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쿠우스, 자비로운 그대는 나의 규칙 [공연예술]

경계의 침입에 대하여
글 입력 2019.11.0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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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동양식의 단위는 습관으로부터 출발한다. 습관은 규칙이 되고, 규칙은 종교가 될 수 있다. 여기, 특이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연극 '에쿠우스'의 소년 '알런'과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멜빈'.

 

 


각자의 규칙



바닷바람 사이로 보이는 생생하고도 거친 숨소리, 파도의 포말이 얹어져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진 갈기의 굵은 선, 제자리에서 하는 발길질에 높이 튀어 오르는 모래 조각들 그리고 그 원동력이 되는 날이 선 허벅지, 이것이 알런이 바닷가에서 처음 본 말의 모습이었다. 이제 알런은 3주에 한 번만, 밤에, 들판을, 알몸으로, 꼭 ‘너제트’와 함께 달린다. 알런이 성스럽게 바친 제물, 각설탕을 받아들인 너제트는 알런에게 들판 위에서 펼쳐지는 오르가즘의 기회를 허락한다. 바닷가의 말, ‘에쿠우스’와의 첫경험에서 낙마한 알런이 말을 탄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허락된 순간마다 너제트는 기꺼이 소년 알런의 강렬한 에쿠우스가 되어주었고, 더 이상 알런을 놓지 않았다.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멜빈은 문을 잠글 때 꼭 다섯번을 확인한다. 손은 데일 정도의 뜨거운 물에 꼭 새 포장지를 뜯고 새 비누로 씻어낸다. 보도블럭의 경계선을 절대 밟지 않으면서도 사람들과 닿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걷는다.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따로 챙겨온 일회용 식기구로, 같은 웨이터의 서빙을 받으며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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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규칙의 파괴법



-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찔렀다.


“난 너의 것이고, 넌 나의 것”. 알런과 너제트는 절대적인 믿음과 집착이 뭉뚱그려진 은밀한 종교의 관계, ‘에쿠우스’가 되었다. 반복되는 들판에서의 합일은 알런과 너제트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고, ‘난 너의 것이고, 넌 나의 것’의 완전관계가 정립되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완전관계.

 

규칙이 종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알런은 열정을 부어 더욱 강력한 유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알런은 에쿠우스에만 몰입했다. 열정은 광기가 되어 알런은 잠식하기 시작했다. ‘질’이라는 브레이크가 나타나 다시 경계선을 그리기 시작하자 너제트는 울부짖었고, 질과 알런의 오르가즘을 허락하지 않았다. 용서받지 못한 알런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존재였던 에쿠우스를 파괴하고 스스로 이해를 꾀했다.

 

 

에쿠우스 2.jpg


 

스스로와의 대화에 몰입했던 알런이 입을 조금씩 정신과의사 ‘다이사트’에게 열어갈수록 다시금 그 원초적인 정열은 다이사트에 의해 숭배되었다. 알런이 다이사트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어버렸을 때, 다이사트는 에쿠우스의 또다른 신자가 되었다. 다이사트가 앨런을 경외하고, 다시 앨런이 에쿠우스를 경외하는 구조에서 앨런의 제거는 다이사트로 하여금 에쿠우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제 다이사트는 새로운 브레이크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에쿠우스를 파괴하고, 에쿠우스를 전달한 두 번의 과정을 거쳐서 알런은 사회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 보도블럭의 경계선을 밟았다.

  

멜빈의 규칙에 속해 있던 캐롤은 생명감을 가진 브레이크가 된다. 꼭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따로 챙겨온 일회용 식기구로, 캐롤이 아닌 다른 웨이터의 서빙을 받으며 밥을 먹게 된 멜빈은 분노가 되었다. 그러나 곧 깨진 규칙, 불안정했던 캐롤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멜빈은 캐롤의 또다른 규칙이 되어준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규칙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일컬어졌다. 그 사랑은 멜빈의 수많은 규칙을 만들어냈던 결벽을 캐롤이라는 단 한가지 규칙으로 바꿨다. 그렇게 멜빈은 보도블럭의 경계선을 천천히 밟아 나갔다. 그리고 이 ‘사랑’이라는 열정을 몰입하는 사건이 습관이 되고, 다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보다 1.jpg


 

 

럭키브레이크Lucky Break



무엇인가를 깬다는 의미의 ‘브레이크break’, 그리고 그 앞을 수식할 수 있는 가치, ‘럭키lucky 운이 좋은’, 그래서 ‘럭키브레이크lucky break’는 ‘(어떤 것을 이겨낼) 행운’을 의미한다. 멜빈에게 캐롤은 행운이었다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멜빈과 캐롤의 완전관계가 알런과 너제트의 완전관계와 왜 동일시되지 않는가? 다이사트는 알런에게서 완전히 에쿠우스를 제거하기를 바라는 사회의 요구대로 ‘치료’를 시작했다.

 

개인은 동일한 크기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간과되어버린 소위 말하는 ‘치료과정’은 면밀히 들여다보면 상호의 화살표로 이루어져 있음을,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서로를 향한 치료임을, 나는 처음부터 찾아낼 수 있었는가. 다이사트는 열정을, 알런은 사회 수용성을 가지게 되었으나, 어떤 화살표가 행운인지, 불운인지 그것은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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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의 갈등을 겪던 알런에게 브레이크가 되어주었던 에쿠우스, 그리고 그 에쿠우스의 브레이크가 된 질이 우리 눈 앞에 있다. 사회 속에서 각각의 규칙을 깨부수게 만든, 안정적인 믿음을 배반하게 만든 사건들을 우리의 가치 중 행운이라고 감히 재단한다. 브레이크는 새로운 브레이크를 만들어내는 밑그림이 될 수 있음도 잊은 채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기란, 결국 나만의 규칙을, 나만의 종교를 강요한다. 그리고 굳건한 믿음은 때때로 삶의 연명을 이끄는 주원료가 되기도 한다. 각자의 가치를 지니고 운동하고 있는 각자의 삶에 대해서, 이러한 삶이 의미 있느냐고 침입할 자격이 나에게 있는가.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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