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리한 시대에 비상구 하나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연극]

글 입력 2019.12.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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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후 세 문장 요약>


1. 시대와 주변 인물이 변해도 

알란은 알란이었다.

 

2. 오가는 서사 속 과거는 세계사, 

현재는 캐릭터에 집중하여 보면 좋다.

 

3. '캐릭터 저글링'은 연극의 한계를 극복했고, 

'젠더 프리 캐스팅'은 연극을 보게 한 이유다.


 

 

 

캐릭터 저글링과 젠더 프리 캐스팅


 

9.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노동교화소 수감, 역사에 없는 아인슈타인과 친구가 되다.jpg



최근 콘텐츠를 소비하기 전에 먼저 드는 불편함이 있다.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으면 도통 내용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젠더 프리 캐스팅'을 통해 여성 배우의 역할 부족이라는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한다. 어머니 또는 남성의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러있던 여성의 역할을 동등 선상에 놓는 동시에 보다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배우들은 알란을 소년, 청년, 중년, 장년으로 나누어 가며 역할을 맡는다. 그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던 것은 전달하려는 것이 시대를 지나쳐 가는 한 사람의 일대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성별, 나이, 인종을 초월해 캐스팅하려는 연극 팀의 노력이 돋보였고, 배우들은 훌륭하게 연기를 해낸다.


 

7. 사라진 백세노인을 찾기위해 아론손반장과 경관이 등장하다.jpg



구조와 기능은 상호 보완적이다. 구조의 탁월함에 따라 기능을 잘 발휘하기도, 기능에 맞게 구조가 변모하기도 한다. 창작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보여준 기법은 매우 영리했다. ‘캐릭터 저글링’이라는 기법을 통해 연극이 가진 제한성의 문제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제한적인 공간과 인원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와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배우들은 이름표를 바꾸어가며 연기한다. 연기는 능숙했고, 몰입도 잘 됐다. 자유자재로 여러 가지의 감정선과 목소리 행동을 표현해냈다. 배우들은 관객과 소통하는 해설자로, 알란으로, 심지어는 사물과 동물로 변신하며 액티브한 연기를 해나갔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들이 긴 러닝타임의 지루함을 덜어줬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강아지의 표현인데 꼭 그 장면을 보길 추천한다. 종종 등장하는 사물과 동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현실 자각과 연기를 해야 하는 책임감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재미 포인트다.



 

신선한 연출



2. 공연을 시작합니다!.jpg

 


새로운 공간에 접어드는 느낌, 압도하는 느낌을 가진 세트장이다. 팬지꽃을 밟는 것으로 극을 시작하는 도입부는 매우 흥미로웠다. 현실과 극의 경계가 불분명한 느낌이 드는 오묘한 세트장처럼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배우들은 현실과 극을 넘나들며 관객과의 소통을 지속한다.


관객은 어디가 연극인지 현실인지 판단할 새도 없이 연극에 빠져든다. 수많은 상자 속에 자신이 맡은 역할이 적힌 이름표가 들어있다. 배우들은 자신의 차례에 자연스럽게 상자를 열고 닫으며 역할을 해낸다. 상자들은 히말라야 산맥이 되었다가, 구닐라의 집이 되었다가, 연회장이 되면서 눈 앞의 공간을 전 세계로 확장시킨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대 가운데 상자를 놓고 일렬로 앉아, 앞에서 뒤로 작은 소품을 전달하며 버스 창 밖의 광경을 표현할 때 ‘산이 지나가고, 소가 지나간다’를 느낄 수 있게 한 장면이다. 그 외에도 해설자가 ‘이제부터 우아한 말투로 말한다‘라고 하면 배우가 ‘우아’라고 말하며 전혀 우아하지 않은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연기를 해나가는 등 소소한 재미가 초반부터 극의 끝자락까지 계속된다.

