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연결되는 글쓰기-'여성의 글쓰기' 리뷰

'여성의 글쓰기' 리뷰
글 입력 2019.12.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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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이라는 소개


이름이나 나이, 학교, 직장같이 객관적인 정보를 제외하고 나를 소개해야 할 때, 나는 나 자신을 글쓰는 사람이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처음 그렇게 소개하던 날에는 남모르게 설레고 뿌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렇게 소개해도 되는 건지 겸연쩍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는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종종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나를 글쓰는 사람으로 소개해도 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 때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바뀐다.

그런 고민은 머릿말에서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을 글쓰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게 영 머쓱하다고 한 부분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조차 자신을 글쓰는 사람이라 말하는 게 부끄럽다니, 글쓰기란 어떤 행위일까.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의 경계는 무엇인가. 학교 과제나 회사 보고서처럼 타인의 의지로 '써야만 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자기 의지대로 여러 편의 글을 써 본 사람은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것이다. 단순히 문장을 써내려간다고 해서, 글쓰기로 수입이 생긴다고 해서 글쓰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성의 글쓰기>는 어떻게 글을 쓸지를 넘어서, 글쓰기란 무엇인며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 보았을 수많은 '글쓰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자아를 찾아가는 글쓰기'-'진실을 찾는 글쓰기'-'결핍과 충족의 글쓰기'-'사회, 연대, 글쓰기' 총 네 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글쓰기를 탐구하고 자신의 글쓰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아 찾기에서 시작해 사회와 만나는 글쓰기


첫 번째 장에서는 '자아를 찾아가는 글쓰기'라는 소제목만큼 글을 왜, 어떻게 쓰는지 말한다. 기억과 기록, 그리고 그런 기억과 기록으로 채워지는 삶에 대한 저자의 사색이 담겼다.

두 번째 장에서는 저자가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잘 녹아들어 있다. 읽다 보면 '기레기'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언론계의 수많은 병폐가 '기레기' 한 두명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와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장은 아마 이 책의 제목인 <여성의 글쓰기>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일 것이다. 결혼 전까지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살던 저자가 결혼,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며 경험한 소외를 말한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업이었던 글쓰기가 생존의 절실한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라고 한다. 가장 많이 공감하며 읽은 부분이었다. 느낄 수는 있지만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밀도 높은 문장으로 표현해낸 데 감탄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이다.
 

남성에게 언어는 절실한 문제가 아니다. 남성의 질서를 토대로 굴러가는 이 사회의 언어는 이미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신의 생각, 논리, 문제의식에 대해 일일이 표현할 필요도 남성으로서의 삶에 의문을 가질 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질서를 모색할 이유도 별반 없다. 이에 반해 여성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 남성의 언어로 가득한 이 사회에서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언어를 찾아 헤매는 숙명에 놓인다. 그 언어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지워진 존재로서 경험의 기록이며, 자신을 배제하는 체제에 던지는 질문이다.

- 147쪽

 
네 번째 장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저자가 더 나아가 사회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사회적 글쓰기가 세상에 꼭 필요하긴 하지만 그 필요성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현실을 말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위 '팔리는 글'이 아닌 사회적 글쓰기는 어떻게 살아남고 지속될 수 있을지 가볍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완전한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런 고민을 당신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위안을 준다.

 
 
나의 글쓰기(2016~)


10여년 동안 글을 써온 저자의 글쓰기 연대기를 읽으며 자연스레 나의 글쓰기는 어땠나 돌아보게 되었다. 속이 답답한 날에는 일기를 쓰고, 국어를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꼽던 나는 입시를 거치고 스무 살이 넘으면서 글쓰기와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러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2016년이다. 무언가를 써야한다는 생각이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계속 쌓여가던 중, 페미니즘과 만났다. 만났다라는 말보다는 '맞닥뜨렸다'라는 표현이 더 맞다.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정신이 없었다. 한번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아는 게 너무 없었기에 여성주의 작품을 읽고 보며 감상 위주의 글을 많이 썼다. 갈팡질팡하며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회의감이 드는 때도 많았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매끄러운 논리로 풀어놓는 글들 가운데서 내가 쓰는 글은 너무 불완전하고 미미하게 느껴졌다.
 

'나'라는 세상이 바뀌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 변화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한계를 알 수 없지 않은가.
 
- 218쪽

 
그래서 나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많은 글을 써온 저자의 이 말이 위안이 되었다. 글이라는 게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해도 그 글을 쓰는 사람 한 명은 변화시킨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변화가 절대 작지 않다는 얘기는 안 쓰는 것보단 무엇이든 쓰기를 잘했다고 다독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글쓰기로 연결된다

 

우리 각자의 고유한 언어가 세상 밖으로 꺼내져 나올 때, 아주 미세한 진동이 일어난다. 내가 삼킨 울음, 내가 견딘 고통, 내가 바란 희망들이 미미하나마 세상의 공기 안으로 스며든다.(중략) 나의 사뿟한 손짓은 다른 세계 저 너머의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가 된다. 우리의 글쓰기는 결국 더 나은 삶을 향해 간다.

- 12쪽
 
 
머리말의 이 구절은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도치 않게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육아하고 잠자는 시간을 쪼개 쓴 글들이 묶여 이 책이 되었고, 이 책을 읽은 내가 이 글을 쓰듯이 말이다. 우리의 글쓰기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완전히 개인적인 글쓰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글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우리가 행동하는 동기가 되며, 우리의 행동은 또다른 누군가가 글을 쓰게끔 한다.

책을 읽으며 용기를 얻은 것과는 별개로, 그래도 나를 글쓰는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사실은 글쓰는 사람 이라는,  닫힌 명칭보다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책을 마치며 저자는 앞으로도 어디선가 계속 쓸 거라고 했다. 저자의 말이 든든했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미미한 글이지만 미세한 진동이라도 만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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