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민하는 이들이여,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도서]

글 입력 2019.11.2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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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그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썼어요.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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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크기와 무게에 차이가 있을 뿐,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각자의 고민과 상실, 슬픔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중 우리의 마음에 가장 무겁게 자리하는, 평생 떨칠 수 없는 고민은 “지금 내가 내 나이에 맞게 잘 살고 있을까” 일 것이다. 삶에는 각 나이에 맞게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회적 통념에 우리는 때론 다른 사람들이 걸어가는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실패라 여기고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걸어가는 삶의 시기와 다르거나 조금 늦더라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하는,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어 늦은 나이에 도전해 성취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한다. 명예퇴직한 후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 학위를 받은 누군가의 이야기라던가 첫 시를 92세에 쓰고 98세에 시집을 낸 일본의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와 같은 것 말이다. 사실, 우리를 감명하게 하는 것은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것보다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행위 그 자체일 것이다.
 
여기 76세에 첫 그림을 그리고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간 할머니가 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담긴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은 겉표지의 그림에서부터 평온함이 느껴진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이국적인 미국 어느 시골 마을의 눈 덮인 풍경, 썰매를 끌며 노니는 아이들과 그 옆을 지나는 마차 그리고 또 나무를 이고 가는 누군가의 모습까지. 책장을 넘기면 고요하면서도 북적거림이 있는 시골 풍경의 평온함이 내게 전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풍경을 그려낸 할머니의 삶은 또 어땠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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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보기 좋고 즐거운 풍경을 그립니다. 알록달록하고 북적북적한 게 좋아요.
 
- 259쪽
 
 
모지스 할머니의 말처럼 책 속의 그림들은 누구나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이 가득한 풍경이다. 그림 속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하는 모습은 꼭 “옛날 옛적에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로 시작해 “그리고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서로를 위하며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내용의 동화 속 삽화를 보는 듯하다. 책 한 권을 찬찬히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책, 동화책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 갤러리에 방문한 기분이 든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동떨어진 이 없이 함께 일하고 또 함께 어우러져 노닌다.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진 풍경과 사람들을 누군가 멀리서 바라보는 구도의 그림들, 그리고 그와 함께 할머니는 자신의 어렸던 시절, 결혼하고 가정을 일군 후 살아가다 그림을 그리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한 어투로 이어간다. 그림과 문장 모두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때론 길고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인 문장보다 단순하고 짧은 문장이 더 깊이 있기 마련이다.
 
그림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에피소드의 시작과 마무리에 자리한다. 모지스 할머니의 추억 속 공간은 어릴 때 살던 집, 교회,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했던 곳으로 사계절마다 다른 풍경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온 가족이 푸르른 녹음 안에서 소풍을 즐기고, 가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과 버터를 만들며, 눈 내린 겨울에는 메이플 시럽을 만들어 눈과 섞어 먹는 등의 장면들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은 다를지라도 모든 그림 속 사람들은 고됨 없이 항상 즐거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무언가 커다란 의도와 세계가 자리한 작품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그림이 주는 평온함과 따스함은 깊다. 감상하는 이가 평온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지나간 날들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모지스 할머니가 어여쁘게 그림에 담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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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예쁘지 않다면 뭐 하러 그림을 그리겠어요? 그래서 뭘 그리면 예쁠지 열심히 생각해보고 그림을 그리지요. 옛날 풍경들을 그리는 걸 좋아해요.

 

- 263쪽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린 지 5년 만에 단독 전시회를 열었고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유명세를 얻었다. 대중의 인기는 높아졌으나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는 할머니의 그림을 B급으로 분류하였는데 작품의 상업화에 대한 거부감 및 당시 미국 화단에서 내세우는 추상표현주의가 주목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이유였다고 한다. 당시 미술계의 외면에도 모지스 할머니는 그러한 비평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처럼,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던 자세로 계속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그림에 그저 예쁘고 보기 좋은 일러스트레이션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할머니가 평생 겪고 살았던 곳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있다. 즉, 당시 미국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100년 미국의 역사가 담겨있다는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후대의 미국인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미국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스스로 평온하게 회상했으나 할머니의 삶 매 순간이 동화 같지는 않았다. 모지스 할머니는 너무 어린 나이의 형제자매들, 일생의 동반자였던 남편,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까지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을 겪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이를 담담히 회상한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볼 때, 이별이 주는 슬픔과 상실에도 편안한 마음을 지니며 그저 행복과 만족만 담아내려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어려운 것이 있으면 그냥 가만히 덮어두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할머니의 말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본다.
 
지금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모지스 할머니가 살아온 100년 동안 있었던 변화만큼은 아닐 것이다. 마차가 사라진 자리를 자동차가 대신하고, 철제 난로는 가스 또는 전자레인지로 바뀌었고 교회로 가는 길에 가로질러 걷던 초원에는 공장과 공항이 들어섰다. 여성의 투표 참여와 같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변화도 있었지만 그리운 어린 시절의 장소는 할머니의 추억 속에서만 남게 되는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그저 아쉬워만 하지 않고, 할머니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추억 속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며 기억했다.
 
번역 과정이 노동이 아닌 휴식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해준 할머니에게 감사를 표하는 번역가의 마지막 말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다른 언어인 영어와 한국어를 번역하는 과정 그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당시 미국 생활의 풍습과 관련된 단어를 한국 독자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게끔 풀어 넣는 것 역시 섬세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이 과정이 휴식으로 느껴졌다는 것은 할머니의 이야기와 그림이 주는 평온함이 번역 작업이 주는 고된 마음을 덮었다는 것이리라.
 
책을 다 읽은 후, 마음이 지쳐 힘들어하고 있는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그림과 삶의 이야기로 인해 내가 느꼈던 평온함이 그의 마음에도 자리하길 바란다. 그리고 변화로 인해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마냥 상실하지 않기를, 결국 행복과 슬픔, 그리고 지금이 도전하기에 적절한 시기인가 아닌가에 대한 선택은 자신 스스로 결정하는 것임을 그와 내가 잊지 않기를 바라본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

 

-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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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
 
 
지은이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옮긴이 : 류승경
 
출판사 : 수오서재
 
분야
에세이
 
규격
165*210*16.7 / 무선
 
쪽 수 : 288쪽
 
발행일
2017년 12월 16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87498-18-6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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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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