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Love Poem으로 보는 사랑의 본질 [음악]

결국엔 사랑으로 귀결되는 아이유의 언어
글 입력 2019.11.27 16:04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가수로 시작하여, 작사와 작곡에도 발을 들이고 거기에 연기까지. 아이유가 훌륭한 아티스트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사실이다. 나는 아이유의 여러 스펙트럼 중 작사가로서의 아이유를 굉장히 사랑한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로 “가사=시”라는 공식은 통용이 되고는 있지만, 정말 시 다운 가사를 쓰는 작사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데뷔 초부터 꾸준히 작사를 해왔던 아이유는 Modern Times 이후부터 그녀가 가진 잠재력을 터뜨렸다. CHAT-SHIRE부터는 전곡을 작사하고 프로듀싱하며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을 탄탄히 직조해왔다.

 

 

[크기변환][포맷변환]3399860.jpg

 


그런 아이유가 [Love Poem]이라는 다소 직관적인 제목의 앨범을 들고 나오다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일 선공개 된 동명의 곡 Love Poem 이후, 18일 6개의 트랙이 모두 공개되었다. 이 전에 발매된 아이유의 앨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르와 결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가 ‘Love Poem’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상 전작들과 조금은 다른 시선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된다.

 

[Love Poem]에 수록되어 있는 6개의 트랙, 아니 6개의 시를 하나씩 살펴봄으로써 아이유라는 시인에게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살펴보려 한다.

 

 

 

Track 1. Unlucky



아이유가 전곡 프로듀싱을 시작한 CHAT-SHIRE 이래로 앨범의 첫 트랙은 항상 발랄한 곡으로 통일감을 유지하고 있다. Unlucky는 새 신발, 이 지금과 주제면에서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전작 이 지금에서 아이유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며 삶을 불꽃놀이에 비유한다. 우리의 삶이 이 지금의 세계와 같이 매일이 반짝인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삶은 Unlucky가 그리고 있는 세계와 더 가깝다.

 

 

[크기변환]★_아이유_인스타그램_(널디_후드,_운동화_착용).jpg

 

 

Unlucky가 바라보는 삶은 빈칸이고, 얄미운 숙제이며, 잘 짜여진 장난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 길을 잃어 외롭고 자주 울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이유는 그럼에도 역시 완벽하군이라 말하며 그 사실을 부정하고 슬퍼하기보다 그를 포용하는 길을 택한다.

 

삶의 이면들을 외면하기 보다 그것 또한 삶의 본질임을 깨닫고 포용하는 단계를 거쳐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타인 또한 사랑할 수 있다. 아이유는 첫 트랙인 Unlucky를 통해 사랑 시를 부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유는 Unlucky를 자기 스스로에게 부르는 응원가라고 설명한다. 마냥 들떠 높은 계단 좁은 골목 어디든 가던 새 신발의 아이유는 아마 삶의 뒷모습을 마주했을지 모른다. 새 신발을 신고 폴짝 뛰던 아이유는 비틀거려도 계속 또박또박 걸을 수 있음을 선언한다.

 

그나저나 Love Poem의 첫 트랙 첫 가사가 '기를 쓰고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니.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한다.

 

 


Track 2. 그 사람


 

아이유는 이 곡을 ‘갑자기 와 손님처럼 잠시 머물다 간 ‘그 사람’의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다른 다섯 트랙에 비해 현저히 짧은 소개 글이라 궁금증을 유발하면서도 해석의 문을 가장 많이 열어 두고 있는 듯하다.

 

 

[크기변환][포맷변환]20191127_160617.jpg

 

 

누구에게나 잠시 머물다 간 사람이 존재한다. 사람을 만나면 무언가를 나누기 마련인데, ‘그 사람’은 나에게서 무언가를 받지도 않고 애써서 주지도 않는다. 주고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떠나고 나면 우리에겐 그저 그에 대한 인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몇 가지 남기고 간 것을 해석하고 곱씹으며 ‘그 사람’은 우리에게 더욱더 환상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우리는 어쩌면 대상을 온전히 사랑한다기 보다 그 사람의 해석본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내가 당신을 사랑할까.’ 하며.

 

 


Track 2. Blueming


 

Blueming 은 Love Poem의 타이틀로 사랑에 빠진 직후의 감정을 표현한 곡이다. 노래와 앨범의 아트워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Blue와 Gray는 아이메시지의 대화창을 표현한다. 스마트폰의 보급, 메신저와 sns의 발달 이후로 말의 무게가 이전과는 달라졌다고들 한다.

 

확실히 손 편지로 마음을 전하던 부모님 세대에 비해서 조금은 가벼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말이 가벼워졌다고 해서 그 진심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유는 캐치해냈다.

 


[크기변환][포맷변환]2019112601000518100020251.jpg

 

 

Blueming은 사랑의 마음을 장미에 비유한다. 사랑을 꽃으로 치환하는 이 공식은 아주 오래된 문학적 기술이다. 아이유는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 가사를 차용함으로써 문학적 설득력을 얻어냈다. 하지만 아이유는 그냥 장미가 아닌 파란색 장미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아이유만의 색채를 확고히 한다.

