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장 적막한 태풍 속으로 - 티타임/밀사의 찻잔 [공연]

글 입력 2020.01.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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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 22일까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티타임/밀사의 찻잔> 공연이 진행된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은 극단 지금아카이브의 연출가 김진아가 전직 성노동 운동가 '말사'라는 인물을 통해 보게 된 절망의 세계를 탐험하는 내용의 공연이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은 밀사의 시점으로 바라본 사회를 관객이 함께 느끼고 따라갈 수 있도록 제작된 공연으로, 특수한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간접 경험을 선물하려 한다. 공연은 밀사가 바라보았을 사회를 "시든 해가 뜨는 땅"이라는 판타지 세계관 속에 펼쳐 놓는다. '성노동'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놓고, 강한 주장이나 비판보다,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밀사는 누구인가?


밀사는 전직 성노동 운동 활동자이자, 비여성(에이젠더) 페미니스트이며, 우울증 들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으로,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글을 쓰는 창작가이기도 하다.  공동저서로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철수와 영희 출판, 2015)가 있으며, 중 단편 소설 열 편을 발표했다. 그는 성노동자를 비롯한 약자들의 문제에 시선을 주려 계속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에는 여전히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문제가 있다. 문제를 표면으로 꺼낼 수 있기까지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이나 성소수자 문제 역시 지금처럼 공론화될 수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했다. 꺼내어지지 않는다고 작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 깊은 이야기를 소리 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밀사는 무척 용기 있는 사람이기에 이토록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던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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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지금아카이브

 
 
성산업 문제는 여전히 어렵다. 이렇다 할 입장을 가지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고, 어디까지 공감하고 어디까지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 늘 헷갈린다. 다시 생각하면 또 생각이 바뀌곤 한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나이기도 하기만, 때로는 여성 집단을 대변해야 하고, 그러다가도 소수자를 옹호하는 마음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한 걸음 물러설 때가 많았다. 나의 단어 선택 한 마디에 따라서, 성노동자들이, 혹은 피해자들이, 아니면 여성들이, 상처를 받고 무시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산업을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과 성노동자를 '노동자'로서 인정하고, 그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 여전히 끝없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성노동자를 '여성', '노동자', '여성 노동자', 그리고 '피해자' 중 어떤 위치에 놓고 바라봐야 할지조차 막막하다. 관련 논쟁을 접하면, 열띤 토론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떤 입장이든, 근거는 누군가의 생존권, 그리고 인권을 이야기했다. 그 누군가가 달랐고, 보호의 방법이 달랐기에 결론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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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지금아카이브

 

하지만, 성산업은 성에 대한 거론을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성매매 행위에 대한 일차적 혐오로 인해 확산되지 못하고 수면 아래에 머물러 있다. 실제 사회 내에서 성산업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은 희미하기만 하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은 사회적 외면 속 성산업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찻잔 속의 태풍"에 비유한다. 사실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논쟁은 더 큰 고립만을 불러일으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어쩌면 나는 용기가 없고, 무식한 사람이라서 물러서기만 했던 걸 수도 있다. 찻잔 내의 태풍에 차마 끼어 들이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선 사람, 그게 나였던 것 같다. 함부로 말할까 조용히 있던 것은, 비겁한 대처였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을 통해 밀사의 삶을 느끼고, 그 발자취를 함께하며 배우고 싶다.

그녀는 찻잔 안에, 그것도 찻잔 속 태풍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 찻잔 속의 태풍을 찻잔 밖으로 꺼내길 바라는 사람일 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같은 찻잔 밖의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을 통한 사유는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밀사의 찻잔, 그곳은 어떤 곳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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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지금아카이브

 
 
<티타임/밀사의 찻잔>은 관객이 각자 토퍼매트리스에 누워서 관람하는 독특한 형태의 연극이다. 객석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기존의 연극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고자 한다. 가상의 판타지 세계관을 여행하는 방식의 연극인 만큼 누워서 관람한다는 요소가 어떤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역시 연극의 관람 포인트다.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러 있는 성산업 문제의 한계에 균열을 내고자 제작된 연극인 만큼, 특색있는 연출 역시 연극의 내용과 함께 반드시 논해져야 할 요소임이 분명하다.
 
연극은 밀사가 바라보았을 세상을 담았고, 그가 성노동 운동 활동자였음을 보았을 때, 관객들은 "밀사의 찻잔"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볼 수 있다.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만 생각하던 것들을 직접 마주하며, 간접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찻잔 속에 떠 있는 듯 누워, 밀사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를 따라 걷는 것은, 다신 없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시야의 방해나 자세 유지를 위한 긴장을 해야 하는 좌석의 한계 역시 <티타임/밀사의 찻잔>에서는 느낄 일이 없으며, 완전히 편한 상태에서 보는 연극인 만큼, 극에만 집중할 수 있다. 판타지 세계관의 특성상, 관객이 극을 잘 따라오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한데, 신체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은 이를 도울 것이다. 러닝타임 중엔 온전히 연극만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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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지금아카이브

 
 
특정 사회 문제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과의 관련은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경험만큼 큰 힘을 가진 것이 간접 경험이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은 우리가 들여다보기 쉽지 않던 성노동에 관한 문제들을, 부담 없는 간접 경험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간접 경험 역시 직접 경험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만들고, 상대에게 공감하게 하며, 오랜 기억을 남긴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에서의 간접 경험은 충분히 찻잔 속의 태풍을 인지하고, 그것이 찻잔 내에서만 끝나지 않도록 마주하는 데에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밀사는 찻잔 내 태풍을 온몸으로 느꼈던 사람이고, 그의 찻잔 속으로 소환될 관객들은 조금이나마 그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티타임/밀사의 찻잔>을 통해 찻잔 속의 논쟁이 결코 해결방안이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밀사가, 그리고 연출가가 꿈꾸던 바로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다양한 우리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인권 감수성이 필요하다. 찻잔 속의 태풍을 마주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해결할 수 있고, 그래야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하지 않은 문제는 잔 속에 여전히 고여 있을 뿐이다. 그렇게 숨 막히는 적막 속에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멀어져 결국 더 곪아버릴 수 있다.

언제까지나 찻잔 속 태풍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세상에 남 일이 하나둘 늘어나면, 그만큼 나의 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외면하고 싶은 문제들을 전부 찻잔 안에 가둬만 두다가는 언젠가는 전부 엎어지고 말 것이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으니까, 찻잔 속 태풍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이야기해보자. 용기 있는 사람, 밀사와 그 이야기를 찾아 걸음을 맞춰보자.
 


 

티타임/밀사의 찻잔
 
 
2020.1.17(금) - 1.22(수)
 
장소
삼일로창고극장

각색/연출
김진아

공연시간
17일(수)-21일(화)
오후 3시, 8시
22일(수)
오후 2시, 7시
20일(월) 쉼
 
관람등급
만 16세 이상 관람가
 
소요시간
100분
 
입장권
전석 2만원

 

 


 

 

지금 아카이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만남을

연극의 형태로 기획합니다.

그 만남이 일으킨 현상들을 기록합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이야기보다, ‘지금’ 하고 지나가야 할 이야기들을 찾고 나누고자 한다. 다양한 감상과 첨예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지금아카이브” 라는 공론장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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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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