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5살의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사람]

글 입력 2019.11.0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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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어느덧 내 나이가 되어버린, 아직까지도 어색한 숫자. 20대의 정확한 중간 지점인 이 나이를 시소의 중심으로 둔 채 왼쪽으로 고개를 한번, 그러고 말없이 오른쪽으로 또 한번 고개를 돌려본다. 시소의 좌측은 너무나 가벼워서 미처 붙잡아볼 틈조차 없이 이미 날아가버린 허공의 공기와도 같았고, 시소의 우측은 명확한 방향성을 상실한 채 위로 올라가는가하면 또 갑자기 땅 밑으로 푹 꺼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시간이 바로 시소의 우측에 놓여있는 것이었고 이 시간은 늘 그렇듯,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과 끝없는 호기심으로 긍정을 싣고 하늘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초조함과 가슴을 죄여오는 쇠사슬같은 부담감 때문에 바닥으로 추락한다.

 

요즘들어 이 시소가 가진 불안정함이 내게 유독 크게 느껴졌고 이는 나의 기분을 하루에도 여러번씩 쥐락펴락하는 바람에, 늘 행복하고 싶었던 소망이 서서히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행복한 나를 꿈꾸고 웃을일 가득한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지금의 내게 그렇게도 큰 사치인 것일까? 25살이라는 나이가 내게 이렇게 버겹게 느껴질 줄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이 조금은 한심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다 이 나이가 가진 무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지점에까지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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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여 과잠을 입고 캠퍼스의 곳곳을 누비던 자유로운 기분,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도전정신은 비온 후 땅에 떨어진 벚꽃잎의 메마름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붙잡을 여기 없이 쏜살같이 날아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학생활의 마지막인 이번학기를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려던 것이 학기전 나의 다짐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에 들떠있었고 대학의 마지막을 후회없이 보내봐야지 하는 야심찬 마음으로 설레었는데, 요즘의 나는 이 초심을 이뤄볼 여유도 없이 끝없는 부담감에 가슴에 아주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지난 주엔 학교에서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멀리있는 집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평온하고 따뜻한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어 마음이 치유받는 듯 했지만 계속 행복한 나 자신을 마주할 순 없었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온 딸을 너무 반가워했던 우리 엄마는 한편으론 4학년인데도 준비가 한참 덜 되어있는 내 모습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평소 자기관리를 아주 중요시 여기는 엄마는 고작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는 2kg 늘어난 내 몸무게를 보고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또 얼마전 봤던 시험 성적이 생각보다 낮아 실망한 듯 했고 그럼에도 뚜렷한 목표가 없어 보이는 내 모습에 더욱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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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왔다. 소리없이 고요한 눈물이었다. 고요한 눈물은 일정이 있어 오른 부산행 버스에 무임승차한 후 계속 내곁을 지켰다. 바깥의 풍경을 보며 슬펐던 아까의 기억을 잠시 보듬어 보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받고, 머리를 비워보고자 눈도 지긋이 감아보았다. 감은 눈에서도 비집고 나오는 눈물의 줄기는 가늘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보이는 것과 같이 가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눈물은 멈출때를 아는 듯 애써 나오려하진 않았다.

 

언젠가부터 내 눈물은 어떤 소음도 내지 않았다. 가끔은 내가 진실로 슬퍼서 우는 것인지,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소복이 쌓여가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비워내는 것인지 헷갈린다. 혹은 수많은 감정들 중 하나의 자연스러운 분비과정인지, 아니면 내 마음대로 표출할 수만은 없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오는 슬픔의 절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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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과 미처 감추지 못한 실망이 담긴 표정은 내 마음을 충분히 슬프게 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실망했을때,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칭찬이 아닌 말을 들었을 때 누구나 슬픈 것처럼 저때의 나도 그랬다. 옛날 같았으면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인 엄마마저도 내 기분을 알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의 표출로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고, 엄마가 하는 말에 꼬리를 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뱉어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수 없다. 이렇게 행동하면 결국 엄마가 상처받는 것을 뒤늗게서야 깨닫고 내게 더 큰 슬픔이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당시에는 나를 속상하게 했던 그 말들이 모두 내 일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것에서부터 비롯된 애틋한 관심과,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고 바라는 엄마의 소중한 마음인 것을 깨달았기에.

 

또한, 더 이해해주길 바라는 내 마음이 이기적이고 엄마가 참고 견뎌야 했던 헤아릴 수 없는 눈물의 무게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소리없이 울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물을 숨기는 것엔 영 소질이 없는 나를 보며 걱정하고 슬퍼할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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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소중한 보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엄마가 보석이다. 꾸미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빛나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어떤 것보다 단단해진 아름답지만 슬픈 보석.

 

 

25살의 나이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취업에 대한 걱정,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 가라앉은 감정을 홀로 수용하고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하는 튼튼한 심장의 무게만 고려해도 이미 시소의 끝은 바닥에 닿는다. 요즘의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찾아보았다. 나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주변의 사람을 챙길 여유가 없었던 메마른 시간들도 이유 중 하나였고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으로 인해 나자신을 아끼지 못한 것도 또다른 이유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쫒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타협하여 뭐라도 해야만 하는 현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을 하다 지치고 열정이 부재한 일상은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틀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있는 도전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물론 앞으로의 여정 속에서 나는 지금과 같이 수도 없이 우울해 할 것이고 지금보다 더 깊은 슬픔의 구렁에 빠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럴때마다 나는 늘 그랬듯 또다시 소리 없는 눈물을 삼켜야 하겠지만, 여전히 가슴 속에 열정과 사랑이 공존하는 한 사람이고 싶다. 자주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에는 웃고 있는 내 사진이 참 많다. 평소 나를 잘 아는 사람 혹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사진들만 본다면 나는 행복한 일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으로 판단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진에 담긴 약간은 왜곡된 나의 감정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도 소중한 일이다.

 

항상 행복한 내가 되었으면 하는 오늘의 나는 앞으로도 행복한 일상을 기록하고, 기쁘지만은 않는 감정들로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진 내면을 갖춘 사람으로 끝없는 성장을 일궈나가려 한다. 지쳐있는 나를, 지치지 않을 나를 위한 또 하나의 글을 계속 써내려가며.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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