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9년의 출판이슈를 마무리한다, 출판저널 514호 [도서]

뻔한 너의 삶을, 뻔하지 않을 너로 채울 책읽기
글 입력 2019.12.31 15:0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still-life-851328_960_720.jpg

 
 
시험 준비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몇 달 쉴 무렵 굉장히 새로운 지식에 목말랐다. 원래 성격 자체가 가만히 있는 것을 잘 하지 못하고, 뭔가에 집중을 하다가도 금방 싫증이 나서 다른 놀이를 찾아나서기 때문일까.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오로지 시험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지식에 약간의 반감을 느꼈고, 그 때문인지 시험이 끝난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매순간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겠냐며, 잠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바라보고, 누리고 있는 요즘. 카페에서 패션 잡지, 뷰티 잡지를 찾아 읽는다거나, 서점을 가서 알지 못했던 지식을 찾아보는 등 치열하게 공부하던 내 모습에서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지만 확실히 뭔가 부족한 느낌을 계속 느꼈다. 아무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그 글을 읽는 순간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면 어떤 행동을 한 데에서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부족한 느낌은 계속 있었고, 그 갈증이 다시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채워진다.
 
 

출판저널 514호 평면표지.jpg



이번 출판저널에서는 2019년의 출판계 TOP뉴스를 다루고, 출판인재 양성을 위해 해야 할 일, 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방향성 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다루지만, 이번 글에서도 역시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 위주로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선 출판저널을 펼치면, 2019년 최고의 도서관으로 선정된 ‘리이우와르던’ 도서관이 나온다. 네덜란드에 있는 이 도서관은 특이한 점이 과거에 죄수들을 가두던 감옥이었다는 것이다. 감옥의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에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리이우와르던 도서관의 사례에서 네덜란드가 범죄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우리나라와의 생각 차이를 엿볼 수 있다.

해외통신+유럽+리이우와르던도서관+블록하위스포르트 마당 (1).jpg

 

해외통신+유럽+리이우와르던도서관중앙계단.jpg

 
 
네덜란드는 범죄자를 보고, 범죄 그 자체만을 해결하려는 눈속임을 하지 않는다. 국민이 시위를 하면 그때서야 불만을 조금 잠재우기위해 몇 년형을 때리는 '어떤 나라'와는 다르다. 네덜란드는 범죄가 일어나면 사후 범죄율을 감소시키기 위한 대안을 가장 큰 목적을 갖고 있으며, 교도소 유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있다. 범죄자를 처벌의 대상보다는 갱생의 대상으로 여겨, 그들의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 범죄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폭력을 저지른 자에겐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교육하고, 마약 범죄자에겐 중독을 치료하는 상담을 해준다.
 
 

classroom-2093743_960_720.jpg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청소년법 때문에 다소 완화된 처벌을 받거나, 또는 봉사시간 몇시간 정도밖에 받지 않는다. 또는 증거가 없다며 피해자만 전학을 가는 상황이 일어난다. 그게 어쩌다 이슈가 되면, 시민들은 청소년에게도 성인과 같은 처벌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범죄를 일으키는 모든 사람들을 더 높은 징역형만 주다보면 어느순간 교도소가 부족해지는 날이 올 것이고, 계속해서 우리의 세금으로 범죄자를 먹여 살려야 한다. 그들은 갱생의 의지없이 감옥에서 허송세월만 보내게 된다. 감옥에서 나오면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받아주는 곳이 없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다. 사회에서 격리된 채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자기 자신조차 언제 죽을지 모를 삶을 이어갈 것이다.
 
 

defense-attorney-840062_960_720.jpg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개인을 바라봐주기보다는 그 순간을 실수인 척 넘어가고 형을 어떻게라도 덜 받으려하고, 순간적으로 비난을 면하기 위해 변명을 한다. 국가와 학교에서 원인 제거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부모와 가정 등 개인에게 원인을 돌리고, 비판하고 비난하며 마녀사냥을 한다. 그토록 유사한 범죄, 폭력, 강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분명 국가 전체에서 다뤄야 할 문제가 분명한데도 사회적 분위기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인성,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간다.
 
