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통이 예술이 되는 과정 - 치유미술관

예술가의 비극이 치유의 예술이 되는 과정
글 입력 2019.11.0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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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가의 슬픔



 

예술은 슬픔과 고통의 결과물이다.

 

- 파블로 피카소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흔히 예술가에겐 예술적 영감과 재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작품을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예술가를 소개할 때에는 그가 가진 특별한 조건을 찾는다. 남들보다 얼마나 천재적인지, 얼마나 창의적인지 설명하며 그들에게 '천재 예술가', '디테일한 예술가'와 같은 수식어를 사용한다.


'슬픔과 고통'은 예술가에게 필요한 조건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대중가요에서도 흔히 '이별 후 발매한 앨범은 대박이 난다'라는 속설이 있듯이, 예술가의 예술성을 끌어내기 위한 조건으로 고통을 말한다. 예술가가 처한 환경, 마주한 시련, 가지고 있는 장애와 심리적인 불안까지,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의 개별적인 비극을 발견한다. 예술가들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예술을 사용한다.

 

위기에 처한 사람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듯이, 예술가는 고통 앞에서 초인적인 예술성으로 현실을 이겨낸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그들의 시련과 인내를 전달한다. 예술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고, 고통을 수반한 예술은 예술가의 삶을 담아낸다. 그래서 비극적인 삶을 산 예술가들에게 사람들이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이 슬픔과 고통이라면, 왜 슬픔은 다른 감정과 달리 특수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슬픔이란 욕망의 좌절, 가치 있는 것의 상실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혹은 물리적 고통, 불가항력적인 불행한 사건이나 사태로 인해 유발되는 부정적 감정이다. 슬픔의 종류와 강도는 다양하다. 일상적으로 느끼는 개별적인 불행에 대한 반응이 될 수도 있고, 삶을 관통하는 연속적인 불행에 대한 무기력이 될 수도 있다.

 

슬픔은 인간이 경험하는 일상적 희로애락을 넘어, 그 자체로 철학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내면적 계기가 된다. 슬픔과 고통은 상실을 동반한다. 삶에서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버릴 때,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된다.

 

 


2. 비극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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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보다 비극을 진정한 이야기라고 보았다. 진정한 이야기가 삶의 '무언가'를 던져줄 수 있는 이야기라면, 철학적 계기가 되는 슬픔과 고통의 비극이야말로 진정한 이야기로 여기지 않았을까.

 

비극은 시학의 플롯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음악이나 미술처럼 이야기로 표현되지 않는 예술들은 예술가의 비극 자체를 이야기로 삼는다. 예술가가 겪은 고통을 담아낸 예술은 비극과 같은 철학적 의미를 던진다. 그들이 표현한 작품은 작가의 배경과 함께 나타나기도 하며, 작품 단독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가에 대한 배경을 몰라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비극 속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뭉크의 <절규>는 작품 속 인물이 보여주는 표정과 배경이 전달하는 고통과 절망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뭉크가 노르웨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절규>를 아는 사람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비극은 작품으로 녹아들어 뭉크를 모르는 사람들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불명확한 하체, 절규하는 표정, 녹아내리는 듯한 배경은 뭉크의 고통을 예술 자체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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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속의 고통은 위안으로 승화된다. 슬픔과 고통은 존재 이유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던지고, 인간은 철학적 질문을 통해 자유를 느낀다. 비극은 결국 카타르시스를 가져오기도 하고, 위안을 주기도 한다.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은 작품이 가진 비극, 작가의 비극을 바라보며 연민을 느끼기도 하며, 삶의 의지를 느끼기도 한다.

 

뭉크의 <태양>은 그의 삶이 보여준 비극의 결말을 장식한다. 그가 삶의 비극을 겪어내며 마무리한 삶에 대한 회고는 노르웨이 바닷가의 태양으로 표현된다. 고흐의 <호밀밭의  파수꾼>, 베르나르 뷔페의 <브루타뉴의 폭풍>과 달리, 뭉크의 마지막 작품은 밝고 힘차다. 삶의 끝에서, 그는 태양과도 같은 빛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치유미술관>에서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각자의 비극은 다르다. 우리가 느끼는 그들의 비극은 연민 또는 위로를 자아낸다. 예술가들이 겪은 비극과 이후의 치유 과정은 작품 자체로, 또는 그들의 이야기로 설명된다. 우리는 예술가의 비극을 공감하는 동시에 예술가의 작품과 이야기는 다시 우리의 비극을 공감한다. 그래서 <치유 미술관>은 아픔이 명화가 되는 과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픔을 예술가들과 함께 승화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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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슬픔에 관하여-비극적 슬픔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 2018, 오홍명






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


지은이 : 김소울

출판사 : 일리

분야
예술/대중문화
미술이야기

규격
152*210*18㎜(반양장)

쪽 수 : 364쪽

발행일
2019년 10월 02일

정가 : 17,000원

ISBN
978-89-97008-46-9 (03600)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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