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러블 트래블: 내 이름을 불러줘 [여행]

글 입력 2020.01.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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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답이 없는 사람이다. 길치에 조심성 없고 사람 잘 믿으니, 여행하기에 정말 최악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런 주제에 사람을 또 좋아하고 말은 많으니, 여행 내내 문제가 끊이는 날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반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처음과 달리 1년이 넘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고, 지금도 호시탐탐 다시 나갈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고, 또 무엇이 그럼에도 여행을 지속하게 만드는 걸까. 말도 많고 탈도많은 내 여행에 대해서, 거기서 깨달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트러블 트래블: 내 이름을 불러줘

 

 

여행을 다니다보면  일상에선 당연했던 것들을 기대하지 못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그 '당연했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름이었다. 여행 중의 나는, 내 이름조차 제대로 불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내 이름은 희정이다. 영어로 쓰면  Hee jeong, Hee jung 대충 이런식으로 쓰게 되는데 한국에선 흔하고도 쉬운 이 이름이 외국인들에겐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의 수난시대를 직감한 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였다. 열차에서 만난 사람이랑 통성명을 하는데, 어떻게해도 내 이름을 알아듣거나 쓰지를 못하는거다. 결국 타협 본 게 Хизор였다. 한국 발음으로 적으면 대충 히조르, 쯤 되려나. '어' 발음이나 '응' 발음이 익숙치 않은 언어권이 많다보니 그 이후로도 내 이름 수난시대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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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에서 맞은편에 앉아있던 러시아 친구 이고르와 교환한 이름.열차에 같이 탔던 언니는 이걸 보며 '술저르'라는 러시아용 이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름을 말하면 두 세번 되묻는 것은 물론, 카우치서핑(문화교류를 목적으로 현지인 집에 머무르는 프로그램) 프로필에 적힌 이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만나자마자 '그래서 네 이름은 어떻게 읽는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나중엔 '내 이름 발음이 내가 네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정보일 수도 있다'고 프로필에 적어놨을 정도다. 사실 발음 자체는 따라하려고 하면 따라는 할 수 있긴한데, 워낙 그들에겐 어렵고 이국적이다보니 이름을 외우고 부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다. 몇몇은 대놓고 '영어식 이름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국가별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러시아에선 앞서 말했듯이 '히조르'(Хизор) 가 됐고, 터키에선 Hican(히잔) 혹은 Hicran(히즈란)이 됐다. 터키의 어떤 가족은, Hicran은 너무 슬픈 의미를 가진 이름이라 너랑 안 어울린다며 아예 내 본래 이름과는 스펠링 하나도 겹치지 않는Neşe(네쉐, 터키어로 기쁨이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나와 2주를 함께 머물렀던 친구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Hijong(히종)'이라며 내게 메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과정들을 거치다가 마지막 한 반년간은 누군가가 내 인스타아이디를 보고 '너 아이디가 이름보다 쉽다'며 장난친 것을 계기로 나 자신을 Hihi(히히)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나를 Hihi라고 소개하면 열에 아홉은 웃으면서 자신의 나라에서 '히히'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고, 난 너네 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건 웃음소리라며 웃으면서 맞받아쳤다. 쉽고, 모두가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이름. 히히라는 이름은 그 조건에 정말 잘 부합했고 심지어 내 이름이랑도 비슷해서 여행 중에 쓰기 정말 좋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 반년간은 나는 그냥 Hihi였다. 처음 소개할 때 본래 이름을 약간 언급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기억하는 이는 드물었다. 내가 마주하고, 대화하는 모두는 나를 히히라고 불렀고 히히라고 기억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이름 집착쟁이인 내가 왜 이 상황에 아무런 불만을 느끼지 않을까. 한국은 한자문화권이고, 한자문화권 나라들은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심지어는 이 이름이 사주나 운세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한자문화권 사람들에게 '이름'이 가진 의미는 어마무시한 건데, 나는 그 중에서도 이름에 더욱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 만화, 문학 등 컨텐츠 중에서도 유독 '이름'에 중점을 둔 작품들을 사랑해왔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나츠메 우인장, 드라마 피노키오, 아이유의 시간의 바깥, 김춘수 꽃 등) 심지어 학보사 기자 시절에는 '이름'이란 주제만 가지고 지면 2개 분량의 기사를 기획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나 이름과 정체성을 잇기를 좋아하는 내가 여행 도중엔 그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 대한 내 집착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름을 쓰는 것이 크게 불편하진 않았었다. 여행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모든 것에 회의감이 들 때는 '내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주는 이 없는 곳에서 나는 뭐하고있나'하는 자조를 하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잠깐일 뿐이었고, 대체로는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이름에 이렇게까지나 집착하는 내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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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로 살았을 때의 기록물들. 심지어 게임판에 이름을 적을 때 조차도 'Hihi'였다.