 

R1280x0.jpg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건물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가 지속되었다. 불필요한 건물을 철거할 계획도 세웠지만, 시민들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허물고 싶지 않아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게 된다. 결국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계획에 착수하게 되고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P.12


 

결국 네덜란드의 전략은 통했다. 교도소 건물 한 채가 필요없을 정도로 범죄율이 하락해, 그들의 교도소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389b083ec1b36303cb237e78d1a654a2.jpg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경복궁을 파괴하고 조선총독부라는 거대한 건물을 지었다. 1910년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식민지배를 위해, 기존 경복궁과 3.5도 각도를 기울여 세웠는데 그것은 풍수지리설을 믿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흐트리기 위한 것이다. 위의 사진만 봐도 기괴하다. 광화문 뒤에 딱 붙어 자리잡은 조선총독부라니.
 
 

00500929_20180808.jpg

<23년 전 오늘, 서울 한복판 조선총독부에서 고문실이 나왔다>, 한겨레

 

 

독립 후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로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와 유산을 전시하는 곳으로 쓰였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하던 1993년도에 청와대 1500명의 면접조사결과 찬성의 비율이 반대보다 높아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기로 결정되었다.

 

삐뚤어진 역사를 바로 잡고,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건물을 부쉈다고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건물을 부수려 할 때 일본은 그 건물 자체를 가져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원래 경복궁 자리에서 옮겨 다른 자리에 설치할 수 있지 않을까? 꼭 그 건물이 민족이 자존심을 깎아내릴 일만 있을까.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가했던 강제적인 점령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었다는 증거가 되어 후대에 전해질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쉬웠다.

 

 

00500931_20180808.jpg

<23년 전 오늘, 서울 한복판 조선총독부에서 고문실이 나왔다>, 한겨레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선택을 극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의 선택이 35년간의 아픈 식민지 생활을 털어버리기 위해, 일본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는 없으니 그저 눈앞에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허물어 국민에게 순간적인 위안을 주는  정치적인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전 건축가가 어떤 의도를 담아 설계를 하고 작품을 완성한 토대 위에, 새 건축가가 그 시대에 맞는 건물로 자신만의 색깔을 연주하듯 새롭게 덧입히는 것이 바로 건축에서 리모델링이라고 제시한다. 과거에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했던 감옥은 진작에 바뀌어버린 사회의 요구에 따라 용도 변경을 위한 꿈틀임을 하게 된다. 재건축물은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건축가들의 들리지 않는 대화를 토대로 이루어진 예술품이다.”


P. 13


 

ruins-652741_960_720.jpg

 

 

조선총독부 건물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의 건물을 너무나 쉽게 허물고 새로운 것을 짓는다. 젠트리피케이션(낙후 지역이 활성화되며 원래 거주자들이 살던 곳을 잃는 현상)이 이렇게도 심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전국의 관광지를 돌아다녀도 서울의 도심과 비슷한 가게가 즐비한 곳이 이렇게 또 있을까? 마냥 과거의 것이라고 부수고 없애지만 말고, 그 속의 가치를 이제는 바라봐 줄 때가 아닐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네덜란드 리이우와르던 교도소를 어떻게 할 지 결정을 해야 했다면, 그냥 쓸모가 없어진 교도소를 허물고 수익을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아파트나 오피스, 상업 건물을 높이 지었을 것이다.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그 건물의 가치와 역사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선 말이다.

 

 

2019연중특별기획+서점의미래+우분투북스+외관.JPG

 

 

다음으로 인상깊게 읽은 ‘우분투북스’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보통 책방, 서점이라고 하면 책을 파는 공간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분투북스는 분명한 컨셉이 있다.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아프리카 단어 ‘우분투’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어떤 책으로 서점을 꾸며야 할 지가 명확해졌다고 한다. 음식, 건강, 자연을 테마로 한 책으로 이루어진 책방인데, 방문한 손님이 자연에 온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인테리어도 그린과 브라운 컬러로 이루어진 자연의 색을 빌려왔다.

 

 

2019연중특별기획+서점의미래+이용주 우분투북스 대표.JPG

 


우분투북스 대표 이용주 씨는 순간적인 수익을 내는 것보다는 3년은 하자, 라는 생각으로 책방을 냈다. 무엇을 해야 3년의 시간을 유효하게 보낼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실천했다고 한다. 그는 우분투북스에서 손님과 대화할 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을 하는 장소를 만들어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험을 담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베스트셀러 한 권을 뽑아서 신청한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보다는 개개인의 취향에 맞춤화된 정기구독 프로그램을 통해, 30명에게 매달 책과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단순히 종이 묶음으로서 책을 파는 시대에서 공간을 통해 다양한 교류와 경험을 원하는 시대로 시대의 흐름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 필요한 물건은 집에서 클릭만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시대, 책방은 단지 필요한 책을 파는 곳을 넘어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과 커뮤니티로서 의 역할을 요구받는 시대다. 좋은 책방은 좋은 책이 많이 구비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좋은 독자, 좋은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미국의 한 작가의 말이 공감가는 이유다.”


