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취준생의 딴짓하기 : Prologue

글 입력 2019.10.17 00: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딴짓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의대생도 아니면서 6년이나 대학을 다니고 ‘졸업유예’라는 턱걸이 신분이 된 2019년 9월,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업 준비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 자신이 아닌 ‘취업준비생’의 삶을 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입사 시험 공부를 해야만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효율성’이나 ‘합리성’ 이 숙주가 된 것 같았어요. 이런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상에 ‘비효율’을 끼워 넣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딴짓을 해야겠다는 이상한 다짐이었죠. 취준생의 기준에서 에세이를 쓴다는 건 사실 딴짓으로 분류되니까요.

 


KakaoTalk_20191015_234444895.jpg

일주일 내내 똑같은 풍경을 보며 삽니다

 

 

바쁜 와중에 딴짓 하나를 해야 한다면, 단연 그건 ‘글쓰기’ 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 회사에 지원하려고 합니까?', '가장 혁신적이었던 경험을 이야기해보시오' 따위의 질문에 답하며 '자소설’을 쓰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한 달에 10건도 넘게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하던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결심했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헌신짝처럼 내쳐지는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아주 주관적인 판단으로 누군가에게 버림받더라도 종래엔 온전히 나의 것으로 남을 무언가를 써야겠다고 말입니다.

 



'학생', '인턴'으로 퉁치고 싶지 않아서


 

지난 반 년 동안 프라하에서 인턴으로 근무했습니다. 그 동안에도 어쩐지 글은 계속 썼습니다. 푹신한 침대 위에서 따듯한 레몬티를 마시거나, 나른한 조명 아래 식탁에 앉아서요. 매주 있었던 일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나 감정은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20180929_185439.jpg

프라하 집에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던 공간

 

 

끊임없이 글을 썼던 이유는 제 삶이 단조롭게 형용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2018년엔 체코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는 식으로 반 년간의 사랑스럽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뭉뚱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매일매일을 온전히 기억해주려 합니다. 그 날의 온도와 바람을 상상하고, 마음을 깊이 파내어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고 합니다. 과거가 뭉게지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20180930_165749.jpg

프라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공간_Cafe Ebel

 

 

학생이든 인턴이든 직장인이든,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신분과 관련된 일들만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 사실을 부인하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만 행하다보면 사는 게 재미없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취준생이기 전에, 겉잡을 수 없이 꼬인 목걸이 줄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보려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답답한 일상이 탁-트이는 기분이 드니까요. 그게 바로 제가 꾸준히 글을 쓰며 '딴짓'을 하려는 이유입니다.

 


[반채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