 


그 답을 얻은 것은 어느 터키 가족에게서 '네쉐'라고 불렸을 때였다. 러시아에서의 히조르나, 대부분 터키 전반에서의 히즈란은 단지 상대가 내 이름을 기억하기 쉽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로컬라이징(?)이었고, 큰 의미가 없었다면 '네쉐'는 그 가족들이 직접 내게 부여해준 이름이었다. 심지어는 내 이름이랑은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어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름에 빠르게 적응했었다. 굳이 나를 부르지 않더라도 서로 "네쉐는 밥 먹었어?" "응 먹었지."라고 대화하고 있는 걸 듣고있자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히즈란은 너무 애수에 찬 이름이라 밝고 통통 튀는 나랑은 안 어울린다는 단순한 이유였지만, 그래서 그들이 손수 내게 붙여준 이름이 '기쁨'이란 의미의 네쉐였다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을 정말 애정을 담아서 내가 그들의 기쁨인양 불러준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다. 결국 내게 중요한 것은 '내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히히라고 불릴때도 마찬가지였다. '히히'라고 나를 불렀던 사람들은 그 이름이 잘 웃는 나와 잘 어울린다고 말해줬다. 웃는 얼굴이 예쁜 히히, 라며 말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도 자연스레 그 이름을 사랑하게 됐고 어느 순간에는 나 스스로가 '희정'보다 '히히'라고 느껴지기도 했었다. '여행하는 나'의 정체성을 따로 분리할 수 있다면 그게 '히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나를 '희정'이라고 불러주려는 이들의 노력이 고마웠다. 비록 정말 내 이름보다는 '희저ㅏㅇ!' 에 가까운 이름이었지만, 노력해준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특히나 '히히'라고 부르다가도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서는 '희정'이라 불러주려 노력하려는 이들의 경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비록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 굴림이 너무 좋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단 하나였다. 결국 내가 이름에 집착했던 이유는 그들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기억할 때 나를 구체화할 수 있는 언어가 이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희정'이라는, 내 이름이 중요했다기보다는. 상대들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기억하는지가 중요했던 거였다. 뭐라고 불리는 가보다, 그들이 나를 부르고 있고, 나를 아껴주고있고, 그 애정어린 말 끝에 내가 있음을 안다는 게 중요했다. 네쉐라 불리거나 히히라고 불릴때는 나를 기쁨으로, 웃음으로 기억해준다는 그 마음이 너무 예뻤고 어떻게든 내 이름을 불러주려는 이에게서는 어떻게서든 본래의 나를 인식하고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예뻤다.


이걸 경험하고 나니 김춘수의 '꽃'이 조금 달리보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전에는 여기서의 '이름'을 정말로 개개인이 부여받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이 '이름'이, 의미, 혹은 언어로 읽힌다. 어떤 언어든 그것이 네게 '나'라는 의미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 언어를 들었을 떄 네가 나를 상기시킬 수 있다면. 그 언어가 네게 '나'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 이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줄 요량으로 나를 불러준다면, 그 어떤 언어로도 그들에게 가서 꽃이 되어줄 자신이 있다. 더더욱 많은 언어권, 문화권, 나라에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언어로 다양한 의미가 되고싶다.

 

히즈란이든, 네쉐든, 히히든, 희정이든. 내 이름을 불러주는 당신께 나는 기꺼이 피어주겠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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