P. 45


 

우분투북스 이야기와 함께 생각해볼만한 것은, 이은호 씨의 칼럼 <서점의 변신과 공간의 재창조>다. 더 이상 서점이 책 파는 공간이 아니게 된 지금, 서점을 방문하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이 시초는 포르투갈의 ‘렐루 서점’이다. 서점에 방문 시 입장료를 받고, 책을 구매하면 입장료를 차감해서 금액을 받는다.

 

 

IMG_3066.jpg

흑석동 청맥살롱

 

 

흑석동에도 ‘청맥살롱’이라는 북카페가 있는데, 앉아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책을 구매하면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시인, 문학인을 초청해 강연 행사도 하는 등 일반적인 서점, 북카페와 차별화된 컨셉을 갖고 있어 누구나 한번쯤 방문해보게 되는 곳이다.

 

기본적으로 서점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되, 점점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 되어간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카페도 앉아서 쉬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능을 갖지만, 내 삶을 전시할 수 있게 인테리어를 예쁘게 꾸며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도록 하여 많은 사람들을 유도하는 곳도 있다. 마사지를 받기 위해 갔다가 음료랑 카페를 무료서비스로 제공해서 즐기고 돌아오기도 한다.

 

많은 곳들이 복합문화공간이 되어간다.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은 채, 또 그 특수한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장소를 만들기 위해 너무 순간적인 이익 창출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당장의 빚을 갚을만한 수단으로서, 생업을 위한 수단으로서 공간을 대하기 때문에, 또는 주변에 성공적인 사례를 참고해서 새로운 곳을 만들기보다는 똑같은 것을 만들어 성공하려고 하기 때문에 비슷한 복합문화공간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이동하는 수고를 거쳐서 특정한 공간을 방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좌담 단체2.jpg

 

 

출판저널 잡지에서 인상깊게 읽을 부분, 편집자 기획노트가 있는데 신간 중에서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을 사냥할 수 있는 코너다. 그리고 때로는 글 자체보다, 그 글을 읽은 사람의 감상평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기도 한다.

 

 

1a39dd4be6.jpg

 


김병진 씨의 <러시아 그림노트>에 대한 편집자 허주영 미니멈 대표의 말이 인상깊어서 한번 가져와봤다. 러시아 그림노트는 작가 김병진 씨가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엮어서 낸 책이다. 편집자 허주영 씨의 주변 사람들은 왜 그가 이 책을 내려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익성이 좋을 것 같지가 않아서다. 허주영 씨가 “이 그림을 계속 보고 싶어서”, 라고 답했더니 그냥 인쇄해서 보라고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정말 순수하게 웃음이 나왔다.

 


“독자 스스로도 몰랐던 독자의 숨겨진 니즈를 샅샅이 찾아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주거나, 너무도 거대해서 개인의 시야로는 파악조차 힘든 거시적 담론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해설과 조언을 해주는 책. (…) 실용적인 정보나 거창한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새로워서 독특해서 매력적이어서 아름다워서 그래서 그 새로운 경험으로 보는 이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책은 참으로 멋지다.”
 
 
 
나는 사실 실용적인 도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예를 들면 달, 꽃, 별,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 미스터션샤인) 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이 글을 읽으며 한번 그저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아름다운 것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글이었다. 자기말고도 누군가 이 그림을 보고 싶어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러시아 그림노트>를 내기로 했다는 편집자의 글을 읽으며, 앞으로 가는 서점마다 <러시아 그림노트>를 찾아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00502640_20191003.jpg

<이까짓거!>, 박현주
 
 
두 번째로 소개할 도서는 박현주 씨의 <이까짓 거!>, 비가 오는 날, 엄마가 우산을 갖고 데리러오지 않는 아이를 보며 쓴 글이다. 비에 맞을까봐 무서워 가만있는데, 준호라는 아이가 빗속으로 뛰어든다. “넌 안 가냐?”라고 외치는 준호의 말에 “이까짓 거!”라고 말하고 함께 빗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유아를 위한 그림책이고, 유치한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보며 궁금한 점이 생겼다. 첫번째는 준호의 용기다. 분명 주인공과 같은 나이의 아이일텐데 어디서 빗속으로 뛰어들 용기가 생긴 것일까. 주변을 의식하고, 비에 젖을까봐 겁먹은 주인공과 거침없이 빗속으로 뛰어든 준호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린 아이가 그 정도의 용기를 가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면 아이들의 성격 차이는 어릴때부터 타고난 것도 영향이 조금 있는 걸까, 하는 생각들. 개인적으로 작가가 준호의 이야기도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1017_003.jpg

