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신만의 서사를 가진 존재들에 대하여 [도서]

박해울 저자, 도서 <기파>를 읽고
글 입력 2019.12.1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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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기파_입체.jpg

 

 

당신은 자신만의 서사를 지닌 존재입니까?


 

생명과 사물을 구분 짓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여러 차이점이 당연히 존재할 터지만, 나는 <기파> 소설을 읽고 ‘서사’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를 꼽게 되었다.


사람이라면 태어난 뒤 자신만의 서사, 즉 이야기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물건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지성을 가지지 않았기에 타인과 소통하거나 갈등을 겪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성을 가진 사물이 타인과 손쉽게 소통도 할 수 있다면 그는 그만의 서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때 저 사물을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은지 정의하기 어려워진다.

 

소설 <기파>에서는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사회가 배경이다. 목성과 달을 향해 비행하는 우주선 오르카 호에는 세 명의 인간인 듯 아닌 듯한 경계에 존재하는 이들이 타고 있었다. 이 세 명의 캐릭터를 ‘서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그럼으로써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람인 기파, 하지만 의사 기파로서의 서사는 없는


 

일단 기파 의사는 명백히 사람이다. 그는 오르카호에서 섀도 크루인 아누타와 달리 의무실장이라는 높은 직위를 가졌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의사로서 사명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의 직위를 벗어던지고 도망친다.



그럼 의사는 누구한테 기대지?

모든 의사가 사명감에 불타서 자기 목숨을 버리며 일한 순 없다고...



로봇 기파 : “뭐가 그렇게 두려우신지요? 목숨을 잃을 게 두려우십니까?”

의사 기파 : “여기서 일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두려워.”


 

비록 의사라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도피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로봇처럼 목적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삶을 어떻게 살지 정하는 건 자신에게 달린 몫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용문처럼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고,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쉽게 좌절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달리 로봇 기파는 두려움을 느끼진 못한다.

 

의사 기파가 사람임은 너무나 자명하지만 그런 그에게 허락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세상에 알려진 위인, 의사 기파의 서사이다. 그건 그가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쉽게 그 서사를 로봇 기파에게서 가로챌 수 있게 되었다.

 

 

 

로봇인 기파, 하지만 자신만의 서사가 있는


 

기파 로봇은 본래는 이언이라는 이름으로, 의사 기파를 보조하는 로봇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기파의 행세를 하게 된 건, 기파가 자신은 의사를 못 하겠다며 자기 일을 그에게 맡기면서부터였다. 기파는 로봇인지라, 주인의 명을 충실히 따르며 생존자들을 구한다. 그는 로봇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해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는 충담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록 기파 선생님 대행일 뿐이었지만, 제가 느끼는 성취감은 진짜였습니다.

오롯이 제 것이었죠.


 

그러나 그가 로봇이라는 이유만으로, 로봇 기파가 해온 모든 일은 부정당한다. 그리고 상부에서는 진짜 기파를 사칭하는 로봇 기파를 폐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제가 한 일이 헛된 일이었습니까?”

“아니, 인간이었다면 존경받고도 남아. 네 문제는, 네가 로봇이라는 거야. 아무도 네가 한 일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해.”


 

비록 사람이 아닌 로봇 기파일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칭송하는 의사 기파의 이야기는 저 로봇의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는 기파 평전이라는 서사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로봇 기파와 연대감을 느꼈던 아누타가 죽은 그를 위해 한 행동은 그에게 서사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아누타는 죽은 로봇 기파 앞에 그가 사람들을 구해주고 그 사람들이 기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는 영상을 만들어 틀어놓는다. 로봇 기파는 처음엔 명령을 수행한 것이었지만 느꼈던 성취감만큼은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세상에 진실을 알리지 못했지만, 아누타는 그런 그를 위해 그 성취감을 재현하는 영상(서사)를 그의 앞에 틀어준 것이다. 그 영상에서만큼은 서사의 주인공은 로봇 기파다.

 

 

 

서사를 지닌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쓰레기장, 하수처리장, 물류창고, 기계실에도 사람이 필요하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할 섀도 크루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누타는 오르카 호에서 섀도 크루다. 섀도 크루란 기계가 전혀 없고, 사람들만 봉사한다는 걸 이점으로 내세운 오르카 호에서 숨어서 몰래 직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을 일컫는다. 한쪽 눈이 의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누타는 인간다운 취급을 받지 못한다.


