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함축돼서 더 강렬한 이야기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글 입력 2019.11.1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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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1월 3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국제경쟁 7부문의 영화를 관람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 가기 전 최근 몇 주는 주말엔 무조건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관에 가면 항상 피하고 싶은 외부 세상은 완전히 차단되고 스크린 속 세상만이 전부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주는 묘한 위안 때문에 그 발길을 끊을 수 없었다.

 

그날, 씨네큐브에서도 같은 위안을 얻었다. 일요일 아침, 영화관에 들어가고 다시 나오기까지의 시간 동안 나의 세계는 오로지 스크린 속 세상뿐이었다. 보통 장편영화의 러닝 타임이기도 한, 한 시간 반을 여러 편의 영화가 쪼개서 사용했다. 그러나 감정적인 여운만은 전혀 쪼개지지 않았다. 영화 한 편이 내 세계에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모든 작품이 장편영화에 버금가는 강렬함을 안겨주었다. 장편영화가 소설과 같다면 단편영화는 시와 같았다.

 

 

 

노하 추크랄라 <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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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작품 <아민>은 자신을 숨 참기 대회 챔피언으로 만들려는 아버지와 달리 싱크로나이즈 선수를 꿈꾸는 소년 아민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는 이미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갈등을 결코 어둡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닝 타임 내내 아버지는 반대하고, 아민은 고민한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근심은 전혀 없었다. 물속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아민과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면 영화 자체가 아민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민을 포함한 싱크로나이즈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사용하는 음악도 너무나 좋았다. 경쾌했던 그 음악도 아민의 앞날을 긍정하는 듯했다.

 

 

 

란 팜 응옥 <축복받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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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작품 <축복받은 땅>은 바로 앞에 사용된 <아민>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물의 푸른 이미지와 경쾌한 음악이 가득했던 <아민>과 다르게 흑백에다가 정적, 혹은 일상적인 소음으로 가득한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몹시 간단하다. 한 여자가 자기 아들과 함께 남편의 묘를 찾아온다. 그러나 그곳엔 묘는 없고 드넓은 골프장만이 있다.

 

<축복받은 땅>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는 이미 재개발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었다. 그러나 그 축복은 선택받은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최후는 먹이를 잃은 소의 모습으로 단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굶어 죽은 소와 그 소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욜란타 반코브스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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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이미지와 적막에 가라앉았던 마음이 파스텔 톤의 색과 귀여운 그림체를 보자 곧바로 붕 떠올랐다. 이제 가볍게 즐기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긴장을 풀었다. 그런 나의 기대에 부합하듯이 대사도 없이 단순한 동작의 반복만 이어졌다. 그러나 그 반복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기괴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현대 문명에 찌들어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사회’는 이미 너무 많이 사용된 소재이다. 문제는 어떻게 사용하느냐, 이다.

 

<스토리>는 영화 전반을 기분 좋게 감싸던 상쾌한 배경음악, 아기자기한 그림체, 통통 튀는 효과음을 순식간에 뒤바꾸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게 뒤바뀐 마무리의 충격은 엄청났다. <스토리>엔 스토리가 없다. 반복, 반복, 그리고 폭발. 아무런 서사 없이 그저 똑같은 하루, 순간의 오락만 반복하는 우리 현대사회도 영화와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빅토리아 슐츠 <그 밤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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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작품이다.  짧은 만큼 이 영화엔군더더기가 없다. 화목하게 캠핑하던 가족의 풍경은 그 밤, 그 일 이후 순식간에 뒤바뀐다. 영화는 사건의 전조, 사건의 발생, 사건의 후폭풍. 그 핵심만 명확하게 드러낸다. 성범죄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일이며,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사건, 그 자체뿐이다.

 

올가는 사건에 집중해 자신이 겪은 일을 가족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은 가해자가 새 아빠라는 점, 엄마와 새 아빠 사이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점 등 불필요한 사정을 끌어들여 올가의 고통을 함부로 평가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수히 많은 잣대로 피해자를 검열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디 포이쿠 <해변으로 가는 마지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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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 삐거덕대는 사람들, 커지는 의심. 이 영화는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 편견의 바탕에는 국가, 문화의 차이가 있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타인을 고유한 개인이 아닌 해당 국가의 국민으로만 바라본다. 그리고 그 국가에 대한 평가를 개인에게 그대로 적용한다. 그 편견은 아랍권 사람을 향할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랍권 사람은 곧 테러리스트라는 편견 말이다. 영화가 다 끝날 때, 나는 기차 속 그들을 함부로 비판할 수 없었다. 결말이 드러나기 전까지 내 무의식도 그 편견에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부끄러움과 혼란으로 가득한 나를 남겨두고 그렇게 끝이 났다.

 

 

 

래티시아 미켈, 피에르 프리머텅 <혼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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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감독과의 대화도 진행되어서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영화는 손길로 말을 치료하는 프랭크와 기수 지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소통에서 언어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까. 손길만으로 말과 소통하는 프랭크는 사람과의 대화에선 입을 꾹 다문다.

 

반면, 프랭크에게 살갑게 말을 거는 지타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낸다. 소통에서 언어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말없이 함께 말을 쓰다듬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농도 짙게 느껴졌던 것도 그들 사이에 언어 대신 진심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감상하면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단편영화는 끝나는 순간이 가장 강렬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지금 끝난다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장편영화의 문법에 익숙해져있던 나로서는 마무리가 덜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몇 편을 더 보고 나니 마무리가 덜 됐다는 어색함이 점점 사라졌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인생은 그렇게 짧은 한순간만 강렬하게 비춰주는 단편영화를 더 닮았는지도 모른다. 실제 삶에서 완벽한 기승전결은 없다. 끝인 줄 알았던 순간이 알고 보면 시작의 순간이기도 하다. 목숨을 다하기 전까지 함부로 결말을 내릴 수 없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이다.

 

그날 나는 짧은 만큼 매력적인, 함축적이어서 강렬한, 빨리 끝난 만큼 앞으로가 궁금한 단편영화를 통해 사람과 삶을 배웠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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