<이까짓거!>, 박현주

 

 
둘째로, 주인공이 준호를 보고 빗속으로 뛰어들기까지 몇 페이지 내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경험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게는 어쩌면 인생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년기에서 성장하며, 내가 되고 싶었던 자화상을 찾게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에는 내 감정을 표현하기 쑥스러워 굉장히 퉁명스럽고, 사람들을 밀어냈고,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던 내 모습과, 그러면서도 솔직해지고 귀여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의 은밀했던 소망이 조금씩 내가 되었던 그 긴 시간이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 횡단보도를 건너며 쓰레기를 주워서 버릴 수 있게 되었고, 술에 취해 이상한 정류장에 내리려고 하는 낯선 사람에게 여기가 아니라고 오지랖을 부릴 수도 있게 되었다.
 
 

maxresdefault.jpg

<이까짓거!>, 박현주
 

셋째, 나에게 있어 준호는 누구인가.

성격이란 게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해서, 어린시절의 내가 숨어있던 통영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에 가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소를 옮겨서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지려고,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 되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했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에 대학로에서 단편소설집 공연을 봤는데, 그때 인터미션으로 공연이 15분간 휴식이 주어졌다. 인터미션의 뜻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던 옆자리 아저씨가 이상한 눈치를 보여서 말해줄까 하다가 약간 옆자리 사람이라 민망하기도 하고, 조금은 귀찮아서 말을 하지 않았는데, 후반부에 보니 옆자리 아저씨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느꼈는데, 눈치를 채고도 용기가 부족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L.jpg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도널드 커시, 오기 오거스 저자의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이다. 이 책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삶의 방향을 쾌적하게 만든 약이 꼭 그런 목적을 위해서 만든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70대 페미니스트 두 명은 불명예를 안은 생물학자를 골라 경구피임약을 만든다는 꿈을 실현했다. 이상주의자인 가톨릭교도 부인과 의사는 경구피임약의 첫 임상시험을 하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법과 의학 윤리를 피해 푸에르토리코에서 임상시험을 했고, 뜻하지 않게 여성들이 알아서 자사의 약을 인가받지 않은 피임 목적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회사를 설득해 그 약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P. 172, <시행착오로 이루어진 신약개발의 역사>, 최정미 세종서적 편집부

 

 
아주 조금 놀랐는데, 나는 감기약이라고 하면 감기의 증상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약, 두통약이라고 하면 두통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약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결과물은 꼭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한치도 의심해보지 못했던 것도 놀랍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정말 완전한 사실이 아님을, 세상에 대한 경각심을 한 층 더 키울 수 있을만한 사실을 알게 되는 책이다.
 
 

131.jpg

 
 
<출판저널>은 사실 출판업계의 무거운 현실을 다루고 있고, 안그래도 책을 읽기 힘겨워하는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 출판업계의 불황, 어떻게 하면 책을 읽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주제로 다루는 잡지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스마트미디어에 너무 익숙한 세대는 손으로 직접 뭔가를 넘겨야겠다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고, 관심있는 분야가 알고리즘을 통해 끝없이 재생되는 유튜브 등을 보면서 편리하게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대체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
 
 

desk-1148994_960_720.jpg

 
 
어쩌면 그래서 출판, 책이란 새로운 정보를 끝없이 제공받는 우리 세대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개개인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피상적인 지식과 그로인해 느끼는 순간적인 감각들은 오래 가지 않는다. 새로운 뉴스가 다가오면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지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순간 과거의 감정이 되어버린다.
 
나는 뭐랄까. 출판저널에 나오는 것처럼 ‘독서가, 글쓰기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한다’ 같은 말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한다’라고 생각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쉽게 생각하지 않을 자신에 대해서 좀 더 비일상적인 부분까지 생각하게 된다. 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사람이라는 것, 상황이 오기 전부터 내가 선택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특별히 위대하다기보다는 삶을 바라보는데에 좀 더 많은 수단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