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구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있는 낭만 [사람]

아날로그가 좋잖아요
글 입력 2019.12.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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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엽서를 참 좋아한다. 예전 이사 오기 전에는 부엌 테이블에 작은 엽서 쪼가리를 유리와 탁자 사이에 껴놓기도 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엽서 같은 종이에 엄마의 손글씨로 가끔씩 탁자에 끼워 놓기도 했는데 거기에 적혀 있었던 건 여러 가지 글귀도 있었고 시도 있었다.


시 중에서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들이 기억이 난다. 글귀 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것은 어릴 때는 책을 많이 읽어 얘기하던걸 좋아했던 내가 했던 말이다. 엄마와 얘기하다가 엄마가 어린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하며 내가 했던 문장에 감명을 받아 탁자에 써서 끼워 놓았던 글귀가 있다. 그 말이 나중에 광고 슬로건에 쓰이기도 했는데 그 광고가 나왔을 때는 똑같은 말을 했던 어린아이의 내가 대견한 순간이었다.


그 말은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말이었는데 이 말을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생각해내다니 엄마도 나도 우리 가족들 모두가 나를 대견해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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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가 나오고 모두들 놀랬던 순간이었다."

 

 

각설하고 나도 우리 엄마처럼 아직까지 문자, 카톡보다도 전화가 좋은 구식이다. 물론 아직 어리기에 카톡은 하루 종일 쉴 틈이 없다. 친구들과의 톡뿐만이 아니라 학교 과 단체방, 팀플 등등 다양한 톡 방에서 대화가 오고 간다.


카톡은 친숙하고 친근하게 늘 곁에 있지만 톡이 오면 그다지 반갑지도 흥미가 생기지도 않는다. 미리 보기 기능으로 미리 보고 심드렁해지는 나와 카톡 1이 사라졌지만 답장이 오지 않는 상대의 모습 등에서 느껴지는 것은 편리하지만 그저 딱딱하고 퍽퍽한 느낌이 드는 대화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 대신 전화가 오면 이것과는 다른 기분이다. 일단 흥미가 생긴다. 전화를 못 받았으면 전화가 되기 전까지 그날 하루 종일은 궁금과 설렘이 생긴다. 또 한 번 전화를 하게 되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음을 감수해야 하지만 통화기 너머 들려오는 상대의 생동감에 나도 생기 있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통화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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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음이 많은 나는 구식이긴 하지만 무언가 손으로 쓰는 건 귀찮아 핸드폰을 애용하는 편이다. 그에 반해 우리 언니는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메모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구식이다.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을 쓴다고 한다. 원래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언니는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글쓰기 강의를 나가는 프로 글쓴러다.


내가 갑자기 지어낸 말이라 이상하지만 이런 프로 글쓴러인 언니야말로 진정한 구식 중에 구식이라 일컫을 수 있는데 종종 길을 걷다가 언니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메모장에 끄적끄적 메모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픽 웃음이 지어지는 귀여운 느낌이 든다.

 

프로 글쓴러인 언니는 메모뿐만이 아니라 편지도 많이 쓴다. 나도 언니가 나에게 써준 만큼 써주고 싶지만 프로 귀찮러인 나는 언니의 바쁜 손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하나하나 꾹꾹 눌러 담은 언니의 편지는 상큼한 느낌이 든다. 휙휙 갈겨쓰는 내 글씨체와 다르게 정성스레 쓰인 언니의 글씨체에서 언니의 섬세함 또한 엿볼 수 있다. 이런 구식을 사랑하는 언니가 귀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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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편지가 있지만 그 편지들은 장롱 저 깊숙이 있어서 꺼내 못했다.. 사진 찍으려고 급하게 찾고 찾다가 서랍에서 발견한 편지들.."

 

 

이렇듯 구식인 듯 구식 아닌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편리한 것이 너무도 좋다. 이제는 이것들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식인 것들이 모두 사라진 채 편리한 것들만이 옆에 남는다면 살아가기야 살아갈 테지만 그저 퍽퍽한 채 즐겁지 못한 삶을 살아갈 것 같다.

 

공중전화를 쓰던 우리 엄마, 아빠 세대는 더욱이 낭만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낭만이 있다면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 세대 때가 더 애틋한 그런 낭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전화를 거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전화를 받는 그런 모든 하나하나의 애틋함이 더해져 더 큰 낭만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날로그적인, 구식인 게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그때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부모님 세대와 제대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 구식에서 오는 분위기가 묘한 우리 세대가 아직까지 찾고 있기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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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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