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프라하로 딴짓하러 오세요 ②

글 입력 2019.11.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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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Episode.02

česká kuchyně

 

       

지난 편에서 약속 드린 대로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체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체코 인구는 천 만 명입니다. 그런데 체코 1년 관광객 수도 천 만 명 정도에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체코를 방문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체코 방문객 1위가 중국인, 2위가 인도인, 그리고 3위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중국이랑 인도는 인구가 많으니 그렇다 쳐도, 그 와중에 한국이 3위라는 게 정말 놀라웠어요. 그만큼 한국에서 프라하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체코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체코 음식에 대해서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요. 그 중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체코식 족발’, ‘꼴레뇨’입니다.

 

 

 

Vepřové koleno pečené v černém pivu, křenu a hořčici
꼴레뇨

 


"체코에서 뭐 먹고 살았어?"

"체코 사람들은 주로 뭘 먹어?"


"고기, 감자, 맥주. 대부분의 음식이

이 카테고리 안에서 끝나.

구운 고기, 튀긴 고기, 찐 감자, 생 감자,

라거 맥주, 흑맥주 이런 식이야"


 

유럽 음식은 조리법이 단순하고 주 재료도 비슷해서 질리기 쉬운데요, 개인적으로 꼴레뇨는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더라구요. 세 사람이 먹어도 될 만큼 양이 많은 게 문제지 꼴레뇨의 풍미 자체는 항상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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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jenice, Prague

 

 

꼴레뇨는 돼지족을 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독일의 ‘학센’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학센 껍질이 유난히 두껍고 딱딱한 반면, 꼴레뇨의 껍질은 돼지껍데기처럼 쫄깃쫄깃해요. 개인적으로는 꼴레뇨가 더 입맛에 맜더라구요(제가 체코 덕후라 그런 건 아닐거에요..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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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icky Pivnice, Kutna Hora

 

 

네이버 블로그나 구글 지도에서 잘 알려진 꼴레뇨 맛집이 몇 군데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꼴레뇨는 해골성당으로 유명한 근교도시 ‘Kutna hora(쿠트나호라)’에서 먹었던 꼴레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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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트나호라 꼴레뇨가 더 맛있었던 이유는 3가지 입니다. 첫째, 프라하보다 ‘저렴’합니다. 프라하에선 꼴레뇨 한 접시에 500czk ~ 1000czk인데 반해, 쿠트나호라에서는 약 300czk 정도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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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훨씬 ‘local’적입니다. 쿠트나호라는 체스키 크롬로프에 비하면 아직 숨겨진 장소라, 도시 전체가 조용하고 가지런합니다. 한국말로 ‘어서오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달린 기념품가게도,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도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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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딘지 북적거리고, 어설프고, 촌스럽습니다. 어떤 실수를 해도 허허ㅡ웃으며 넘어가줄 거 같은 나이브하고 다정한 공기가 훅 끼쳐옵니다. 프라하보다 훨씬 체코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서울보다 통영이나 경주가 왠지 더 한국스러운 것처럼요. 

 

마지막 이유는, ‘사람’때문입니다. 쿠트나호라에 방문했던 건 12월 말이었습니다. 당시 연말 계획이 취소되어 자그마치 10일이 넘는 연휴를 혼자 보내야 했어요. 좀 웃긴 일이지만, 프라하 장기체류자인 주제에 여행 커뮤니티에서 한국인 동행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5명이나 모였는데, 공통점이라고는 한국인이라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24살부터 34살에 이르는 나이 스펙트럼에, 항공사, 독일 유학, 무역 회사, 리테일, 체코 인턴까지 하는 일도 모두 다양했어요. 그러니 처음엔 어색할 수밖에요. 어쨋든 우리 다섯 사람은 비좁은 기차 객실에 옹기종기 앉아 어색함을 헤치며 쿠트나호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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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골 성당, Kutna Hora

 

 

함께 해골성당 티켓을 구매하고, 성 바바라 성당까지 장장 1시간 거리를 걸었습니다. 쿠트나호라의 황무지 같은 아름다움에 반했다가, 과연 이런 도시에도 봄이 올까ㅡ싶어 덜컥 겁이 나 움츠러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나절을 보내고, 열차 안에 몸을 욱여넣은 채 프라하로 돌아올 때 쯤에는, 우린 꽤 친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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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바바라 성당, Kutna Hora

 

 

서로의 히스토리나 한국에서의 삶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수맥이 흐르는 듯 기묘하고 소름 끼치는 해골성당과 내부가 검은빛과 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성 바바라 성당, 고소하고 담백한 꼴레뇨의 맛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정도면, 다섯 사람이 하루 나절을 함께 하기에 적당히 따듯하고 적당히 편안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라하에서 10번도 넘게 꼴레뇨를 먹었는데도, 쿠트나호라의 꼴레뇨가 괜히 좀 더 애틋합니다.

