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9월, 우리의 풍경 - 연극 9월

글 입력 2019.11.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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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9월>의 공연장에서 만난 우리는 모두 어딘가 닮아 있었다. 낯선 공연장의 모습에 긴장해 있었고, 눈치 게임을 하듯 자리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자유롭게 흐트러진 의자에 앉아 발을 까딱이던 중, 음악과 함께 배우들이 춤을 추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공연장 내에 그려진 원에 둘러앉아 "공론장"을 형성했다. 그렇게 힐끗대기만 하던 우리가 마주 보게 되었다.

 

둥글게 둘러앉은 관객들 사리에는 배우도 있었다. 의상과 메이크업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배우인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우리 사이에 공간적 위화감은 없었다. 원의 가운데에는 관객들이 가방을 모아 두었다. 짐이 한 곳에 섞이자 우리의 경계는 더욱 풀렸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 이상으로 어떠한 유대감이 생겨났다.


 
 

<9월>과 나



 

연극을 관람할 때 관객은 늘 배우와 마주하지만, 서로 "마주 본다"는 느낌은 잘 받지 않는다. 무대와 객석의 공간적 분리와 암묵적 협의가 있기 때문이다. 배우뿐 아니라, 관객들끼리도 마주 볼 일은 없다. 나란히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각자의 연극과 세계에 집중할 뿐이다.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 많은 극을 제외하면, 영화가 상영되듯 흘러가는 극이 다수이다. 배우 대 관객으로 서로에게 반응하지만, 연극이란 장르의 특징인지 한계인지, 어딘가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9월>은 이런 연극의 특징을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운 형태의 극을 창조해냈다. 둥글게 모인 배우와 관객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었고, 공간적 분리가 사라지자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짐을 느꼈다. 극의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긴장하긴 했지만, 연극이 진행되며 나는 스스럼없이 그들과 섞이는 나를 발견했다.

*


연극은 초반에 시작할 때, 대사를 주고받기 전에 독백처럼 대사를 하다가 상대방에게 대사를 넘겨준다. 가령, '리아'가 '근호'의 대사까지 혼자 말하다 중간에 '근호'가 들어와 대사를 받고 대화를 전개한다. 마치 공을 드리블하다 패스하는 것처럼 진행되었다. 드리블을 하면 공이 어디로 갈지, 누구에게 공을 넘길지 주변 선수들이 바짝 긴장하고 감각을 세운다. <9월>은 초반 진행 방식을 통해 그러한 효과를 냈다.

누가 어떤 역할인지 명확히 알기 전까지 "과연 저 대사를 누가 받을 것인가"에 대해 민감하게 감각을 세우고 집중했다. 그러면서 원 안의 배우들을 둘러보았고, 누가 입을 열지 한참 기다렸다. 누가 받아 갈지 모르는 대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연극에 엄청난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둥글게 모여 앉아 있으니 무대 위만 보는 것보다 시야도 넓게 가져야 했기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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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모여 앉아 배우들이 마주 보며 대사를 주고받다 보니 관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배우를 따라 움직였다. 말하는 배우가 바뀔 때마다 관객들의 고개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고, 앉은 자리에 따라 그 각도도 제각각이었다. 모여있는 사람들이 한 번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바꾸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관객이 연극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실시간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둥근 의자 배치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가 배우뿐 아니라, 관객과 마주 본다는 점이었다. 나의 정 반대편에 앉은 사람은 나와 같은 한 관객이었다. 내가 정자세로 앉으면 당연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관객이었다. 타 연극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대사 중인 배우에 따른 고개 회전뿐 아니라, 연극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즉시 눈을 뜨면 볼 수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웃고, 움직이는 관객의 모습을 전부 알 수 있었다.

공연 전, 아무리 공간의 분리를 없애고 함께 둘러앉아 공연을 한다 해도 대사를 하는 건 배우들뿐이니 어떻게 우리가 다 같이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9월>은 소통이란 말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9월>의 공론장에서 배우와 관객은 대사, 그리고 반응을 통해 다 함께 소통했다. 나는 눈앞의 다른 관객을 보며 그의 감정을 느꼈고, 우리는 눈빛과 몸동작으로 서로에게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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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연극 중 총 2번 배우가 직접 관객에게 귤을 나눠 주었다. 나는 이 사소할 수 있는 연출이 정말 좋았는데, 마치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을 표하는 일 같았다. 귤을 직접 건네는 장면은, 감정과 이야기를 그 속에 응축해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배우들 역시 귤을 함께 먹었고, 다 함께 무언가를 나눠 먹는 데서 오는 따뜻함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9월>은 배우와 관객 모두의 감각을 깨우는 연극이었다. 언어와 비언어적 소통이 어우러져 우리는 감정을 나눴고, 서로에게 공감했다. 배우는 주제를 던져줄 뿐이었다. 모여 앉은 사람 중 나와 눈을 맞추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소통했고, 마음을 열었다. 설유진 연출은 초연 이후 "관객들이 자신이 감각하는 것에 대한 자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고, 다시 만난 <9월>의 공론장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9월"과 나



<9월>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꽤 흔치 않은, 소위 말해 "막장"이라고 볼 수 있는 복잡한 사연을 담고 있었다. 줄거리를 통한 대단한 교훈을 담아내려 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흔하지 않은" 이야기는 <9월>의 제목이 왜 "9월"인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연극 중 기차역 밖 풍경을 바라보며 "창밖의 풍경도 계절처럼 지나쳐 가겠죠"라는 대사가 나온다. 창밖에는 기차에 치여 죽은 사람들이 있었다. 슬프지만 비극도 지나간다. 아쉽게도 희극 역시 찰나를 스친다. 남는 건 그저 "이 순간의 나"일 뿐이다. 가만히 있는 나를 상황들이 스쳐 가며 나의 감정을 만들어 내고, 나는 감정으로 현재를 정의 내린다.

<9월>의 인물들에게 일어난 사건들 역시 그들을 스쳐 가는 상황일 뿐이다. 순간이 너무 어렵고 아프지만, 자꾸 지나쳐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공간에 함께한 나에게도 그들의 사건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감각을 자극했고, 당시 나의 현재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후 나에게 남은 건 "감각의 잔상"과 "나"였다. 그들의 풍경이 나를 스쳐 간 것이다.

여름의 끝, "9월"은 나를 스치며 열기를 식힌다. 나는 9월의 사소한 기온 변화로 감각을 형성하고, 9월은 나를 스쳐 지나간다. 9월이 얼마나 대단한 풍경을 지녔건, 단풍이 들건 바람이 불건, 확실한 건 10월이 온다는 사실이다. 연극 <9월>에서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속에 담긴 "9월"과 함께 나를 스쳐 갔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달했든, 나의 감각을 깨운 뒤 상황은 완전히 사라졌다.


*
 

인물들의 이야기를 "흔치 않다"고 표현했지만, 흔한 게 뭘까? 극적인 이야기는 더 극적인 잔상을 남길까? 극적인 이야기란 게 있을까? 전부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감각의 잔상"과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8월의 열기"나 "9월의 바람"이나 "12월의 한파"나, 그저 감각을 깨우고 스치는 찰나일 뿐이다.

그들의 "9월"은 공론장의 원을 돌고 돌아 관객과 배우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많이 아팠지만, 여전히 떠올리면 아프지만, 어찌 됐든 지나온 것들이 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9월"이 있듯, 다시 돌아올 감각일 수도 있다. <9월>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다. 애써 털어내지 않아도, 우리의 순간들도 계절처럼 스쳐 갈 하나의 풍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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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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