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취준생의 딴짓하기 : Prologue
-
딴짓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의대생도 아니면서 6년이나 대학을 다니고 ‘졸업유예’라는 턱걸이 신분이 된 2019년 9월,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업 준비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 자신이 아닌 ‘취업준비생’의 삶을 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입사 시험 공부를 해야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효율성’이나 ‘합리성’ 이 숙주가 된 것 같았어요. 이런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상에 ‘비효율’을 끼워 넣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딴짓을 해야겠다는 이상한 다짐이었죠. 취준생의 기준에서 에세이를 쓴다는 건 사실 딴짓으로 분류되니까요.
일주일 내내 똑같은 풍경을 보며 삽니다
바쁜 와중에 딴짓 하나를 해야 한다면, 단연 그건 ‘글쓰기’ 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 회사에 지원하려고 합니까?', '가장 혁신적이었던 경험을 이야기해보시오' 따위의 질문에 답하며 '자소설’을 쓰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한 달에 10건도 넘게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하던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결심했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헌신짝처럼 내쳐지는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아주 주관적인 판단으로 누군가에게 버림받더라도 종래엔 온전히 나의 것으로 남을 무언가를 써야겠다고 말입니다.
'학생', '인턴'으로 퉁치고 싶지 않아서
지난 반 년 동안 프라하에서 인턴으로 근무했습니다. 그 동안에도 어쩐지 글은 계속 썼습니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따듯한 레몬티를 마시거나, 나른한 조명 아래 식탁에 앉아서요. 매주 있었던 일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나 감정은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프라하 집에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던 공간
끊임없이 글을 썼던 이유는 제 삶이 단조롭게 형용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2018년엔 체코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는 식으로 반 년간의 사랑스럽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뭉뚱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매일매일을 온전히 기억해주려 합니다. 그 날의 온도와 바람을 상상하고, 마음을 깊이 파내어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고 합니다. 과거가 뭉게지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프라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공간_Cafe Ebel
학생이든 인턴이든 직장인이든,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신분과 관련된 일들만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 사실을 부인하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만 행하다보면 사는 게 재미없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취준생이기 전에, 겉잡을 수 없이 꼬인 목걸이 줄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보려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답답한 일상이 탁-트이는 기분이 드니까요. 그게 바로 제가 꾸준히 글을 쓰며 '딴짓'을 하려는 이유입니다.
[반채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