 

배우 김아영 님의 볼트와 아론손 반장 연기는 개인적으로 원 픽이었다. 80~90년대의 첩보물을 재현하듯 탁월하게 연기하는 배우에 반했다. 모든 배우들이 에너제틱했으며, 국가 별로 나오는 전통 춤은 뮤지컬을 보는 느낌을 줬다. 볼거리가 많은 만큼 연극을 준비한 분들과 배우들의 수많은 노력이 눈 앞에 쉴 새 없이 펼쳐진다.




극의 스토리에 대한 고민



9. 유리소비치 포프프와 친구가 되다.jpg

 


우린 지금 무슨 시대를 지나고 있을까.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사람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사회는 상당히 변화에 민감하다. 정의하기 어려운 낯선 행태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파악과 관리를 손쉽게 한다. 하지만 ‘이름 붙이기’는 변화의 중심에 있으며 판단을 당하는 세대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90년대생들이 그 일반화된 시각으로 한 큐에 정의 내려지기 때문이다.


AI시대가 대두되고, 언론은 두 발 느리게 변화를 예고하지만 실제 체감하는 변화란 키오스크와 에어팟 정도이다.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의 변화의 물살에 뒤를 돌아보며 우리는 냉전시대, 산업혁명 이후 시대 등의 이름을 붙이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가는 이 시대도 가장 큰 변혁의 시대로 후대에 기억될지 모른다. 우리는 단지 일상을 살고 있을 뿐이지 말인데.


극의 주인공인 알란도 단지 그 시대를 살아왔을 뿐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삶 자체로 기념비적인 삶이 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를 선택적으로 조명한다는 것은 의미를 선사하기 위함이다. 태어나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알란은 '일어날 일은 일어날 일'이라는 다소 수동적인 가르침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념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것을 보면 구태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위험에 빠지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잘 살아남자는 소시민적인 메시지도 들어있는 듯하다. 알란의 소련과 미국에 대한 협력은 정치적 중립을 추구하여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로 우아하게 그려진다.



14. 러시아에서 유리와 그의 아내를 만나다.jpg

 


원작의 작가는 사람들이 흑백보다 중간색의 세상으로 보길 바란다고 말한다. 세계사를 훑는 소설을 만들고 싶었는데, 재밌었으면 좋겠고, 비판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대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듯 알란은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그 대상이 러시아의 유리소비치 포포프일지라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하지 않음을 우리는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혹은 비판의 지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일어날 비판에 대한 완충 장치처럼 알란이 러시아와 미국 모두에게 쓰레기 정보를 주는 사건을 통해 타협을 본다. 현명하게 평화를 주선하는 것이다. 알란의 최선이었다.


알란은 언제나 알란이었다. 어릴 때부터 폭탄을 좋아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어머님의 말에 따라 평정심을 유지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시대에 대한 비판보다는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고 맡은 일이나 사람 자체에만 신경을 쏟는 모습을 보였다. 나이가 많이 든 후 스웨덴에 돌아와 고양이 몰로토프와 관계를 쌓아가며 처음으로 깊은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몰로토프를 죽인 여우에 대한 복수로 폭탄을 터뜨려 본의 아니게 양로원에 가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알란은 규율과 규칙으로 안락함을 보장하는 양로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다시 알란은 불안정한 세계를 향해 자신의 뜻을 따라 나아간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알란의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수많은 청춘을 분노에 빠뜨린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생존의 감각이 아닌 상대적 가치에서 부조리와 불합리를 느끼는 세대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외침은 한 편으론 공허하다. 이제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충분히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서 교통사고라든지, 갑작스러운 해고라든지 등등 무력함을 느끼는 일들에 대해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인생 모토가 되긴 어렵지 않나 싶다. 어쩌면 거대하게 다가오는 변화에 우리가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말일 수도 있다. 강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야-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응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보드카 한 잔과 유머로 그러한 변화를 대처하기에 변화는 너무나도 크다.