 

 

 

svíčková & Goulash

스비치코바 & 굴라쉬


 

프라하에 사는 동안 새롭게 알게 된 체코 음식 중 가장 사랑했던 건 ‘스비치코바’입니다. 스비치코바를 먹기 전에 스비치코바의 재료에 대해 먼저 듣는 걸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편견이 생길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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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ickova, U pinkasu

 

 

스비치코바는 

 

삶은 ‘소고기’ 안심과 '크네들리키'라는 빵을 

‘크림소스’에 ‘생크림’과 라즈베리’ 소스와 찍어서 먹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죠. 하지만 생각보다 달달하고 깔끔해서 자주 찾았던 음식입니다. 스비치코바가 주는 얄팍한 특권의식도 좋았어요. '나는 장기체류자라서 이런 음식도 찾아 먹는다, 그것도 자주ㅡ'뭐 그런거요. 볼품없는 특권이지만, 음식 하나로도 쉽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잖아요. 터무늬없는 축복이라 해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게 우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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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ulash, U pinkasu, Prague

 

 

'굴라쉬'는 스비치코바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스프 형태의 음식입니다. 그 맛이 육개장이랑 비슷하다고도 하죠. 저는 마트에서 굴라쉬 재료를 따로 사서 종종 집에서 끓여먹기도 했습니다. 춥고 선득한 날씨에 국이나 찌개가 그리워질 때면, 굴라쉬로 속을 뜨듯하게 데펴주는 게 최고의 차선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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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ary / Austria

 

 

사실 굴라쉬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주변 국가들에서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에요. 국가, 지역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 따라서도 맛과 질감이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렇게 세 국가에 방문할 때마다 굴라쉬를 시도해봤어요. 

 

제 생각에 체코의 굴라쉬가 가장 육개장에 가까웠습니다. 담백하고, 살짝 맵기도 하고. 오스트리아 굴라쉬는 체코의 것보다 짜고 조금 더 꾸덕꾸덕했어요.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굴라쉬는 모두 납작한 접시에 담겨 나온 반면, 헝가리 굴라쉬는 살짝 깊이감 있는 용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맛도 체코나 오스트리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어요. 훨씬 농도가 짙었고, 기름기가 살짝 더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이것도 보편적인 특성은 아닐겁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또 다른 용기에 담긴 다른 맛의 굴라쉬를 만났을 거에요. 그러니 굴라쉬에게는 양파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굴라쉬를 100번을 먹으면, 100가지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니까요.

 

 

 

Trdelnik

뜨르들로

  

 

길거리 음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기 보다는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 위를 비워두는 편이에요. 하지만 굴뚝처럼 위아래가 뻥ㅡ뚤린 ‘굴뚝빵’, 바로 뜨르들로는 이런 저의 습관을 제대로 무너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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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르들로는 최고의 당 충전소였어요. 여행을 다니거나 프라하 시가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밥 때를 자주 놓쳤습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당이 떨어지는 기분도 들더라구요.(날씨 탓을 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기도 하고 딸기잼을 바르기도 하지만, 소라처럼 생긴 커다란 빵에 별처럼 박힌 설탕, 거기에 뜨끈뜨끈한 누텔라를 얹는 조합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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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한 뜨르들로를 아슬아슬하게 입에 넣어가며 걷기도 하고, 하릴없이 벤치에 앉아 조금씩 뜯어먹기도 했었어요. 한 번은 뜨르들로가 굴뚝 모양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세로로 들고 먹다가 옷이 누텔라 범벅이 된 적도 있습니다.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진흙탕에서 구르고 온 사람 같았어요. 그 때 프라하에 놀러온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너무 당황해서 나사 빠진 사람처럼 허허ㅡ하고 웃기만 했습니다. 짜증이 나진 않았어요. 옷이야 빨면 되고, 흘린 초콜릿은 휴지로 닦으면 되니까요. 

 

어쩌면 세상엔 크게 짜증날 만한 일은 없는 거 같습니다. 짜증을 낼 수밖에 없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이죠. 마음이 넓어야 하는 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구덩이를 한 움큼 씩 파내고, 그 살갗을 한 뼘 씩 기워서 점점 넓혀가야 한다고요.


지난 편에 이어 한참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어요. 그래서 다음 번엔 체코에서 '마시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가져와보려 합니다. 체코는 사실 맥주가 정말 유명하죠. 전체 맥주 소비량은 독일이 1위지만, 1인당 맥주 소비량 1위는 체코입니다. 벌써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만 같네요. 맥주 뿐만 아니라 커피, 차에 대해서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편에는 프라하의 낮과 밤을 오가게 되겠네요. 낮에는 티타임, 밤에는 맥주를 즐기러, 프라하로 또 딴짓하러 오세요!

 

 

 

:: About 딴짓 ::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시간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슝슝 빠져나가는 게 아쉬울 때, 여러분은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저는 요즘 유투브를 보거나, 인터넷쇼핑을 하거나, 아니면 음악을 들으며 멍을 때리곤 합니다. 하지만 딴짓엔 역시 앨범 뒤져보기가 최고인 것 같아요. 사진을 훑어보며 지나간 여행,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냈던 즐거운 한 때, 조그마한 동네 길 고양이, 마음에 쏙 들었던 카페 등을 들춰보면 창문을 꽉 닫아놓아 이산화탄소만 가득 찬 방에 신선하고 깨끗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 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추억을 들여다보는 일도 그렇습니다. 아니, 오히려 효과가 더 클 수도 있어요. 카메라 렌즈를 돋보기 삼아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되는데, 타인의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건 전혀 다른 시공간에 잠시 발을 담가보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부터 제가 딴짓을 할 때 꺼내보는 체코에서의 추억을 여러분과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 잠시 딴짓하기 좋은 아지트가 되길 바랍니다.

 

 

딴짓 Prologue

딴짓 Episode 01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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