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단순하지 않은 것을 단순하게 표현해내는 - 툴루즈 로트렉 展

들여다볼수록 신기한 인물, 기억에 남을 사람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글 입력 2020.01.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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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가기 전 프리뷰를 적으며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찾아보며 나는 궁금해졌었다. 그의 작품만큼이나,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내 머리를 채웠다. 멀찍이 떨어져 사실을 나열한 그의 인생 연대기를 보면, 그의 삶은 기구하고, 기구하면서 동시에 화려하고 또 신기하게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전시에서 접하게 된 그의 단상은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의 빈틈을 전시의 작품들과 설명이 채웠다. 하나의 인물을 주제로 하는 전시의 매력이다. 작품을 보는 것만큼이나 한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툴루즈 로트렉은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던 벨에포크 시대의 귀족 출신 프랑스 화가이다. 당시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모이는 사교장이었던 '물랑루즈'는 로트렉이 활동했던 장소였다. 물랑루즈 하면 로트렉, 로트렉 하면 물랑루즈가 떠오를 정도로 그의 인생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소다. 청년기의 대부분을 물랑루즈에서 보냈다고 할 만큼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물랑루즈와 연관이 깊다.


당시의 가장 대표적인 사교장에서 활동하는 인기 있는 화가의 삶을 살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사람. 인맥도 넓었다. 많은 이들과 만나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망설임이 없었던 듯하다. 끊임없이 그려내고 작업하고 그렸다. 특정 화풍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그게 작품에서도 시종일관 느껴진다. 일종의 스타성도 있었다. 그가 그림을 그려준 사람은 파리에서 스타가 되었으며, 로트렉이 작업한 포스터를 길에서 모으는 유행도 있었을 정도였다.


모자랄 것 없는 삶을 산 것 같지만, 그는 어렸을 적부터 유전병으로 인해 몸이 허약했으며, 어린 시절 사고를 당해 성장이 멈춰버렸다. 그가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한 몸 때문에 아버지의 외면을 받았으며, 그에 대한 결핍의 정서도 작품에서 간간히 보인다. 과도한 유흥과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건강이 나빠져 정신병원에 입원되기도 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도 증세가 악화돼 결국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툴루즈 로트렉 사진.jpg

툴루즈 로트렉의 사진



그의 36년 인생을 요약한 몇 가지 문장만으로도 그의 삶이 얼마나 강렬하고 극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극적인 삶이 그에 대한 인상의 전부는 아니었다. 전시에서 접한 그의 인생사와 작품에서 한결같이 특유의 자유분방한 에너지 같은 게 느껴졌다. '개성'이라 해야 하나. 모든 작품에 작가가 담기는 건 당연한지만, 당시 미술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당대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듯하다. 그의 그림에 많은 사랑을 보냈던걸 보면.

 

*


그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솔직하다. 그가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는 이렇게 그려야 한다 저렇게 그려야 한다"가 아닌, 정말 자신이 보는 것을 그린다.


모든 요소들을 직접 그려내야 하는 그림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을 포착하는 '사진'은 작가가 보는 것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 작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무엇에 집중하는지에 따라 작품은 같은걸 담아내도 달라진다. 하물며 그림은 어떻겠는가. 그림은 당연히 작가가 더 많이 개입한다. 그리고 로트렉의 그림은 유독 자신이 더 많이 담겨있고, 솔직했다.


인상 깊었던 건 순수 창작품 말고도 의뢰를 받고 그린 그림마저 그의 개성이 짙게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주제와 목적이 이미 정해진 작업임에도 '그'가 작품에 그대로 담겼다. 그가 어떤 것을 담아내려 했고, 무엇을 유심히 봤는지 느껴진다. 간결한 느낌인 그의 화풍도 한몫을 한 듯하다.


그의 그림은 섬세한 음영 표현과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양감과 질감을 표현해낸 '사진 같은 그림'이 아닌, 소위 말하는 요새 느낌의 색감을 강조하고 선과 면을 이용한 '간결한 그림'이 많다.


단순한 그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무엇을 담고 무엇을 덜어야 할지를 온전히 작가의 판단하에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으려 하는 것이 적을수록 그것을 '잘' 담아내야 한다. 색과 선이 줄은 대신 하나의 선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해야 하고, 엄선된 색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는 담는 것과 덜어내는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의뢰받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바로 그 점이 목적이 분명한 의뢰 작업에서도 작가의 개성이 짙게 드러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jpg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jpg


 

위 그림들만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아주 단순한 그림임에도 꽉 찬 느낌이 들고, 그림 속 인물이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진다. 배경과 어우러지면서도 누가 주인공인지 확실하게 보인다. 단순히 작품의 가장 많은 면적을 가지고 있고 가운데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선으로만 표현한 얼굴에는 이 인물의 표정이나 성격이 섬세하게 담겨있다. 로트렉이 사람을 볼 때 어떤 점을 유심하게 보는지 알 수 있다.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그림.


개인적으로 그의 화풍이 정말 맘에 들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고 또 창작을 하려는 - 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그의 작품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작품의 외면적인 것을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을 담아내는 수단으로써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이 느껴졌고, 특히 살아가며 매 순간 느끼는 무수히 많은 감정과 인상을 간결한 요소들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 그림이 단순해질수록 오히려 담아낼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는 (물론 쉽지 않지만) 나에겐 더욱 그랬다.


작품의 외관이 단순해 보이는 게 그 작품에 담긴 것이 단순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단순하지 않은 것을 단순함으로 표현해내면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이렇다.


약간은 비꼬듯이 가벼운 위트를 넣어 사람들의 표정을 그려내면서도 사람을 간파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고, 마냥 문란하고 화려한 유흥의 삶을 살았던 듯 하지만 화류계 여성들의 애환을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 담아낸 당시 흔치 않던 사람이기도 하다. 들여다볼수록 신기한 인물.


기억에 남을 사람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회는 2020년 5월 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다. 그의 인상 깊은 작품과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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