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천경자 위작 논쟁의 서막 - "이 그림은 내 그림이 아닙니다." [사람]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글 입력 2020.01.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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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천경자의 미인도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미술관 측에서 한 장당 만 원에 준비한 포스터는 큰 인기를 얻으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는 인기 굿즈가 되었고, 현대그룹 사옥 지하 사우나탕의 인테리어용으로 벽에도 걸리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이를 본 후배 지인이 당사자에게 소식을 전하였다. “그림 잘 보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작가가 당황해하며 자신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 국내 미술계 최대의 위작 논쟁의 시작이었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절대 머릿결을 새카맣게 개칠하듯 그리지 않아요. 머리위의 꽃이나 어깨 위의 나비 모양도 내 것과는 달라요. 작품 사인과 연도 표시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난 작품 연도를 한자로 적는데, 이 그림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적혀 있어요.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 보는 일은 없습니다.”
- 작가의 절필 선언
논란이 된 작품 <미인도>
야심 차게 준비한 전시가 엎어질 위기에 처한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통 경로(전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를 제시하며 이를 반박하였으며,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의 감정을 근거로 진품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후 미술계가 시끄러워진 것은 물론이다. 개중에는 작가를 향한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비난도 다수 섞어있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작가는 절필을 선언한 후 자신의 주요 작품 수십 점을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뒤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머나먼 타국에서 16년 이후 91세로 생을 마감하였다.“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 끝이 보이지 않는 법적 공방작가가 자필로 남긴 자필 공증 확인서
2016년 뒤늦게라도 진실을 밝히겠다고 마음먹은 유족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사자 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고소하며 법적 공방을 시작한 것.
이후 검찰은 X선, 원적외선, DNA 분석, 묘사법, 색채 사용법 등 다양한 감정 기법을 동원하여 진품이라는 결과를 내렸으며, 이에 질세라 유족은 프랑스 뤼미에르 감정팀으로부터 진품일 확률이 0.000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과 보고서를 가져온다.
그리고 현재도 이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에 있다.
미인도의 모티브가 됐을거라고추측하는 <장미의 여인>
위작범과 김재규, 그리고 다양한 TV 스페셜
그 가운데 권춘식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본인이 미인도의 위조범이다, 지인의 부탁을 받아 미인도를 위작하였다는 진술을 하여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하지만 2016년 3월, 진술을 취소하였고, 이내 한 달 만에 번복을 다시 번복하며 진위 여부를 더욱 미궁으로 빠트렸으며, 해당 사건은 단순 위작 사건이 아닌 신군부가 김재규에게 논란을 뒤집어 씌우기 위해 천경자의 이름을 이용하여 공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다.
SBS스페셜, 김어준의 파파이스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해당 논란을 특집으로 다루게 되면서 천경자 미인도 사건은 미술계 내에서의 이야기를 벗어나 점점 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기술의 발달 덕에 마음만 먹으면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기 쉬운 세상이다. 그리고 그 반대 역시 너무나도 쉽다. 예술작품은 뜻깊은 메세지를 전달하며, 많은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사고를 유도하는 데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양쪽 주장이 물러날 곳 없이 팽팽하며, 작가는 고인이 되어 진위 여부를 밝히기 더욱 어려워진 지금, 이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한 그림을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판단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그림의 진짜 작가가 누구일지, 위작 논란을 보며 속으로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막막한 기분이 든다. 이래저래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사건이다.[전수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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