돈만 있다면 언제든지 신체를 교체할 수 있는 이 세계에서, 기계로 만든 인공 신체기관은 쉽게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아누타는 의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섀도 크루로서 일할 걸 제안받고, 그녀는 밤에만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평상시에는 좁은 지하층이나, 복도의 벽면을 개조한 방에서 지내야 했다. 그녀는 충담에게 자신은 직원도 아니고 정확히는 이 우주선의 '부품'이라 자신을 표현한다.

 


지금까지 복도라고 생각했던 벽들이 모두 사람이 생활하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람 사는 공간을 이런 곳에 만들어놓다니. 이렇게 해놓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던 건가?

 


오르카호는 승객을 위해 거의 모든 전자기기들이 내장형 시스템으로 갖춰져 있었다. 승객들이 다니는 곳에는 전선 한 가닥 보이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지만, 이곳엔 정리 안 된 전선 다발과 흉한 철골이 가득했다.


 

인용한 장면을 읽었을 땐, 영화 <어스>가 생각났다. 영화 US의 제목은 ‘우리’를 의미한다. 그 영화에서 나오는 지하층 아래 숨어 지내야 했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섀도 크루인 아누타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그녀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로봇이었던 이언은 의사로서 오르카 호에서 편안한 생활을 영위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 아이러니함은 <인간이 아닌 승무원 찾기 이벤트>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오르카호에서 인간이 아닌 승무원 찾기 이벤트가 열리고 한 아이가 아누타가 의안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인간이 아닐 것’이라며 그녀를 폭행한다. 이언이 그걸 말리는데, 아이는 의사 선생님이 자신을 말리니 군말 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의사 선생님인 이언이 로봇이었다는 건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하지만 로봇 이언은 위에서 입력한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을 때만 권력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가 로봇 기파가 되어 사람들을 구했을 땐 그는 로봇이라는 이유만으로 폐기당하게 된다.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아누타는 폐기 처리된 로봇 기파를 진정으로 연민할 수 있었다. 섀도 크루인 그녀를 살아 움직이게 한 것도 로봇 기파처럼 성취감이었기에, 그녀는 죽은 로봇 기파에게 영상을 선물하게 된다.

 

 


사가 지니는 힘




예전엔 신라 화랑 ‘기파’를 찬양하는 노래라는 사실만 외우고서 별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런저런 의문이 생기더군요. 과연 그는 실제로 찬양받을 만한 행동을 한 인물일까? 혹시 향가에 대한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기파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말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그동안 이 사회에서 로봇 기파처럼, 진실을 알리지 못하고 사그라진 서사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 소설의 오르카호에서도 오르카호를 운영하는 상부의 욕심 때문에 그 안에 탄 승객들이 아누타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충담은 로봇 기파에게 네가 로봇이기에, 네가 한 행동을 아무도 인정해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로봇 기파는 자신만의 서사를 지닌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서사가 지니는 힘을 믿는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 아파했던 것처럼, 로봇 기파의 서사가 함부로 재단되지 않고 세상에 공개되었으면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을지도 몰라. 충담은 가슴의 통증을 또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그래 아마 평생 사라지지 않겠지.


 

로봇 기파의 존재를 부정했던 충담이 가슴의 통증을 평생 사라지지 않을 거라 말한 것처럼 말이다. 서사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잊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자신만의 서사를 지닌다는 것, 그건 곧 살아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로봇 기파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살아있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파를 전부터 읽게 되기를 오래 고대했었다. 박해울 작가님께서 이 소설을 완성하는 데 6년이 걸렸고,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집필과 퇴고를 반복했다는 기사를 보고서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랜 세월 동안 탄탄히 쌓아 올린 서사라는 게 체감이 되었다. 작가의 말 파트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문단을 인용했다. 진심을 담아 갈고닦은 서사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6년이라는 꽤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중략) 그동안 사회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간 준비를 하면서 제일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인물의 독백이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제가 과거에 썼던 표현들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여러분과 만나기 위해 문장을 여러 차례 수정했습니다. 부디 제 진심이 가닿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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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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