하지만 이런 비판적 시선에 대해 원작 작가는 의문을 종식시킨다. 요나스 요나손의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부분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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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s Jonasson


Q 강조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A “세상 사람들이 유머와 침착함(self distance)을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정치가들이 그렇다. 국제 분쟁을 봐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 역사적으로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한 해법은 없다. 당신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웃하기 어려운 국가(북한)과 함께 지내야 하지 않나. 그럴수록 유머, 거리감을 갖고 자신을 돌아보는 침착함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소설에서 쓴 것처럼 보드카를 몇 병이고 마시고 서로 마음을 트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보드카를 마셔야 할 사람들이 지구상에 많다.”


Q 유쾌한 작품인데, 그런 의미는 뜻밖이다.

A “원래 의도는 인류 최악의 세기였던 20세기의 문제점들을 소설로 부각시키는 거였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나. 그 모든 전쟁과 재난을 건드리되 유머를 가미해 희망도 얘기하고 싶었다. 그 여행을 위해 가이드가 필요했는데, 20세기 전체를 다루려다보니 나이가 아주 많아야 했다.”


Q 소설의 교훈과 재미, 어느 게 더 중요한가.

A “둘 다다. 시간 때우기 위해 내 책을 읽는다 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내 소설을 읽고 인류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잠시라도 생각한다면 나는 더 행복할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현실의 창문에 갇힌 사람들…내 소설에서 탈출구 찾은 듯”

 

 

 

 

우리가 얻어 갈 의미



18. 다시 창문을 넘기로 하다!.jpg



알란의 존재 이유는 세계사를 조명하기 위함이다.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이 한 번쯤 세계사의 문제점들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또한 유머를 통해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다음을 향해 갈 희망을 주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연극은 원작의 의도를 충실히 살린다.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되 사람들에게 창문을 넘어설 용기에 대한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시대적인 변화에 대한 연출도 프로젝터를 통해 유연하게 다룬다. 알란의 여정을 따라 우리는 세계사의 중대한 문제들을 짧은 시간 안에 간략하게 훑고 지나간다. 알란은 판단하지 않는다. 관찰자의 시점으로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대의 문제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보다 개별적이고 비물질적인 가치들과 연관된다. 갱단 네버에버가 쫓는 돈, 핫도그 장수 베니의 사회적으로 증명 가치가 없는 지식들을 추구하며 겪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혼란, 구닐라의 서커스단에서 구출한 코끼리를 소유물이 아닌 동등한 개체로 대하는 자연보호와 권리에 관한 문제 등이 있다. 그들을 통합하는 거대한 하나의 담론이 중심에 있지 않고 저마다의 가치와 문제가 존재한다.


알란의 옛날이야기를 따라 과거로 돌아가다 보면, 말 한마디 잘못으로 수용소에 갇히고, 폭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시대를 맞이한다. 거기에 비하면 현대의 캐릭터들이 겪는 문제는 때로 사사로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알란은 과거에 그랬듯 현대에서도 중립을 유지한다. 그 중립은 존중으로 해석된다. 알란은 그들이 겪는 문제를 존중하고, 함께 고민도 하며 곁에 있어준다. 해결과 무관하게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행위 자체는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다.


알란이 추구한 유일한 가치란 몰로토프와 같이 자신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존재들과의 교류라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의 가치를 좇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란은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며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계속 나아간다. 무엇이 있을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지금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알란처럼 우리의 끝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눈 앞에 놓인 창문을 넘는 것이다.

 


TIP> 필자는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본 후, 본 연극을 관람했는데, 곧 연극을 관람하실 관객 분들께 꼭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간단히 보고 가길 추천한다. 연극 역시 과거와 현재의 교차로 나열 방식을 따르는데, 방대한 양을 연극으로만 접하기엔 방향성을 잃기 쉽고, 다소 지루한 감이 생길 수 있다. 또한 한정적인 시간으로 인해 배우들이 해설자로서 시대적 배경을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다. 만약 기존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대략적인 스토리를 훑고 연극을 관람한다면, 더욱 풍부한 관람이 될 것이다.


 

 

황혜림.jpg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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