의 경관과 잘 어우러지면서도 유연한 전시 방식이 가능한 디자인으로 설계하여 매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모으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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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érez Art Museum Miami, PAMM. photo from PAMM Official Website

 

 

 

마이애미의 도시 계획자, 호르헤 페레즈


 

자연스럽게 호르헤 페레즈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만들고, 큰 돈을 미술관에 기부할 수 있었을까. 사실 그는 아트 컬렉터보다 마이애미의 ‘부동산 왕(“Miami Condo King”)’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1970-80년대부터 상대적으로 불모지였던 마이애미에 저소득층을 위한 저가주택 분양과 임대사업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기반을 탄탄히 다진 후 고급 아파트 건설을 통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부동산 개발업자로만 바라보는 것은 부족하다. 그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세우면서 동시에 그들이 이 도시에서 살아야 할 이유, 즉 문화적·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 도시 계획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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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Jorge M. Perez. Photo by Gesi Schilling. photo from Artsy, "Inside the Home of Jorge Pérez, the Miami Collector Championing Latin American Art" by Monica Uszerowicz

 


그의 히스패닉계 이름은 쿠바인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며,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미국에 온 이민자라는 그의 출신을 드러낸다. 페레즈는 비즈니스맨이었던 아버지에게서 사업가적 기질을 물려받아 서른 살의 나이에 마이애미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고, 40년 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구어냈다. 또 한편으로는, 책과 미술관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성향도 함께 물려받아 돈을 벌게 되면서 자연스레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라틴과 동시대 미술이 이끄는 컬렉션


 

그의 컬렉션에 관한 여러 인터뷰 기사나 특집 기사를 찾아보면서 ‘두 번’ 놀라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화장실, 계단, 심지어는 옷장 안까지 그의 저택 곳곳에 빼곡한 작품들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모든 작품들을 그가 세세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대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도 그의 두 저택과 창고를 가득 채운 수천 점의 작품,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에 꾸준한 관심을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자신이 가진 작품들에 대해 늘 스스럼없이, 열정적으로 설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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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riz González, “Los papagayos (The Parrots),” 1987, collection of Pérez Art Museum Miami, gift of Jorge M. Pérez. © Beatriz González Archive

 


그가 처음으로 구입한 작품은 대학 시절 기숙사 친구들과 포커 게임으로 딴 돈으로 산 만 레이(Man Ray)의 석판화였다고 한다. 아직도 자신의 오피스의 걸려 있어, 평생에 걸친 컬렉팅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는 작품이다. 그 이후 페레즈의 열정에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로서 그 문화와 역사를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사명감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중남미 미술 컬렉션을 시작하여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와 같은 라틴 미술가들의 작품만을 집중적으로 컬렉션에 포함시켰다.

 

2013년 25년간 모아온 중남미 미술 컬렉션을 대거 기증하면서 ‘라틴 미술의 보고’라 불릴 만한 페레즈 미술관을 만들고 나자, 그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사명감을 덜어내고 좀 더 자유롭게 그의 취향과 열정이 이끄는 동시대 미술 컬렉팅을 시작했다.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 곧 그 작가와의 생생한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그는 지금도 알렉스 카츠, 파블로 애츄가리, 세쿤디노 에르난데스와 같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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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Jorge M. Perez. Photo by Gesi Schilling. photo from Artsy, "Inside the Home of Jorge Pérez, the Miami Collector Championing Latin American Art" by Monica Uszerowicz

 

 

 

또 한 번 예술 창고를 개방하다



페레즈는 자신이 구입한 작품들을 그저 창고에 쌓아두는 대신, 늘 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매년 한 번씩 저택의 작품들을 교체한다고 한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지난 12월에는 마이애미 알라파타(Allapattah) 지역에 또 다른 개인 미술관을 열었다. 미술관에 대한 특별한 비전이나 사명감에서보다는, 그저 창고에 쌓여가는 작품들을 더 잘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며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 미술관 역시 마이애미에 새로운 예술적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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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ERIOR VIEW OF EL ESPACIO 23. PHOTO BY NICK GARCIA PHOTOGRAPHY. photo from Cultured magazine online, "EL ESPACIO 23 BRINGS MORE CHANGE TO MIAMI” by Jordan Blumetti

 

 

엘 에스파시오 23(El Espacio 23)’라는 이름은 이 미술관의 위치(23rd Street)에서 그대로 따온 것으로, 이 지역은 마이애미에서도 대표적인 도매업, 산업 지구다. 노동 계급 주민들이 많이 사는 이 동네에 새로운 미술관이 들어오면서 생길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페레즈는 그럼에도 대중에게 컬렉션을 공개할 수 있는 미술관의 존재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또 이 공간에는 마이애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아티스트, 큐레이터들이 살며 작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레지던시도 생길 예정이다. 그들은 이곳에 머물면서 마이애미 지역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율리아 슈토셰크가 미디어아트를 중점으로 컬렉팅했던 것처럼, 페레즈 역시 거대한 자본력으로 라틴 미술이라는 하나의 테마에 집중한 케이스다. 워낙 다양한 흐름이 동시에 발생하며 교차하고 있는 현대미술 신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컬렉팅하는 슈퍼 컬렉터들이 등장하는 건 참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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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GE M PÉREZ WITH KARA WALKER’S SECURING A MOTHERLAND SHOULD HAVE BEEN SUFFICIENT, 2016. photo from Sotheby's Magazine online, "Making Miami's Art Scene with Collector Jorge M Pérez" by James Reginato

 


페레즈는 지난 40년간 부동산 사업으로 마이애미 곳곳을 누비면서, 동시에 그곳에 예술의 활기를 채워 넣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자신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반영한 작품들을 수십 년간 차곡차곡 모아 마이애미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방문하는 사람들과 공유해왔다. 마이애미의 따스한 햇살이 간절한 요즘, 그곳을 떠올리는 이들의 머릿속에 호르헤 페레즈라는 이름이 떠오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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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o Nava, Los pecadores, 2019. Courtesy of the artist.

페레즈는 2019년부터 미국 내셔널영아트재단에 후원하여 뛰어난 예술적 행보를 보이는 신진작가와 중진작가에게 호르헤 M. 페레즈 상(Jorge M. Pérez Award)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수상자인 마테오 나바의 작품.

 

 

 

참고자료

VOGUE KOREA "Collector's Life - 1 Jorge Perez

서울아트가이드 칼럼 '세계의 슈퍼컬렉터' - (19)학자 꿈꾸던 쿠바계 부동산왕(王) 페레즈, 라틴미술 진흥의 리더가 되다

Artsy - Inside the Home of Jorge Pérez, the Miami Collector Championing Latin American Art

The Art Newspaper - Collector's eye: Jorge Pérez

WLRN - Billionaire Jorge Pérez Opens ‘El Espacio 23’ Art Museum in Allapattah During Miami Art Week

artnet news - Mega-Collector Jorge Pérez Has So Much Art He Just Had to Open a Second Museum in Miami to Store It All 

ARTFORUM - 2020 JORGE M. PÉREZ AWARD WINNERS ANNOU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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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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