 

일반적인 장미는 ‘열렬한 사랑’을 뜻한다. 이와 달리 파란 장미는 인간이 구현할 수 없는 색깔이었기 때문에 ‘불가능’이란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기술의 발달로 파란 장미를 개량할 수 있게 되며 ‘기적’이라는 꽃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미워하는 마음 하나 없이 사랑의 결실을 피우는 것은 기적과도 가까운 놀라운 일임을 여기서 알 수 있다.

 

 

[포맷변환][크기변환]20191127_162923.jpg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 완벽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친밀감, 열정, 그리고 헌신이라는 세 꼭짓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요소 중 하나 혹은 두 가지가 있고 없음에 따라 여러 가지의 사랑이 가능해진다. Blueming에서 그려내고 있는 사랑은 친밀감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로맨티시즘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아이유의 로맨티시즘, 즉 낭만적 사랑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낭만적 사랑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하나의 신화에 가깝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숭고한 결합을 통해 서로를 완전함에 이르게 하며 영원히 함께한다는 그 신화는 쉽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게 한다. 하지만 아이유는 사랑이 시들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사랑을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때, 미워하는 마음 없이 사랑하여 시들 때도 예쁘게 사랑을 피워내야함을 노래한다.

 

 

 

Track 4. 시간의 바깥


 

기다린다는 행위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행동을 기다리는 시간적 관념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기다림이라는 단어의 본질에 시간의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을 견뎌내야 함을 뜻한다. 인간의 시간은 결국엔 직선적일 수밖에 없어서, 우리는 항상 과거를 밟고 서서, 미래를 쫓아야 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20191127_160656.jpg

 

 

아이유는 기다림이라는 단어의 시간적 관념을 뛰어넘어 시간의 바깥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공간을 창조해냈다. 이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뎌야 했던 8년전 너랑 나의 주인공들은 만나 숨이 차도록 춤을 춘다.

 

물론 현실 세계에 사는 우리는 시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의 무게를,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고 있는 모든 존재에게 이 노래는 문학만이 줄 수 있는 희망을 선사한다.

 

‘기어이’라는 부사는 ‘결국에 가서는’이라는 뜻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라는 뜻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기어이 우리가 만나면이라는 가사는 운명적 확신과 화자의 의지를 내포한다. 두려움 없이 이러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시간의 무게를,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Track 5. 자장가


 

아이유는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불면증을 고백하며, 살다가 ‘잠’이라는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기본 템’을 바보처럼 잃어버렸다고 말을 했다.

 

그런 아이유에게 잠이란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작사를 시작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4am밤편지무릎 등 잠을 소재로 한 음악들을 꾸준히 만들어왔으며 자장가도 그것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1855408.jpg

 


사랑하는 사람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반딧불을 보내던 아이유는 이제 그의 꿈에 찾아가 사랑과 위로의 손길을 전한다.


자장가의 화자가 찾아간 꿈의 주인은 2015년 발매한 무릎의 화자처럼 보인다.

 

무릎의 화자는 하루의 끝에서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 깨어 있다. 그런 그는 자신은 이제 지친 것 같다고 고백하며 말갛게 웃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그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지름길을 찾고 싶어 한다.

 

자장가의 화자는 그렇게 잠든 그에게 끝나지 않는 긴 하루를, 더 만날 수 없는 지난 날들을 놓아줘도 괜찮다고 말한다. 2019년의 자장가는 4년 전 자신에게, 그리고 수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꿈에 찾아가 부르는 자장가는 결국은 잊히게 될 꿈의 순간일 뿐이지만 그가 전하는 위로는 순간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Track 6. Love Poem


 

프랑스의 철학자 크레스테바는 ‘위기의 시대에는 우울증이 주도권을 잡고, 자기 이야기를 하며, 자기 족보를 만들고 자기의 표상들과 지식을 생산해낸다’라고 말하며 21세기에 우울은 인간 실존의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는 보편 정서라고 설명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99b983892094b5c6d2fc3736e15da7d1.jpg

 

 

앨범과 동명의 제목인 Love Poem은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세상에 외치는 듯하다.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그는 시인을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과거에는 잠수함에서 산소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잠수함 안에 토끼를 길렀다. 산소량이 부족해지면 인간보다 토끼가 더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토끼의 반응을 관찰하여 산소량을 측정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의 아픔의 징조를 더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 시인들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아이유는 이 시대의 시인으로서 이 시대의 아픔과 불안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마냥 응원과 위로의 말들을 전하기보다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조심스레 부탁의 말을 전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응원과 위로가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음을 아이유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삶의 무게는 홀로 오롯이 짊어지고 나가야 할 것이지만, 사랑이 있다면 함께 걸어갈 수 있다.

 

 

[크기변환][포맷변환]IMG_8999.jpg

 

 

아이유는 Love Poem을 통해 인간 실존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사랑은 대상을 자신의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자아를 서로에게 확장 시킴으로써 내면의 능동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스페인어로 사랑은 Amor이다. Amor의 mor은 '죽음'을 뜻하고 a는 '저항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사랑은 본질적으로 죽음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이유의 언어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고 죽음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유의 신보 [Love Poem]은 자아의 긍정에서 시작하여 사랑의 본질에까지 닻을 내린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이 필요한 시대에 그녀의 진심을 담은 사랑 시를 통해 모두가 "살았으면 좋겠다”

 

 

[이지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1849
    • 글이 진짜 좋네요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